11. 청의 침략, 북벌을 꿈꾸다 |
광해군의 중립외교 | 임진왜란 이후 중국의 정세 | 명나라의 쇠퇴(임진왜란 이후) → 여진족의 강성(후금 건국, 1616) → 여진은 명나라의 변경(邊境) 요충지를 점령하고 계속 남진 → 명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조선에 지원병(援兵) 요청 → 임진왜란 때 명의 도움을 받았던 조선은 명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움 |
전후 戰後 복구 노력 | * 토지대장과 호적을 다시 만듦 → 국가 재정 수입 확충 노력 * 세금 감면, 피폐해진 산업 재건 * 성곽과 무기 수리, 군사 훈련 실시 → 국방력 강화 * 동의보감(東醫寶鑑) 편찬 (허준) : 민심 수습 * 대동법(大同法, 1608) 실시 : 공물(특산물)을 쌀로 바치게 함(대동미) * 일본과의 국교(國交, 외교관계) 정상화 ⇒ 민생안정과 국방력 강화에 광해군을 힘썼음(광해군의 우선순위) |
중립외교 정책
| * 중립(中立) : 국가(명과 후금)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킴 * 광해군은 강성해진 후금(여진족)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는 것을 원치 않음 * 후금과의 적대적 관계는 곧, 그들과의 전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조선은 중대한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 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인가? * 아니면, 또 다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을 지킬 것인가? * 이 때, 백성들은 평화를 원했을 것이고, 그것은 중립이었다. * 명나라에는 지원병 파병으로 명분을 얻고, 후금에는 항복함으로써 그들과 싸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 광해군의 중립적 외교정책. * 명나라에는 명분(名分)을, 후금에게서는 실리(實利)를 얻고자 함 → 광해군은 강홍립을 시켜 명나라 지원병 1만 명을 보내며, 상황에 따라 적당히 대처하라고 명령함(‘향배를 보아 결정하라는 밀서를 내림’) → 강홍립은 후금과의 접전(接戰)을 피하고 항복함 (명에는 명분을 세워 주고, 후금에는 실리를 취함) → 후금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음 → 실리적 외교 정책,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한 결과 → 그러나 이것은 서인들이 광해군을 내쫒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광해군의 반대파들은 어버이와 같은 명나라를 돕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며, 설령 명나라가 망해도 조선은 마땅히 오랑캐인 후금과 싸워, 유교적 도덕을 드높여야 한다고 믿었다. |
인조 반정
서인 의 반정 | * 반정(反正) : 정도(正道)로 되돌아감(反), 본래의 바른 상태로 돌아감 또는 그 상태로 돌아가게 함. 지난날 나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이 들어서던 일. 반정을 일으키다. 중종반정(연산군)/인조반정(광해군) * 사림세력은 도덕과 명분 그리고 의리를 매우 중요시 했음 * 반정의 구실(명분) : 광해군의 실책(失策, 잘못된 정책) → 서인의 주장 → 안으로(친형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대군 죽인 것) : 형제의 의리 버림 → 안으로(법적 어머니, 인목대비의 폐위 = 자격 박탈): 불효 죄를 지음 → 밖으로(명을 버리고 후금을 가까이 함은) : 명에 대한 의리를 버린 처사 * 일부 사림(서인) 가운데 광해군의 중립적 외교 정책을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처사라고 비판 → 친형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킴(계축옥사.1613) → 광해군과 북인(대북파)의 이러한 정치는 유교적 윤리(효와 의리, 명분)에 어긋나 도덕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고, 서인에게 반정의 명분을 줌 → 인조반정(1623)으로, 서인들이 정변(쿠데타)으로 → 광해군을 폐위시키고(임금 자리에서 쫓아 냄), 인조를 왕위에 앉힘 → 서인세력의 집권 → 광해군의 외교정책과는 반대 방향으로 전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