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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沙論壬辰諸將士辨 2 (백사논임진제장사변) 백사가 논한 임진년의 여러 장사에 대한 변론
安邦俊 (안방준)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는 또 말하기를
世以趙憲,高敬命之死爲節義。(세이조헌,고경명지사위절의) 세상이 조헌과 고경명의 죽음을 절의라 하나
若曰死於王事則可。(약왈사어왕사즉가) 만일 왕사에 죽었다고 하면 옳겠지만
至稱節義則未也。(지창절의칙미야) 절의로 칭송한다면 그렇지 않다.
當板蕩之日。(당판탕지알일) 나라가 어지럽던 때를 당하여
憲等以一介書生。(헌등일개서생) 조헌등 일개 서생으로
奮臂決起。糾合義徒。(분비결기 규합의도) 팔뚝을 걷어붙이고 결연히 일어나 의병을 규합하여
志存王室。忠義可尙。(지존왕실 충의가상) 왕실을 위해 뜻을 펴니 충의는 숭상할 만하다.
至於錦山之役。(지어금산지역) 금산 전투에서
諸軍因暗潰敗。(제군인암궤산) 모든 군사들이 어둠으로 인하여 궤멸하니
賊挺劍突出。自相蹂躪。(적정검돌출 자상유린) 적병이 칼을 뽑아들고 돌격해와 서로 유린하였다.
憲死於亂兵。(헌사어난병) 조헌은 난병 속에서 죽고
敬命適乘醉。不能控馬 亦死於軍。。(경명적승취 불능공마 역사어군) 고경명은 마침 술에 취해 말조삐를 잡을 수 없어 또한 적군에게 죽었다.
其見敗不奔。卒死於王事。則果可褒奬。(기견패불분 졸사어왕사 즉과가포장) 패함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고 끝내 왕사에 힘쓰다 죽으니, 과연 상을 주고 장려할 만하나
而若曰節義則未也。(이약왈절의칙미야) 이를 절의라고는 말할 수 없다.
其從容就死。不失所操。(기종용취사 불실소조)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여 몸가짐을 잃지 않은 이는
惟金千鎰,梁山璹二人而已云云。(유금천알,양산숙이인니이운운) 오직 김천일과 양산숙 두 사람뿐이다 하였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 기역오의) 백사의 이 말 또한 잘못되었다.
旣曰志存王室。忠義可尙。(기왈지존왕실 충의가상) 이미 뜻이 왕실에 있었으니 충의는 숭상할 만하다고 말했다면
則忠義非節義乎。(즉충의비절의호) 충의는 절의가 아닌가?
又曰。死於亂兵。(우왈,사어난병) 또 난병 속에 죽었다고 말했다.
此言欲避而勢有所不可得也。(차언욕환이세유소불가득야) 이는 피하려했으나 형세가 어쩔 수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繼之曰。見敗不奔。(계지왈 견패불분) 이어서 패함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았다 하니
此言有可避之勢而故不奔也。(차언유가피지세이고불분야) 이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달아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數行百餘字之間。(수행백여자지간) 몇 줄 백여 글자 사이에
其措語之顚錯。至於如此。(기도어지전착 지어여차) 사용한 말이 어그러져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則其他論議之不中。(즉기타논의지부중) 맞지 않눈 여러 논란에 대해
何足怪乎。(하족괴호) 어찌 괴이하게 여기겠는가?
愚請一一辨之。(우청일일변지) 나는 이를 한하나 변론하려고 한다.
錦山之役。霽峯以孤軍。 (금산지역 제봉이고군) 금산 전투에서 제봉(고경명)은 작은 군사를 이끌고
直擣賊窟。鏖戰終日。(직도적굴 진전종일) 적의 소굴로 곧장 쳐들어가 종일토록 격전을 벌려,
賊勢窮蹙。官軍不力。日暮而止。 (적세궁성 관군불력 일모이지) 적세가 크게 꺾였으나 관군이 돕지 않고 해도 저물어 싸움을 그쳤다.
翌朝。進軍更戰。(익조,진군갱전) 이튿날 아침에 진군하여 다시 싸웠는데
賊空壁突出。冒死迫我。(적공벽돌출 모사박아) 적이 지키던 성채를 비우고 돌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아군을 공격하니
防禦使先走。諸官軍相繼而散。(방어사선주 제관군상계이산) 방어사 곽영(郭嶸)이 먼저 도망가고 여러 관군들이 잇달아 흩어져
衆寡不敵。義兵遂敗。(중과부적 의병수패) 중과부적으로 의병은 마침내 패하였다.
則其非乘暗軍潰。章章明矣。(즉기비승배군궤 장장명의) 그렇다면 어둠으로 인하여 군사가 궤멸한 것이 아님은 너무나 명백하다.
是時。(시시) 이때
重峯淸州破賊後狀啓別紙曰。(중봉청주파적후장계별지왈) 중봉(조헌)은 청주에서 적을 격파한 뒤,
올린 장계의 별지에서 말하기를,
全羅義兵將高敬命。 (전라의뱡장고경명) 전라의병장 고경명은
深憤李洸逗遛不臣之狀。(심분이광주류불신지상) 이광이 머뭇거리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모습에 몹시 격분하여
檄書之中。昭數厥罪。(격서지중 소수궐죄) 격서 중에 그 죄를 소상히 밝혔습니다.
募兵之際。多聚官軍。(모병지제 다취관군) 또 의병을 모집할 때에 관순을 다수 끌어 모으니
洸也以此嗛之。(광야이차탄지) 이광은 이에 원한을 품고,
其擊錦山之賊。(기격금산지적) 금산의 왜적을 칠 때
不肯添兵助戰。(불긍첨병조전) 원병을 보내 싸움을 돕지 않았습니다.
