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때
대제학을 지낼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으며, 그림에도 뛰어나 특히 대나무를 잘 그리기로 이름이 났던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이 지은
「죽설」이라는 짤막한 글이다. 김조순은 이 글에서 주역, 서경, 시경, 중용, 춘추에 나오는 구절을 따다가 대나무가 지닌 다섯 가지의 특성을
군자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과 비교하여 말하였다. 대나무는 속이 비고, 재질이 단단하고, 줄기가 곧고, 마디가 있고, 색깔이 푸르다. 이것은
군자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덕인 통(通), 강(剛), 직(直), 절(節), 의(義)와 통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군자답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지식인들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인간상을 군자로 보았다. 유교 경전을 보면 군자에 대한 말이
숱하게 나온다. 특히 공자는 군자에 관해 많은 말을 했다. 군자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가? 군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군자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군자와 대비되는 소인(小人)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면 된다. 소인은 도량이 좁고, 덕이 없으며, 간사한 사람이다.
공익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며, 인의(仁義)를 모르고 재리(財利)만 밝히는 사람이 소인이다.
군자는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학식과 덕행이 높기만 해서는 안 된다.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지덕(知德)을
수양해야만 한다. 그래야 군자다. 군자는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높은 직위에 있다고 해서 다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덕을
겸비하지 못하고 만민을 사랑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다. 군자는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군자이다.
높은 직위에 있지 않고 곤궁한 처지에 있다고 해서 군자가 못 되는 것도 아니다. 비록 곤궁한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일신의 영달을 이루기 위하여 아등바등하지 않으면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해 나가면 군자인 것이다. 어떤
처지에 처하든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공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근면 성실한 자세로 참되게 살면 군자인 것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에서
중용(中庸)과 조화(調和)의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군자다.
내게 차군 없어서는 안
되겠기에, 뜨락의 한 모퉁이에 대를 심었네. 나는 그저 삼익이나 이루고 싶지, 굳이 대숲 이루고픈 마음은 없네. 풍상 쳐서
부러져도 변치 않다가, 비이슬에 씻기면 또 도로 살아나, 굳센 절개 갈수록 더 굳건하리니, 장차 너를 힘입기를 내
바라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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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君不可無 爲種一庭隅 祗欲成三益 何煩敵萬夫 風霜摧不變 雨露洗還蘇 勁節應彌固 將願賴爾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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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陽村) 권근(權近)이 대나무를 심으면서
자신도 대나무의 굳센 절개를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읊은 시이다. 이 시에 나오는 ‘차군(此君)’은 대나무를 가리킨다. 옛날에 왕휘지(王徽之)가
집에 대나무를 심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하루라도 이 분[此君]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심은 것이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삼익(三益)’이란 말은 세 가지 유익한 벗으로, 매화와 수석과 대나무를 가리킨다. 소동파(蘇東坡)가 “매화는 차갑지만 빼어나고,
대나무는 깡마르지만 오래 살고, 수석은 못생겼지만 아름다움이 있으니, 이는 세 가지 유익한 벗이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얼마 전에 나의 선조이신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유적지로 담양에 있는 식영정(息影亭)과 송강정(松江亭)을 둘러보고 올라오는 길에 녹죽원이란
곳을 들렀다. 온통 쭉쭉 뻗은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휴양지이다. 편안하게 거닐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그 대숲 길을
거닐면서, 군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이미 높은 학식과 덕행은 닦지 못하였으며, 높은
지위에 오를 가망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공자가 말한 군자가 되기는 아예 그른 것이다. 다만 현재의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나 자신을 수양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만은 내가 좀 더 힘을 쓰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그리 살면 남은 나의 삶이 저 대나무에 크게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대숲 속을 거닐면서 가졌던 그때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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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새벽에 올려진 좋은 글을 옮겨서 두고 오래 보고싶어서 스크랩 해 갑니다.감사히 잘 보고 익히겠습니다.
이재수님 오랜만입니다. 건강은 어더하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