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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초봄의 어느 날 아침,김포발 광주행 비행기 안에서 임권택감독을 만나 몇 달 전에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 치상治喪과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끝이었다.상인喪人을 대하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여 다소 우스개 식으로 털어놓은 내 장의
葬儀 경험담에 임 감독은 속으로 퍽 흥미가 동했던지 바로 그 이야기를 영화로 찍으면 어떻겠느냐,조심스럽게 제의해 왔다.
나는 물론 처음 그럴 수 없다고 사양했다.그것은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두 번 돌아가시게 하는 불경스러운 짓인 듯 싶은데다,그 조심스러웁고 힘든 치상과정을 두 번씩 되풀이할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비슷한 연세에 비슷한 노령기 괴로움을 겪고 계시는 어머니를 모신 (그래서 비슷한 일을 앞둔) 임 감독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나는 결국 그의 뜻에 따랐고,그 영화
<축제>의 촬영현장에서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내 어머니의 치상과정을 한번 더 치러
겪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실은 내가 어머니를 마음으로부터부터 여의어 보내드린 굿마당 한 가지였다.굿이란 원래 망자의 혼백을 다시 불러 모시고 이승의 여한을 풀어 드린 다음 그를 다시 저승으로 떠나 보내는 영별永別의 과정을 되풀이함으로써 생자들 또한 심정적으로 그 죽음을 받아들여 그간의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현실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죽음과 사별의 재체험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축제>의 제작이 끝나고 나서 나 역시 어머니를 영영 저승으로 떠나 보내드린 심정이었으니까.
소설은 우리 삶을 모방해 베끼는 일이라지만,그런 뜻에서 소설을 쓰는 일은 작가가 지난 날의 제 삶을 소설로 한번 더 살아 내는 일이라 할 수도 잇으리라.이념의 갈등상과 통일의 문제를 끊임없이 천착해 온 김 원일의<그곳에 이르는 먼 길>,<마당 깊은 집>,<가족>등 가족사 관계 소설들,<포구>,<해일><새터말 사람들>등 고향 바다와 그곳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줄기차게 계속해 온 한승원의 해변 마을 소설들을 보면 유독 더 그런 생각이 앞을 선다.그리고 김원일과 한승원의 그런 식으로 그의 유년과 고향의 삶을 소설로 다시 살아 냄으로써 비로서 그 남루하고 지난한 유년과 고향의 삶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이를테면 김원일과 한승원은 그런 소설 쓰기로 지나간 삶의 신산한 기억들을 넘어서려는 자기 씻김굿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와 소설 두 번의 삶으로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점어서서 정말로
자유로운 삶의 해방을 얻을 수 있는가.어떤 굿으로도 애통한 죽음의 그림자를 이승에서 완전히 씻어 지울 수 없듯이 ,작가의 과거 또한 그 과거사로 자신의 소설 쓰기로 몇 번씩 되풀이 살아낸다 해도 그의 미래의 삶이나 소설 속에 그 흔적을 깡그리 지울 수는 없는 노릇.
-이산가족 상봉 현장을 보고 왔다고 해서 앞으로의 내 소설에 새삼스런 변화는 없을 것이다.내 '통일 문학'작업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이어 나갈 것이다.
얼마전(2002)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을 다녀온 김원일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술회한 말이다.우리는 거기에서 김원일의 소설 작업의 일관성이나 신뢰성을 엿볼 수 있음이 물론이다.하지만 그의 가족사가 이산의 비극과 매우 밀접해 있음에 비추어 그는 '새삼그런 변화없이''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이어 나가는'정도를 넘어 그 금강산 길에서
그가 소설로 다시 살아야 할 또 하나 무거운 업보의 김을 짊어지고 온 느낌이었으니.
하고 보면 작가의 길은 끝끝내 어떤 구원이 점지되어 있지 못한 막막한 도장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또한 문학의 길은 그래서 더욱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는지.
-그래.그게 내 그림의 숙명이라면 두고두고 더 앓아 내도록 해보자.할 수만 있다면 이 땅과 사람살이의 아픔을 다 그림으로 앓아버려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오직 충만한 평화와 기쁨의 빛만 남아 보이도록.
이는 필자의 졸작<날개의 집>결말부에서 그림 공부를 해온 주인공이,'중생이 앓으니 나도 앓는다.마지막 중생의 아픔이 나으면 나도 나으리라'고 어느 부처님(유마힐)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다독거린 독백이다.문학의 길이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 아니겠는가.
**이 청준의 산문집<머물고 간 자리 우리 뒷모습>중 -두 번 사는 소설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