防禦使郭嶸。坐見敬命力戰二日。(방어사곽영 좌견경명역전이일) 방어사 곽영은 고경명이 이틀 간 힘껏 싸우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하고
不使其兵出救。(불사기병출구) 병사를 보내 구원하지 않아
以致敬命無援而敗死。(이치경명무원이패사) 경명이 원조를 받지 못해 패하여 죽기에 이르렀습니다.
敬命與臣有約。(경명여신유약) 경명은 신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同濟荊江。期以共討此賊。(동제형강 기이공토차적) 형강(충청도 회덕에 있는 형각진을 말한 듯함)을 건너 적을 함께 토벌하자고 하였습니다.
而典兵之官。實殺敬命。 (이전병지관 실살경명) 그런데 병사를 관장한 관리가 실은 경명을 죽인 셈이니,
臣竊痛焉云云。(신절통언운운) 신은 매우 통분해 합니다. 하였다.
則白沙之千里耳聞。(즉백사지천리이문) 그렇다면 백사가 천리 떨어진 곳에서 들은 것과
其與重峯之一時目覩。(기여중봉지일시목관) 중봉이 당시에 직접 목격한 것을 견주어보아
未知其孰眞孰僞。(미지기숙진숙위)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이겠는가?
以重峯忠信不欺之心。(이중봉충신불기지심) 진실하고 미쁜 마음으로 임금을 속이지 않은 중봉이
其肯爲霽峯遊說。 (기긍위제봉유세) 어찌 제봉을 위해 유세하여
喪失其天賦之性乎。(상실기천부지성호)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을 잃을 리 있겠는가?
其時巡察嗛霽峯。移檄數罪。(기시순찰함제봉 이격수죄) 그 당시 순찰사(이광)는 제봉이 격서를 보내 죄를 소상히 발힌 것에 원한을 품고
以乘暗行師。蛇路狹險。(이승암행사 사로협험) 어둠을 타고 출병하여 좁고 험한 길에서
値賊軍潰等語。誣啓于行朝。(치적군궤등어 무계우행조 ) 적을 만나 군사가 궤멸 당했다 는 따위의 말로 행조에 모함하는 장계를 올렸다.
此則國人之所共知也。(차즉국인지소공지야) 이는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白沙用之於霽峯。(백사용지어제봉) 백사가 제봉에 대해 이를 인용하니
痛愕莫甚。(통악막심) 통분과 경악이 이보다 심할 수 없는데,
而幷及於重峯。何也。(이병급어중봉 하야) 아울러 이 말이 중봉에게까지 미치니 어찌된 일인가?
定論果如是乎。 (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와 같은가?
且白沙此記之作。(차백사차기지작) 또 백사가 이를 기록한 것은
在於辛丑年。(재허신축년) 신축년(선조 34, 1601)인데,
而其後乙巳歲。(이기후을사세) 그후 을사년(선조 38, 1605)에
撰霽峯正氣錄序。(찬제봉정기록서) 제봉의 [정기록] 서문을 지으면서
有卞成陽家世太寂寂之語。(유변성양가세태적적지어) 변성양의 가세(문벌과 세계)가 너무 적막하다 라고 말하였다.
是以霽峯一家節義。爲優於卞成陽也。(시이제봉일가절의 위우어변성양야) 이는 제봉 일가의 절의가 변성양(진(晉)나라 충신 변곤을 말함, 약적의 반란에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 것이다.
然則辛丑之前。不得爲節義。(연죽신축지전 불득위 절의) 그렇다면 신축년 이전에는 절의로 인정하지 않았다가
而乙巳之後。乃得爲節義乎。(이을사지후 내득위절의호) 을사년 이후에는 절의로 인정한다는 말인가?
愚嘗見象村申欽文集。 (우상견상촌신흠문집) 나는 일찍이 상촌 신흠의 문집을 보았는데
有曰。高苔軒敬命。樹義於壬辰之亂。(유왈,고태헌경명 수의어임진지난) 거기에 말하기를 태헌 고경명이 임진년 왜란에 절의를 세우고
苔軒之子從厚。以復讎起兵。又 (태헌지자종후 이복수기병), 태헌의 아들 종후가 복수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又 死於晉陽城陷之日。(우 사어진양성함지일) 진주성이 함락 되는 날에 또 죽으니
父子同節。(부자동절) 부자가 함께 새운 절의는
媲美於晉之卞門云云。(비미어진지변문운운) 진나라의 변문(변곤의 가문)과 이름다움을 견줄 만하다 하였으니
則白沙,象村前後立言。(즉백사,상촌전후입언) 백사와 상촌이 전후로 주장한 말이
何其相符若此也。(하기상부약차야) 어찌 이처럼 부합하는가?
蓋白沙之奉使南藩也。(개백사지봉사남번야) 대개 백사가 남번에 사신으로 갔을 때
象村與仙源金尙容。(상촌여선원김상용) 상촌은 선원 김상용과 함께
其時俱爲從事官。嘗在幕下。(기시구위종사관 상재막하) 종사관이 되어 막하에 있었는데
一行所聞。其無異同。於此可見。(일행소문 기무이동 어차가견) 일행이 들은 바가 다름이 없었음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而白沙之初以爲非節義。何也。(이백사지초이위비절의 하야) 그런데 백사가 처음에는 절의가 아니다 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參以記聞。質之公論。(참이기문 질지공론) 기록과 소문을 참고하여 공론에 물어 보면
尤爲明著云者。(우위명저운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라고 함은
指何等事而言耶。(지하등사이언야) 어떤 일을 가리켜서 하는 말인가?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와 같은가?
