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b.jinbo.net/view.php?ho=&cat=series&pg=4&no=1051
계획경제를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립경제, 심지어 고립된 경제체제를 상상한다. 제국주의 수탈이 일반적인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제국주의의 간섭과 수탈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의 간섭과 수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곧 자족자립경제, 혹은 고립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당장 자원을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국제분업을 꾀하지 않는 한 생존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급격한 생활수준의 하락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북한의 경우, 석유를 비롯한 전략물자의 수급 불균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상식이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소련과 같은 나라는 혁명 직후에 자본주의 국가와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생산력을 높일 수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은 내전이 종식 후, 1차 세계대전의 원죄로 봉쇄상태에 놓여 있던 독일을 비롯해 자본주의국가와 은밀하게, 혹은 공개적인 교역을 진행했다. 특히 '네프'시대에는 밀을 수출해서 기계류를 수입하는 것이 소련의 주요한 무역거래였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대공황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계류를 수입할 수 있었다. 유럽과의 교역이 사실상 중단된 것은 독소불가침이 맺어지고 나서이고, 이것도 곧 독소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해제되었다. 소련이 대 서방교역에서 고립으로 나간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냉전체제가 구축되면서부터다.
고립을 넘어서 성장한 계획경제
위대한 조국방어전쟁(흔히 2차 세계대전이라고 말하는) 기간 중에 소련은 전쟁직전 자기들보다 생산력이 4배나 많았던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지상최대의 작전이라고 알려져 있는 노르망디 작전도 독소전쟁에서 목도할 수 있는 성채 작전이나 치타달 작전의 규모에 비하면 아이들 병정놀음 정도로 볼 수 있을 만큼 전쟁의 규모는 여타지역을 압도한다. 독일군 사상자 80%가 독소전쟁에서 발생할 만큼 독일, 소련 두 나라가 말 그대로 총력전을 폈다. 만약 소련이 연합군의 물자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마크가 선명한 미국트럭과 지프가 소련후방지역을 질주했으며, 통신장비와 통신선의 거의 100%가 미국으로부터 지원이었다. 병사들 모피코트도 모두 미제였다. 영국은 해군전투함을 제공했다. 덕분에 소련은 생산력의 대부분을 전투장비 생산에 집중했다. 소련의 공업력은 한해에 15,000대에 달하는 탱크와 대포, 그리고 카츄사 로켓트 포, 10,000대에 이르는 일류신 폭격기를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크루츠크 전투에서는 단 하루 만에 독일군 탱크, 티거와 팬더 500대와 소련군 탱크, T-34 800대가 사라졌다. 이렇게 극심한 소모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독일을 압도하는 생산력에 있었고, 그 생산력의 배후에는 동토에 공장을 짓고 절삭유를 입김으로 녹이면서 무기를 만든 소련의 노동자들과 국제적 고립을 벗어날 수 있게 한 연합국의 지원이 있었다. 소련은 조국방어전쟁 4년 동안 서방자본주의 국가들의 지원과 소련인민들의 영웅적 헌신에 힘입어 미국과 더불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혁명후에 고립을 피할 수 없다?
사회주의 혁명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논거 중의 하나는 거의 동시에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국에서 혁명은 고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적 고립은 곧 경제적 파국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혁명정부는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핵심논리다.
계획경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런데 경제적 고립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변수가 되는 것은 국제혁명역량이고, 제국주의 국가간의 경쟁이 격화되는 정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석유, 유연탄, 철광석의 공급이 문제가 될 경우, 중동산 원유대신에 차베스가 있는 베네주엘라와 룰라가 있는 브라질을 그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 이들을 국제혁명역량으로 간주할 것인가는 나중 문제고, 당장 그 정도의 가정은 가능하다. 비동맹 노선을 걷고 있는 인도나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 러시아도 협력관계를 가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국제혁명역량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로서는 국제연대에 대해 소극적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경쟁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봉쇄가 성공률이 높지 않은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윤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악한 상인들의 모험심 덕분이다.
