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이육사(李陸史)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梅花) 향기(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어, 시구 풀이]
연모(戀慕) : 그리워함. ‘향하여’를 의인법으로 표현한 말
휘달릴 : 힘차게 달릴
범(犯)하던 : (남의 권리, 재산, 정조 등을) 무시하거나 빼앗거나 짓밟음
광음(光陰) : 세월(원래의 뜻은 ‘빛과 그림자’이나 합성어가 되어 뜻이 변한 말)
천고(千古) : 아득한 옛날, 오랜 세월 동안, ‘천고의’의 꼴로 쓰여 일찍이 유례가 없는
초인(超人) :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이상적인 인간. 여기서는 위대한 민족 시인을 뜻함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인간의 역사 이전의 상태
모든 산맥들이 / 바다를 휘달릴 때도 : 역동적이고 활유적인 표현. 사이비 진술(似而非陳述-진술과 유사하지만 진술이 아니라는 뜻으로 시적 진술이 상징성과 은유성을 갖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에 해당함
끊임없는 광음을 / 부지런한 계절 : 광음이나 계절은 모두 시간을 나타내지만, 광음은 ‘끊임없는’이라는 관형사의 성격으로 보아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하고, 계절은 ‘부지런한’으로 미루어 인간적(의지적) 시간이다.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인간을 포함하여 아무도 범접할 수 없었던 신성한 처녀지(處女地)인 광활한 대지[광야] 위에 비로소 문명이 시작되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대부분 큰 강 주변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표현이다.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눈’은 가혹한 시대 상황을 가리키고, ‘매화 향기’는 일차적으로는 선비의 맑고 고결한 기품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봄 소식, 즉 진정한 해방이 이루어지는 미래의 의미이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는 희생적 자세
다시 천고의 뒤 : 고통스러운 현실이 끝나는 날
[핵심 정리]
지은이 : 이육사(李陸史, 1905-1944) 본명 이원록(李源祿) 후에 이활(李活)로 개명. 생전 20회에 가까운 옥살이하다가 1944년 북경 감옥에서 생애 마침. 김광균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동함. 대표작으로 ‘광야’ 외에도 ‘절정’, ‘청포도’, ‘꽃’, ‘황혼’ 등이 있음. 작품 경향을 보면, 남성적 어조의 강렬함과 대결 의지로 민족 의식을 담아 내어 일제하의 대표적 저항 시인의 면모를 보여 줌. 유고 시집으로 <육사시집>이 1946년에 나왔음.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대륙적, 상징적, 의지적, 남성적, 지사적
어조 : 예언자적 기품의 남성적이면서 지사적인 어조
표현 : ①광활한 대륙과 유구한 시간을 조화시켜 시공(時空)의 진전과 변화에 따라 시상을 전개시켰다. ②광야, 산맥, 백마, 초인 등 남성적인 시어를 바탕으로 웅장하한 상상력과 의연한 기품을 드러냈다. ③설의법, 의인법, 상징법 등 다양한 수사법을 동원하여 시적 표현의 묘미를 더하였다. ④ 전통적인 한시(漢詩) 작법(作法)인 기승전결(起承轉結) 형식과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구성 : 추보식
1연 광야의 원시성
2연 광야의 광활성[(1-2연)기]
3연 역사의 태동[승] ························ (1-3연)과거
4연 암담한 현실과 극복의 의지[전] ··········· 현재
5연 미래에 대한 전망[결] ··························· 미래
제재 : 광야
주제 : 미래에 대한 신념과 의지
특징 : 의지적이고 웅혼한 기상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시인의 다른 작품과 같이 저항 의식이 안으로 응축되어 있다. 태고의 모습 그대로인 광야에 서서 잃어버린 조국을 불러 보며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대망(待望)하는 화자의 모습이야말로 강렬한 저항의 의지를 실감하게 하는 핵심이다. 이러한 저항 의식은 무엇보다도 식민지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한 역사 의식이 뒷받침됨으로써 가능하다.
즉, 1~3연에 제시된 시상은 바로 천지 창조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를 태동시키고 꽃피운 그 터전으로서 광야의 웅대한 모습과 힘을 형상화한 것이며, 이것이 조국 광복에의 의지라는 주제 의식을 보다 견고하고 비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연에서 어두운 조국의 현실과 내면적 저항 의지를 ‘눈’과 ‘매화 향기’의 상징으로 암시하는 한편, 그 내면적 저항 의지를 구현한 ‘가난한 노래의 씨’가 5연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게 계승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가 현재의 뿌리이며 현재가 미래의 토대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4, 5연의 문장이 모두 명령형의 서술로 쓰였다는 것도 화자 자신의 강렬한 의지 표명을 위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첫댓글 시 공부 잘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