當丁亥,辛卯數年。(당정해 신묘수년 ) 정해년(선조 20, 1587)에서 신묘년(선조 24, 1691)까지 몇 년 동안
重峯伏闕控章。(중봉복궐공장) 중봉은 대궐에 엎드려 소장을 올려서
請勿通信日本。(청물통신일)본 일본과 통신하지 말고
斬其使送于天朝。(참기사송우천조) 그 사신을 배어 명나라 조정에 보내어
移檄琉球南洋諸國。 (이격유구남양제국) 유구와 남양 여러 나라에 격서를 보내어
使同憤疾。(사동분질) (일본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미워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청하였다.
及亂作。以匹夫倡義。義士雲集。(급난작 이필부창의 의사운집) 왜란이 일어나자 필부로서 의를 부르짖으니 의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擊走淸丹據城之賊。(격주청단거성지적) 청단(청주)으로 달아나 성을 점ㄱ한 왜적을 공격하였으니
此則變後十年間所未有之擧也。 (차즉변후십년간소미유지거야) 이는 변란 후 10년 사이에 없었던 쾌거였다.
至於錦山之戰。지어금산지전 금산 전투에서는
七百義士。칠백의사 칠백의사중에
無一人旋踵。向敵爭死。 (무일인선종 향적쟁사) 한 사람도 후퇴한 자가 없었고,적을 향하여 앞다투어 싸우다가 죽었다.
有耳目者無不聞知。(유이목자무불문지) 귀와 눈이 있는 사람은 들어서 알지 못한 자가 없건만,
而白沙不記其功。(이백사불기기공) 백사는 그 공을 적지 않고
反以爲死於亂兵。(반이위사어난병) 오히려 난병 속에 죽었다 고 라니
抑何意歟。(억하의여) 대채 무슨 의도인가?
當重峯死節之初。(당중봉사절지초) 중봉이 절의를 지키다 죽은 초기에
仇疾者猶未已。(구질자유미이) 그를 원수처럼 미워했던 자들은 오히려 (공격을) 그치지 않고
以爲釣名而死。(이위조명이사) 명성을 낚기 위해 죽었다 고 까지 말하였다가
後乃變其說曰。(후내변기설왈) 그 후에 이내 말을 바꾸어서
趙某不過一忠臣而止耳。 (조모불과일충신이지이) 조 아무개는 일개 충신에 불과하다.
其學問則空疏無足取者。(기학문칙공소무족취자) 그의 학문은 공소하여 취할 것이 없다 고 하였다.
彼仇疾者。(피구질자) 원수처럼 미워했던 저들도
不敢直斥其非節義。(불감직척기비절의) 감히 곧바로 절의가 아니다 라고 배척하지 않았는데
而白沙獨以爲節義則未也。(이백사독이위절의칙미야) 백사만이 홀로 절의라 할 수 없다 고 말하니
抑何意歟。(억하의여) 대채 무슨 의도인가?
至於金晬,徐仁元。(지어김수,서인원) 김수, 서인원은
皆重峯之素所擯斥者也。 (개중봉지소소빈척자야) 모두 중봉이 평소에 배척했던 사람들이다.
嘗因重峯幕士錄功之時。(상인중봉막사록공지시) 일찍이 중봉 막하의 의들을 녹공할 때
晬,仁元以錄勳都監。(수,인원이록훈도감0 김수와 서인원은 녹훈도감의 신분으로
卽入啓曰。此人忠烈。(즉입계왈 차인충렬) 곧장 계를 올려 이 사람의 충렬은
非他義兵之比。(비타의병지비) 다른 의병과 비교할 수가 없다 하였다.
然則仁元等。(연칙인원등) 그렇다면 서인원 등은
其 可謂阿其所好乎。(기 가위아기소호호) 좋아하는 것을 쫓아 아부한 자라고 해야 할 것인가?
況變初。(황변초) 더구나 변란 초기에
梁山璹,郭賢等。양산숙,곽현등 양산숙, 곽현등은
以倡義使幕下。(이창의사막하) 창의사(김천일)의 막하로
詣行朝。(예행조) 행조에 나아가기 위해
所過黃海,平安一路。(소과황해,평안일로) 황해도와 평안도의 한 길을 지나게 되었다.
雖村夫野老。(수촌부야노) 그런데 바록 촌부의 야로라 할지라도
必問重峯消息曰。(필문중봉소식왈) 반드시 중봉의 소식을 묻고 말하기를
趙爺當擧義討賊。(조야당거의토적) 어른(조야)께서는 반드시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한 것이오 하였고
及聞其起。(급문기기) 의병을 일으켰단 말응 듣고는
兵相與嗟嘆曰。吾輩生矣。 (병상여찬탄왈 오배생의) 서로 감탄하면서 말하기를 우리들은 살았소 하였다.
此山璹等之所親聞者也。(차산숙등지소친문자야) 이는 양산숙등이 친히 들은 것이다.
重峯之不得見容於一世。(중봉지부득견용어일세) 중봉은 당시 세상에서는 용납을 받을 수 없었으나
而反爲無識賤隷之所深知。(이반위무식천예지소탐지) 도리어 무식하고 천한 백성들이 깊이 알아주었으니
何也。奇哉奇哉。(하야, 기재기재) 어찌된 일인가? 기이하구나!
余嘗採重峯實跡。(여상채중봉실적) 나는 이찍이 중봉의 실제 자취를 모아
輯成數卷。(집성수권) 몇 권의 책을 편집하였는데,
所謂抗義新編及東還封事是已。)소위항의신편급동환봉사시이) 이른바 [항의신편]과 [동환봉사]가 바로 그것이다.
使後人得見是書。(사후인득견시서) 후인이 이 책을 볼 수 있다면
則重峯事業。(즉중봉사업) 중봉의 사업 가운데
庶可知其一端。(서가지기일단) 그 일단을 알 수 있어,
白沙之說。不攻自破矣。(백사지설 불공자파의) 백사의 말은 공격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뜨려질 것이니
烏足多辨。(조족다변) 어찌 많은 변설이 필요하겠는가?