그런데 정치적 고려가 앞선다는 것은 그만큼 원활한 자원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계획경제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적절한 이행기간을 가진다 하더라도 충격은 피할 수 없다. 자본가들의 사보타지나 불안한 사회정세로 사재기가 등장하는 등, 경제활동은 어느 정도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계획경제의 기본단위라 할 수 있는 생산위원회와 소비위원회의 결성을 촉진시킬 것이다. 생산과 유통에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지는 위기상황에서 더욱 고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자원수급과 관련해서 무역부문에 대외교역을 담당하는 위원회가 시급히 만들어질 것이다. 무역에 종사하는 모든 회사는 이 위원회에 등록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기업간 거래에 해당되는 모든 거래가 통합전산망(BTB)에 의해 관리되도록 할 것이다. 사적 무역은 대폭 축소되고, 소비위원회, 생산위원회에서 제출되는 수입목록들이 정리되고 수급계획이 수립될 것이다. 그리고 수입에 따른 결제문제와 수출이 가능한 품목, 구상무역(국제간 물물교환)으로 해결이 가능한 품목이 작성될 것이다. 외환거래가 통제되고, 사적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는 몰수되거나 국내화폐로 교환되어 대외무역을 담당하는 위원회에 귀속될 것이다. 불필요한 수입물들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외화가득율이 떨어지는 품목의 수출, 혹은 출혈수출은 중단될 것이다. 무역규모는 대폭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일시조치가 신속히 취해진 다음 우리는 새로운 국제분업을 향한 정치사업에 착수할 것이다.
사회주의 국제분업
자본주의 국가간의 무역이 새로운 국제분업을 낳은 것처럼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제교역은 필연적으로 국제분업을 낳는다. 계획경제하에서 이러한 국제분업은 국제적 차원의 계획기관을 요구하고, 이러한 계획기관은 낙후된 지역의 발전과 발전된 지역의 자원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류의 지속적 발전을 보장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1950년대에 이르면 중국을 비롯한 동구 북한 쿠바 등에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면서 소련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국제분업이라고 일컫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다른 새로운 국제협력기구가 만들어졌다. 코메콘이라 불리는 이 협력체계는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유지되었다. 코메콘은 애초에 6개국으로 출발해 베트남이 가입한 78년에는 10개국으로 늘어났고, 북한,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옵저버로 참여했다. 나중에는 멕시코와 핀란드도 옵저버로 참가했다. 동구 나라들과 소련의 관계는 자원수급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소련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동구 나라들은 상품을 제공하는 식으로 교역을 해 나가는 식이었다. 쿠바의 경우는 국제가보다 비싼 값에 원당을 사주고, 원유를 비롯한 상품은 비교적 싸게 공급했다. 코메콘이 해체되면서 쿠바는 날벼락을 맞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코메콘 시절에 자원 분배를 교육과 의료 쪽에 집중한 결과 최근에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 있기도 하다. 즉 인구 5명당 1명꼴로 있는 엄청난 숫자의 교사와 의사를 베네주엘라를 비롯한 남미전역에 파견하면서 경제적 활로를 뚫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국가간의 국제분업이 노동력을 절약하고, 저개발국가의 경우, 보다 효율적이었음은 자명하다. 북한은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나고, 자신들의 수령체제가 위협받게 되자 난데없이 자주외교를 들먹이며 국제분업체제에서 과격하게 빠져나갔다. 알바니아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북한으로서는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이 자립체제를 주장하며 중공업우선정책을 과도하게 강조했고, 결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스스로 빠져든데 있다. (알바니아는 농업에 집중했다) 소련은 전후에 막강한 중공업생산능력을 바탕으로 동구권과 중국을 아우르는 사회주의 분업체제를 구축했다. 소련이 기계를 만드는 공장이 되고, 다른 나라는 소련 기계를 수입해서 소비재 생산에 박차를 가해 경제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이것은 수입대체산업을 필두로, 가공무역, 그리고 중화학공업으로 중심이 이동했던 대한민국의 경우를 보아도 타당한 발전전략이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국제분업은 한 나라가 압도적인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기초로 해서 큰 형님 역할을 하는 그런 체제가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 국제분업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재화의 교환을 넘어서 인류가 당장 필요로 하는 분야에 국제협력을 집중하는 그러한 협동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우주개발, 해양개발, 유기농의 세계적 규모 확산, 환경문제를 해결할 국제적인 협력, 그리고 전세계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킬 자동기계의 공동개발 등 무궁무진한 분야가 있을 것이다. 계획경제는 국가와 국가간의 수탈체제가 아닌 진정한 협력체제를 구축함으로서 인류의 동지애가 최고조로 달하는 그런 세계를 창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