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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3)
해마다 봄 산에는 아카시아 꽃 향기
보리밭 푸른 물결 하늘 위 종달새 울면
꿈에런 듯 보고 싶은 어머니. 아, 그리워라
해마다 가을 벌판에는 하얀 서리꽃 피네
추수 끝난 빈들에 찬바람 스며들 때면
부둥켜안고 울고 싶은 어머니. 아, 그리워라
(2015. 6. 9.)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아, 잎보다도 먼저 피는 저 희디 흰 꽃송이라니. 너는 왜 그렇게 봄을 알려주기 위해 서둘러 피는가.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얼굴로 핀 순백의 꽃이여.
나는 봄이 되면 언제나 ‘장사익’이 서글프게 부르는 「꽃구경」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아들은 처음부터 꽃구경을 하러 나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기에 어머니를 버리러 나선 것일까. 어머니는 처음에는 정말 꽃구경을 하러 가는 줄 알았을까. 그래서 아들의 등에 업힌 것이 정말 즐거웠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보다, 자신을 산에 버리고 내려가는 자식의 안전이 더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솔잎을 따서 버렸을 것이다.
장사익의 구성진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나는 저절로 눈물이 났다. 아, 어머니라는 그 이름은 누가 지었던가. 어머니,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는 어머니.
나는 늘 그랬다.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내게는 그저,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사람이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기에, 나는 살면서 어머니를 원망해본 적 없고, 미워해 본 적 없고, 어머니에게 서운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언제 어떠한 이유로든 미워할 수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엄마를 미워하나, 엄마에게는 그러면 안 된다. 엄마는 원망해서도 안 된다. 엄마에게 서운해 해서도 안 된다. 왜? 엄마이니까. 단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딸은 엄마에게 서운하다고 그렇게 차가운 얼굴로 엄마를 대한다는 말인가,
아빠인 나에게는 괜찮다. 언니에게도 서운해 할 수 있다. 아빠를 미워하거나, 아빠에게 실망하거나, 언니를 미워하거나, 언니에게 원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얘야, 내 아가야. 내 귀여운 딸아, 엄마에게만은 그러면 안 된단다. 엄마는 너를 낳은 사람이고 너를 사랑한다. 너는 엄마의 빛이고, 사랑이고, 존재의 이유 그 자체이다. 엄마에게 가서 물어보라. “엄마는 아빠랑 나 둘 중 누구를 더 사랑해?” 이런 다섯 살 박이 어린애 같은 질문의 답은 아마 뻔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 딸, 귀여운 딸인 너를 더 사랑할 것이다.
아니다. 틀렸다. 질문이 틀렸다. 아마도 엄마는, 엄마 자신보다도 더 너를 사랑할 것이다. 왜?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머님은혜는 푸른 바다 그보다도 더 넓은 것 같다”던 동요의 노랫말은 정말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한 가지 밖에 없을 것이다. 네가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는 것. 세상 모든 엄마가 딸에게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 이것아,” 이지만, 그 말은 진리(眞理)이다. 어찌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네가 엄마의 깊은 마음을 알겠느냐...
그날 저녁 딸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의 전화를 받은 딸아이 방에서는 이내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친구와의 대화가 끝나자 다시 정적이 흘렀다. 가엾게도... 아내는 녀석의 방 앞에서 닫힌 문을 속절없이 바라보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날도 딸은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홍삼을 타서 들고 딸아이 방문을 열고 책상 위에 놓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안방에 가서 잠 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짐짓 태연한 듯 물었다. 우리 딸아이 왜 저러는 거야? 몰라요. 나도 별 말 안했거든. 그냥 과격한 말을 하기에 한번 꼬집었을 뿐인데... 그래서 그러나?
아내는 이내 돌아누웠다. 그러나 몇 시간이 되도록 아내는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나는 물론 아빠로써 화가 났다. 녀석에게 다가가, 너. 당장 엄마에게 사과해. 엄마가 무엇을 너에게 그렇게 잘못했니? 아무리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해도 자식으로써 그럼 되느냐 하고 말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 역시 용기가 나지 않았다. 딸아이를 가르치기 보다는 녀석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딸아이는 모를 것이다.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리는 자식조차도 사랑하는 것이 부모라는 사실을. 그래서 자식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도 자식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부모라는 것을.
이제 우리도 환갑을 넘었다.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드는 것을 실감하며 산다. 눈이 침침한 것은 물론이고 버스에서 내릴 때조차 무릎이 시리다. 몸은 느려지고 감각은 둔해졌다. 기억력은 감퇴하고 판단력은 흐려졌다. 기운은 쉽게 무너지고 힘은 갈수록 약해진다.