且是時。(차시시) 또 이 당시
布衣立節如梁山璹比者。(포의입절여산숙비자) 벼슬이 없이 절의를 세운 사람, 예컨대 양산숙과 같은 이가
不爲不多。(불위불다) 적지 않았다.
晉州之陷。(진주지함) 진주성이 함락되었을 때
崔兵使幕下文進士弘獻。(최병사막하문진사홍헌) 최병사 막하의 진사 문홍헌과
高臨陂幕下。吳正字玭。(고임피막하 오정자빈) 임피현련 고종후 막하의 정자 오빈이
與山璹同死。(여산숙동사) 양산숙과 함께 죽었건만
而白沙不及焉。何也。(이백사불급언,하야) 백사는 이들을 언급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彼弘獻等數人。(피홍헌등수인) 저 문홍헌등 몇 사람은
姓名不甚著顯。(성명불심저현) 성며이 현저히 드러나지 않아
白沙或有不及聞之者。(백사혹유불급문지자) 백사가 혹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高霽峯錦山之敗。(고제봉금산지패) 고제봉이 금산에서 패할 때
安瑛之授馬步從。(안영지원마보종) 말을 내주고 걸어서 뒤를 띠른 안영이나
柳彭老之斫奴馳進。(유팽로지절노치진) 종의 팔을 자르고 말달려 나간 유팽노는
此實千萬古所未有之義士。(차실천만고소미유지의사) 실로 만고에 없었던 의사들이다.
況若高從厚兄弟。 (황고종후형제) 더구나 고종후 형제가
一則與父同死。(일즉여부동사) 하나는 아버지와 함께 죽고
一則爲父復讎。 (일즉위부복수) 하나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죽었으니
眞所謂忠孝雙全者。 (진소위충효쌍전자) 참으로 이른바 충효 둘을 온전히 이룬 자이다.
而白沙無一言及之。何也。(이백사무일언급지,하야) 그런대도 백사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러한가?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는 또 말하기를
鳴梁之戰。安衛以一縣令。(명량지전 안위이일현령) 명랑 전투에서 안위가 일개 현령으로
受舜臣分付。以一大艦。(수순신분부 이일대함) 이순신의 분부를 받아 큰 전함 한 척으로
摧却賊船五百餘艘。(최각적선오백여수) 적선 5백여척을 격파하여
使賊不敢復窺全羅右道。(사적불감북규전라우도) 적으로 하여금 감히 전라우도를 엿보아
而直衝於忠淸道者。(이직충어충청도자) 곧바로 충청도로 진격하지 못하게 한 것은
衛之功也云云。(위지공야운운) 안위의 공이었다 하였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 기역오의) 백사의 이 말 또한 오류이다.
夫舜臣之再爲統制也。(부순신지재위통제야) 대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聞慶尙右水使裴楔。(문경상우수사배설) 경상 우수사 배설이
以所帶戰船。來泊會寧浦。 (이소대전선 래박회령포) 전선을 거느리고 회령포에 머무르고 잇다는 소문을 듣고
單騎馳到。咨楔以進取之計。(단기치도 자설이진취지계) 단기로 찾아가 배설에게 진군할 계획을 자문했다.
楔托以助戰湖南幕下。(설탁이조전호남막하) 배설은 호남의 막하에서 도와 싸워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棄船宵遁。(기선소둔) 배를 버린체 밤에 도망하니
舜臣收合其散亡餘船八九艘。(순신수합기산망여선팔구수) 이순신은 그 흩어진 배 8~9척을 수합하여
邀擊於碧波亭下。(요격어벽파정하) 벽파정 아래서 적을 맞아 공격하였으나
彼衆我寡。勢難抵當。(피중아과 세난저당) 적군은 많고 아군은 작아 대적하기 어려운 형세였다.
舜臣令諸將列艦渡口。(순신영제열함도구 0 이순신은 여러 장수에게 명령하여 전함을 해협 입구에 배치케 하고
以待賊至。(이대적지)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夜間。衛擧碇而逃。(야간 위거정이도) 밤이 이슥해지자 안위가 닻을 올리고 도망하니
舜臣覺之。執而將斬。(순신각지 집이참장) 이순신이 이를 알고 잡아와 목을 배려 하였다.
衛大聲疾呼曰。願立功自效。(위대성질호왈 원립공자효) 안위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원컨대
공을 새워 스스로 충성을 드러내겠습니다. 하니
諸將亦皆請釋。舜臣許之。(제장역개청석 순신허지) 여러 장수들도 모두 풀어주기를 청허였다. 이순신이 허락하여
衛遂進戰。撞破賊船若干艘。(위수진전 당파적선약간수) 안위는 마침내 싸움에 나아가 적선 몇 척을 쳐부수었는데
衛之功。僅足以贖前罪而已。(위지공 근족이속죄전죄이이) 안위의 공은 겨우 이전의 죄를 갚았을 뿐이다.
其時避亂諸船。皆知舜臣之爲。(기시피란제선 개지순신지위) 그 당시 난을 피하여 온 여러 전선이 모두
이순신의 사람됨을 알고
人恃而無恐。至於爲疑兵助聲援。(인시이무공 지어위의병조성원) 믿어 두려움이 없게 되었으며,
심지어 의병을 만들어 소리내어 도우면서
無一人叛去者。(무일인반거자) 한 사람도 배반하고 도망가는 자가 없었다.
而衛也以諸將反欲逃避。(이위야이제장반욕도선) 그런데도 안위는 장수로서 오히려 도피하려고
했으니
其心巧詐。有不可測。(기심교사 유가불측) 그 간교한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白沙其未之聞歟。(백사기미지문여) 백사는 이를 아직 듣지 못했는가?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는 또 말하기를
李薲自臨津敗所。直入行朝。(이빈자임진패소 직입행조) 이빈은 임진강의 패한 곳으로부터 곧장 행조로 들어가
同守平壤。平壤不守。退還定州。(동수평양 평양불수 퇴환정주) 함께 평양을 지켰고, 평양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정주로 물러나
收拾散兵。復陣順安。(수습산병 복진순안) 흩어진 병사를 수습하여 다시 순안에다 진을 쳐
以爲遮絶之計。(이위차절지계) 차단할 계략을 세웠다.
崔遠率所部兵。入據江華。 (최원솔소부병 입거강화) 최원이 소속 부대를 이끌고 상화로 들어가
거점을 마련하였다.
吾嘗以爲亂後諸將。惟薲與遠。 (오상이위난후제장 유경여원) 나는 일찍이 전란 뒤에 여러 장수중에서 오직 이빈과 최원만이
不失人臣之義也云云。(불실인신지의야운운) 신하의 의리를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였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기역오의) 백사의 이 말 또한 잘못이다.
李薲自臨津敗所。直入行朝。(이빈자임진패소 직입행조 ) 이빈이 임진강에서 패한 이후 곧장 행조로 들어간 것은
視諸潰散而他走者。(시제궤산이타주자) 싸움에서 무너져 도주한 다른 사람에 비하면
則猶爲彼善於此。(즉유위피선어비) 그래도 그가 이 사람들보다는 낫다할 수 있으나,
其時助防將劉克良守淺灘。(기시조방장유극량수천탄) 그 당시 조방장 유극량은 얕은 여울을 지키고 있다가
賊至。克良先登陷陣。(적지,극량선등함진) 적이 몰려오자 극량이 선봉에 서서 공격하다가 진영이 함락됨에
力戰而死。(역전이사) 힘껏 싸우다 죽었다.
使薲能盡力擊賊。一如克良。(사빈능진력격적 일여극량) 이빈이 유극량처럼 있는 힘을 다하여 적을 격파하였더라면
則謂之盡人臣之義。可也。(즉위지진인신지의 가야) 신하의 의리를 다했다고 말하눈 것이 옳다.
若徒以直入行朝。(약도이짓입행조) 그러나 만일 곧장 행조로 들어간 것만 가지고
爲盡人臣之義。(위진인신지의) 신하의 의리를 다했다고 한다면
則是以啓人臣不肯力戰。(즉시이계인신불긍역전) 이는 신하에게 힘껏 싸우지 않고
以入衛王室爲辭。(이입위왕실뤼사) 왕실로 들어가 호위한다는 핑계를 만들어
謀避軍律者之弊也。(모피군률자지폐야) 군율을 피하려 획책하는 폐단을 여는 것이니
無乃不可乎。(무내불가호) 그르지 않은가?
況癸巳晉州之圍。(황계사진주지위) 더구나 계사년에 진주성이 포위되었을 때
薲與義兵諸將。(빈여의병제장) 이빈은 여러 의병장과 함께
約同守城。及其入也。(약동수성 급기입야) 성을 지키기로 약속했으면서도, 정작 성에 들어갈 때
托稱外援。徑還內城。(탁칭외원 경환내성) 외각의 원조를 핑계대고 곧 내성으로 돌아왔으니
薲之心事。至此而見矣。(빈지심사 지차이견의) 이빈의 마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崔遠以全羅兵使。(최원이전라병사) 최원은 전라병사로서
聞京城失守。移書列邑。 (문경성실수 이서열읍)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고을에 글을 보내
弓劍資糧。皆令埋置山谷。(궁검자량 개영매치산곡) 활, 칼, 군량을 모두 산골짜기에 묻어두도록 명하고
頓無赴難之意。(돈무부난지의 ) 급히 전쟁터로 달려갈 뜻이 없었다.
多士憤惋。欲上疏請罪。(다사분원 욕상소청죄) 많은 선비들이 분하게 여겨 소장을 올려 죄를 청하려 하자
遠懼。始與金倡義。同入江都。(원구.시여김창의 동입강도) 최원은 두려워 비로소 김창의(김천일)와 함께 강화도로 들어갔으니
蓋出於不得已也。(개출어부득이야) 대개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다.
此可謂盡人臣之義乎。(차가위진인신지의호) 이것을 두고 신하의 의리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는가?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가 또 말하기를
當大駕西巡。(당대가서순) 어가가 서쪽으로 몽진하자
人之視西路爲死地。(인지시서로위사지) 사람들은 서쪽 길을 사지로 보고
咸以爲終必爲賊所躡。 (함이위종필위적소) 모두 끝내 왜적에게 짓밟히고
至於窮蹙而同歸於麋爛也。(지어궁척이동귀어기해지간) 궁지에 몰려 함께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고 말했다.
諸將率皆翺翔躑躅於畿海之間。(제장솔개 상정촉어기해지간) 여러 장수들도 모두 기해(경도와 황해도)의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고 (상황을 보아)
以爲前却之計。(이위전각지계) 나아가고 물러갈 계획을 세웠다.
及臨津之敗。(급임진지패) 임진강에서 패하게 되자
諸將潰散。各自逃生。(제장궤산 각자도생) 여러 장수들은 가각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고
平壤不守。諸將以爲事無可爲。(평양불수 제장이위사무가위) 평양마저 함락되자 여러 장수들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하고
皆渡浿水而南。(개도패수이남) 모두 패수를 건너 남으로 가니
至於文臣之有識者。(지어문신지유식자) 심지어 문신으로 식견이 있는 사람까지도
亦從以南歸。(역종이남귀) 역시 남쪽으로 따라갔다.
行朝事急。敎書羽飛。(행조사급 교서우비) 행조에서는 사태가 위급함에 교서를 서들러 보내
日徵勤王。諸將疑畏。(일징근왕 제장의외) 날마다 근왕병을 모집하였다. 여러 장수들은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
無敢西向。或外托勤王。(무패서향 혹외탁근왕) 감히 서쪽으로 향한 자가 없었고 혹자는 밖에거 근왕한다 핑계를 대고
領兵溯海。尋見妾居。(영병소해 심견첩거) 병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 첩들이 사는 곳을 찾아
載與同歸者有之。(재여동귀자유지) 이들을 싣고는 함께 돌아가는 자도 있었다.
或下令軍中。罷兵逃歸。(혹하령군중 파병도귀) 혹자는 군중에 영을 내려 군사를 해산하여 도망가도록 하고
以爲觀望之計。(이위관망지계) 관망할 계획을 새워
見徵兵書。對人冷笑者有之。(견징병서 대인냉소자유지) 징병서를 보고는 냉소하는 자도 있었으니
人心至此而極矣云云。(인심지차이극위운운) 인심이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하였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 기역오의) 백사의 이 말 역시 잘못되었다.
所謂翺翔躑躅於畿海之間者。何人。(소위 고상척촉어기해지간자 하인) 기해의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臨津之敗。各自逃生者。何人。(임진지패 각자도생자. 하인) 임진강에서 패하자 각자 살기위해 도망한 자가 누구인가?
平壤不守。皆渡浿水而南者。何人。(평양불수,개도패수이남자,하인) 평양이 함락되자 모두 패수를 넘어 남쪽으로 간 자가 누구인가?
文臣之有識。亦從而南歸者。何人。(문신지유식,역종이남귀자,하인) 식견이 있는 문신으로서 또한 따라서 남으로 간 자가 누구인가?
溯海尋妾。載與還歸者。何人。(소해심첩,재여환귀자,하인)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 첩을 찾아 싣고 함께 돌아간 자가 누구인가?
下令軍中。罷兵逃歸者。何人。(하령군주,파병도귀자,하인) 군중에 영을 내려 군사를 헤산하고 도망가도록 한 자가 누구인가?
見徵兵書。對人冷笑者。何人。(견징병서,대인냉소자,하인) 징병서를 보고 냉소한 자가 누구인가?
此則人臣莫大之罪。(차즉인신막대지죄) 이들은 신하로서 막대한 죄를 범해
天地所不容也。(천지소불용야) 천지에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白沙超拜兵判。(백사초배병판) 백사는 병조판서에 승진 임명되어
出入七年。常主中兵。(출입칠년상주중병) 7년 동안 출입하면서 항상 군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아
凡諸將功罪。旣以領略云。(범제장공죄 기이영략운) 여러 장수들의 모든 공과 죄를 이미 명확히 파악했다고 한다면
則何不於其時隨輕重。(즉하불어기시수경중) 어찌하여 그때 가벼움과 중함에 따라
明定其罪。(명정기죄) 그 죄를 밝혀서
以懲當時爲臣不忠者乎。(이징당시위싢불충자호) 당시 신하로서 불충한 자를 징계하지 않았는가?
旣不能定其罪。(기불능정기죄) 또 이미 그 죄를 밝혀서 정할 수 없었다면
則今於立言之際。(즉금어입언지제) 지금 논의할 때에라도
固當直書以戒後人。可也。(고당직서이계후인,가야) 마땅히 올곧게 적어서 후인을 경계함이 옳건만
反諱其姓名。(반휘기성명) 도리어 그 성명을 숨겨
爲此不明之語。(위차불명지어) 이처럼 불분명한 말을 늘어 놓으니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러한가?
至於朴晉。權應銖輩。(지어박진,권응수배) 박진과 권응수 같은 무리들은
只有些小勦捕之功。(지유사소근포지공) 단지 적을 공격하여 포획하는 사소한 공을 세웠을 뿐인데
而虛張啓聞。欺罔朝廷。(이허장계문 기망조정 ) 이를 과장하여 장계를 올려 조정을 속였다.
雖以白沙之明。(수이백사지명) 따라서 백사의 총명함으로도
未免爲溢美過實之論。(미면위일미과실지론) 칭찬에 지나쳐 실상을 놓쳤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으니
則其他又何說。(즉기타우하설) 기타는 또한 말해 무엇 하겠는가?
噫。自東西分黨之後。(히,자동서분당지후) 아! 동서로 분당된 후에
大小臣僚。惟以附會時論。(대소신료 유이부회시론) 대소 신료들은 오직 시론에 붙어서
誣陷忠賢爲事。(무함충현위사) 충신과 현인을 모함하는 것을 일로 삼고
至於國家安危。生民休戚。(지어국가안위 생민휴척) 국가의 안위와 백성의 기쁨과 근심은
則置之於相忘之域。是誠何心。(즉치지어상망자역 기성하심) 생각 밖에 두었으니 이는 참으로 무슨 마음인가?
尤可痛者。(우가통자) 더구나 통탄할 일은
辛卯春。(신묘춘) 신묘년 봄에
通信使允吉黃等。(통신사윤길황등) 통신사 황윤길등이
與倭使玄蘇,平義智,平調信等。(여왜사현소,평의지,평조신등) 왜의 사신 현소.평의지.평조신등과 더불어
持平酋報書而來。(지평추보서이래) 평추(풍신수길)의 답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其書曰。(기서왈) 그 글에서 말하기를
將一超直入太明國。(장일초직입대명국) 장차 단번에 바다를 건너 곧바로 명나라에 들어가
易吾朝風俗於四百餘州。(역오조풍속어사백여주) 우리 조정의 풍속을 4백여 주에 바꿔놓고
施帝都政化於億萬斯年者。(시제도정화어억만사언자) 제도(일본)의 정치와 교화를 억만년 동안 배풀고자하는 생각이
在吾方寸中。(재오방촌중) 내 마음 속에 있었다.
貴國先驅而入朝。(귀국선구이입조) 그런데 귀국(조선)이 먼저 달려와 입조하니
有遠慮無近憂者乎。(유원려무근우자호) 길이 생각하여 가까운 근심을 없앤 것이다.
遠方小島在海中。(원방소도재해중) 먼 나라와 바다에 있는 소도 가운데
後進輩者。不可作許容也。(후진배자 불가작허용야) 늦게 입조하는 자들은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予入大明之日。(여입대명지일) 내가 대명(명나라)에 들어가는 날에
取路貴國南邊。(취로귀국남변) 귀국의 남변(남쪽 변경)의 길을 취할 것이니
將士卒望軍營。(장사졸망군영) 사졸을 이끌고 나의 군영으로 우러러보면서 온다면
則彌可修隣盟也。(즉미가수린맹야) 이웃 간의 동맹이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하였다
其曰。入大明易吾朝風俗。(기왈,입대명역오조풍속) 그들이 ‘명나라에 들어간다,’ ‘우리 조정의 풍속을 바꾼다고’ 한 말은
施帝都政化云者。(시제도정화운자) 제도(일본)의 정치와 교화를 베푼다 한 말은
是欲取大明。(시욕취대명) 명나라를 취하여
易施其日本風俗政化也。(역시기일본풍속정화야) 일본의 풍속과 정치, 교화로 바꿔 베풀겠다는 것이다.
其曰。先驅入朝。(기왈선구입조) 그들이 먼저 달려와 입조하니
有遠慮無近憂云者。(유원려무근우운자) 깊이 생각하여 가까운 근심을 없앤 것이다 고 한 말은
是以我國今日之遣使。(시이아국금일지견사) 우리나라가 금일에 사신을 보낸 것을
爲有遠慮也。(위유원려야) 멀리 생각함이 있었다고 한 것이다.
其曰。遠方後進輩不作許容云者。(기왈,원방후진배부작허용운자) 그들이 먼 나라에서 늦게 입조하는 자들은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한 말은
是先入朝者許容。(시선입조자허용) 먼저 입조하는 자는 용서를 받고
後至者有戮之也。(후지자유육지야) 늦게 오는 자는 죽이겠다는 것이다.
其曰。將士卒望軍營云者。(기왈,장사졸망군영우자) 그들이 사졸을 이끌고 나의 군영으로 우러러 보면서 온다 고 한 말은
是欲令我國整軍馬從征之也。(시욕영아국정군마종정지야) 우리나라로 하여금 군마를 정돈하여 정벌에 따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且玄蘇留東平館。(차현소류동평관) 또 현소가 동평관( 조선시대에 일본의 사신이 머물던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有詩曰。(유시왈) 시를 지었는데
蟬噪忘螳捕 (선조망당포) 매미는 사마귀에 잡힐 것을 잊은 채 지저귀고
魚游喜鷺眠 (어유희로면) 물고기는 백로가 조는 것을 기뻐하며 놀고 있네 하였다.
是以蟬魚比我國。(시이선어비아국) 여기에서 매미와 물고기는 우리나라를 비유하고
螳鷺比日本也。(당로비일본야) 사마귀와 백로는 일본을 비유한 것이다.
及蘇回至東萊。大書館壁曰。(급소회지동래 대서관벽왈) 현소가 동래로 돌아와 대서관벽왈
明年若得東風便。(명년약득동풍편) 내년에 만약 동풍이 잦아지면
七十三州談笑中。(칠십삼주담소중) 일흔 세 고을을 웃으며 취하리라 하였다.
當此之時。萬口一談。(당차지시 만구일담) 이러한 때를 맞아 모든 사람이 한 입으로
皆以爲賊必大擧。(개이위적필대거) 왜적이 반드시 대거 침입할 것이다 말하였는데
而朝廷則上下相慶。(이조정칙상하상경) 조정에서는 상하가 서로 경하하면서
謂賊萬無來理。(위적마누래리) 왜적이 쳐들어올 리 만무하다 하고
悉罷防禦諸事。(실파방어제사 ) 방어하는 여러 일들을 모두 폐기하였다.
至以趙重峯先事豫謀備倭之策。(지이조중봉선사예모비왜지책) 심지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대비하는 계책을 미리 세우라 한 조중봉을
以爲妖鬼。(이위요귀) 요귀라 하고
非惟不受其疏。(비유불수기소) 그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又按治其居停主人抵以罪。(우안치기거정주인저이죄) 그가 숙박한 여관의 주인을 죄로써 다스려
使不得接跡於都下。(사부득접적어도하) 서울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必欲殺之而後已。(필욕살지이후이) 반드시 그를 죽인 뒤에 그만두려고 하였다.
國家之事。終至於罔極之地。(국가지사 종지어망국지지) 국가의 일이 끝내 망극한 지경에 이른 것은
此無他。不過偏黨之所致也。(차무타 불과편당지소치야) 다른 게 아니라 단지 당파에 치우친 소치이다.
是以先王駐龍灣所製詩。(시이선왕주용만소제시) 따라서 선왕(선조)께서 용만(의주)에 있을 때 시를 지었는데
有痛哭龍灣月。(유통곡용만월 ) 용만의 달을 보며 통곡하고
傷心鴨水風。( 상심압수풍 ) 압록강 바람에 마음을 상하노라
朝臣當此日。( 조신당차일 ) 조정의 신하들 오늘을 당해서도
尙可復西東 ( 상가복서동 ) 오히려 다시 서인과 동인을 따질 것인가
之句。지구 라는 시구였다.
至此而臣子之心。 (지차이신자지심) 여기에 이르러 신하된 자의 마음에
庶幾感動。(서기감동) 느낀 자가 있을 법도 하지만
而其在顚沛流離之日 (이기재진패유리지일) 그들은 엎어지고 자빠져서 뿔뿔이 흩어지는 날에도
尙無悔悟憂國之念。(상무회오우국지념) 오히려 뉘우쳐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은 없고
徒事餔餟。無異平常。(도사포체 무이평상) 평상시와 다름없이 한갓 마시고 먹는 것을 일삼았다.
其時 天兵最下者。(기시 천병최하자) 그 당시 명나라 군사 중 제일 아래에 있는 자가
題義州別館曰。(제의주별관왈) 의주의 별관에 적기를
亡國大夫朝五食。(망국대부조오식) 망국의 대부는 아침 다섯시에 먹는데
東征將士日午飢。(동정장사일오기) 동쪽으로 정벌하러온 장사는 정오까지 굶는다 하니
蓋譏之也。(개기지야) 대개 그것을 희롱한 것이다.
後庚子正月。(후경자정월) 그 후 경자년(선조 33, 1600) 정월에
李提督如松牌文。有曰。(이제독여송패문 유왈,) 제독 이여송의 패문에 이르기를
壬辰十二月二十五日。渡江以來。(임진십이월이십오일 도강이래) 임진년 12월 25일 강을 건너온 이래
體察使朝鮮國首臣柳成龍,尹斗壽等。(체찰사조선국수신유성룡,윤두수등) 조선국의 체찰사로 으뜸가는 신하 유성룡, 윤두수등은
不以臥薪嘗膽。爲心雪恥除兇。(불이아신상담 위심설치제흉)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치욕을 씻고 흉악한 왜적을 없애는데 생각을 쏟지 않고
注念宴安私家。恣酒自樂。(주염연안사가 자주자락) 사가에서 편안히 거처하며 방자하게 술을 마시고 스스로 즐겼습니다.
非惟藐慢天朝。抑且自欺國王。(비유맥만천조 억차자기국왕) 이는 명나라 조정을 없신여겻을 뿐 아니라 또 스스로 국왕을 속인 일이니
悖禮蔑敎。殆有甚焉天云。(패례멸교 태유심언천운) 예를 어그러뜨리고 가르침을 무시함이 너무 심합니다 하였다
國之不亡。(국지불망)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皆是天朝大臣及我國諸義將戮力之功也。(개시천조대신급아국제의병장육력지공야) 모두 명나라 조정의 대신 및 아국의 여러 의병장들이 죽기로 싸운 공 때문입니다.
及其大駕還都。(급기대가환도) 대가가 서울로 돌아옴에 이르러
誤事諸臣。(오사제신) 국사를 그르친 여러 신하들은
所當闔門辭避。(소당랍문사피) 마땅히 문을 닫고 사피하여
以謝亡國之罪。(이사망국지죄) 나라를 망하게 한 죄를 빌어야 했는데도
而未聞有一人爲此擧措。(이미문유일인위차거조) 이와 같이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말응 듣지 못하였다
顧自以爲有恢復扈從之功。(고자이위유회복호종지공) 도리어 스스로 나라를 회복하고 임금을 호종한 공이 있다고 말하며
揚揚自得。廉恥都喪。(양양자득 염치도상) 의기양양하여 염치를 모두 잃었다.
至於諸將士宣武錄功之際。(지어제장사선무록공지제) 심지어 여러 장사들의 무공을 기록하여 포상할 때에도
專用請托愛憎。(전용청탁애증) 오로지 청탁에 의지하여 사랑하고 미워하니
有功者不錄。(유공자불록) 공이 있는 자가 기록되지 못하고
無功者錄之。(무공자록지) 공이 없는 자가 기록되었다.
雖以金倡義,趙重峯,高霽峯,崔兵使,黃進,鄭運,金大仁之功。(수이김창의 조중봉,고제봉,최병사,황진,정운,김대인지공) 비록 창의사, 조중봉, 고제봉, 최병사, 황진, 정운, 김대인의 공이라 할지라도
皆不得與焉。(개부득여언) 모두 기록될 수 없었으니
則至于今數十年後。(즉지우금수십년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人情莫不憤鬱。(인정막불분울) 인정이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白沙之定論。(백사지정론) 백사의 정론이
其何不及於此也。(기하불급어차야) 어찌하여 여기에는 미치지 못했는가?
可惜可歎。(가석가탄) 애석하고 통탄할 일이다.
是歲至月之望。(시세지월지망) 이 해(1633) 11월 보름에
牛山老人書。(우산노인서) 우산노인이 씀
附趙浦渚跋文 (부조포저발문) 조포저의 발문을 덧붙임
翼觀安士彥所論白沙之失。(익관안사언소론백사지실) 익이 백사의 실수를 논한 안사언의 글을 보았는데
鑿鑿皆中其病。착착 개중기병 조리가 분영하여 그 잘못을 찌른 것이다
而當時諸臣善惡功罪。(이당시제신선악공죄) 그리고 당시 여러 신라들의 선악과 공죄에 대해
皆指實跡可據。(개지실적가거) 다 증거할 만한 실제 행적을 제시하여
無不森然如目見之。(무불삼연여목견지)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음이 없어서
深得微顯闡幽之義。(심득미현천유지의) 은미한 것을 드러내고 그윽한 것을 들춰내는 뜻을 깊이 얻었다
夫白沙於近世卿相。(부백사어근세경상) 백사는 근세의 경상으로
可謂偉然者。(가위위연자) 위대한 인물이라 말할 수 있지만
而其所見疏謬如此。(이기소견소류여차) 그의 소견이 이처럼 성글고 그릇되는데
況其餘有可信者乎。(황기여유가신자야) 더구나 그 나머지에 믿을 만한 것이 있겠는가?
今得卞而正之。(금득변이정지) 이제 이를 변론하고 바로잡아
使死者有知。(사자약유지) 죽은 자로 하여금 알게 하니
必深服其失於九原。(필심복기실어구원) 반드시 저승에서도 그 실수를 깊이 인정할 것이요
而且免誤後人耳目也。(이차면오후인이목야) 또 후인의 이목을 그릇되게 함을 면할 것이다.
嗚呼盛哉。(오호성재) 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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