아내는 나의 거울과 같다. 그녀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수분이 빠지면서 쭈글쭈글해지는 손, 줄어드는 키와 머리카락, 예전에 그렇게도 내가 가슴으로 아파했던 어머니의 늙은 모습을 이제는 아내가 대신하고 있다.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사람, 그 사람이 이제 아내이다(後略).
2017. 4. 4.
(前略)
금세 더워진 하루, 목이 탔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 벌컥 마시며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길가에 주저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운전사도 머리가 하얀 백발이었다. 그도 어버이였던 것이다. 그는 비록 어버이였지만 바로 오늘, 어버이날 하루도 쉴 수 없는 모양이었다.
버스에는 어버이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는 어버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나는 왜 환갑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아들이고 싶은 것일까, 나는 내가 어버이라는 것이 여전히 낯설다.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인가, 어버이의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어버이임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니 내가 한심한 것인가 아니면 철이 안 든 것인가. 나는 그저 영원히 자식이고 싶은 것인가.
내 머리카락이 전부 하얘지고, 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내 손과 발이 아무리 쭈글쭈글해지더라도 나는 한번만 내 어머니 무릎 위에 머리를 뉘이고 싶다. 어머니 무릎 위에 내 머리를 뉘이고, 내 어머니 손을 한번만 잡고 그 따뜻한 온기(溫氣)를 느끼고 싶구나.
문득 ‘아버지 날 낳으시고...’ 하는 명심보감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이렇다.
時曰父兮生我母兮鞠我哀哀父母生我劬勞欲報深恩昊天罔極
시왈 부혜생아 모혜국아 애애부모 생아구로 욕보심은 호천망극
▶ 시전에 가로되,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슬프고 슬프도다. 어버이시어,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할진데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느니라.”
子曰孝子之事親也居則致其敬養則致其樂病則致其憂喪則致其哀祭則致其嚴
자왈 효자지사친야 거칙치기경 양칙치기락 병칙치기우 상칙치기애 제칙치기엄
▶ 공자 가로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진대 기거에는 공경함을 다하고 받들어 섬김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할지니라.”
하지만 오늘날 이런 명심보감을 실천하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이며, 실천은커녕 이를 알기나 하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어머니 아버지를 전부 잃었고, 이제 남은 부모는 장모님뿐이니 장모님께라도 진정한 효(孝)를 다해야 할 것이다.
해마다 어버이날 무렵이면 아내는 구순(九旬)이 다 된 노모(老母)를 찾아간다. 가서 용돈도 드리고 곡식값도 드리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내의 발걸음을 당기는 것은 그래도 자신을 잉태하고 낳아주신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생명을 잉태하고 이 세상에 내놓아준 그 분. 그래서 어머니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열 달 동안이나 자궁 속에서 서서히 생명체가 되어가는 그 아기는 분명 모든 것을 그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리라. 만일 아기를 품은 어머니가 죽으면 당연히 아기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기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 자신과 한 몸이 되어 키워낸 아기야말로 얼마나 소중하고 친밀하고 뜨거운 존재인가, 온 우주를 담은 하나의 생명. 그러한 생명을 존재하게 한 모든 어머니는 그래서 위대하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어머니의 존재와 사랑에 대하여 자식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존경하는가, 오늘도 단지 살기 위해서 온갖 삶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어머니들이 나는 다 안쓰러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머리에 수건하나 쓰고 밭고랑에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시던... 하늘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이 늘 분주하시던 그 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힘겹게 살아야만 했을까.
내가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어머니를 닮았고 어머니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같았으리라는 가정 하에, 내가 미루어 짐작하건대 어머니는 아마도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당신이 낳은 자식들이므로 어미로써 최선을 다하여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없던 힘까지 짜내서 삶을 지탱하셨을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으리라. 그 어떤 것보다 앞서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이 있었기에 6남매를 부둥켜안고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에게 주어진 그 벅찬 무게를 어머니는 어떻게 견디셨을까.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하던 그 이미자의 노래처럼 그렇게 어머니도 여자의 일생은 그런 것이라고 듣고 배우면서 그저 참고 참아가면서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또 견뎌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로서의 삶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셨을 것이다.
과연 그 시절 우리 어머니같이 살았던 많은 어머니들이 요즘 아이들처럼 자식 하나를 키워서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까지 시키려면 몇 억 원이 들고, 자식이 있으면 경력이 단절되고 자기가 희생해야 되고 어쩌고 하는 계산을 하면서 자식조차 낳지 않으려고 했을까. 내 생각에 그런 생각을 하는 어머니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죽이든 밥이든 닥치는 대로 먹여가면서 우선 살아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대학을 보내든 못 보내든 장차 자식들이 무엇이 되든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저 자식들 배곯게 하지 않고 잘 먹여서 건강하게 자라게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에게는 힘겨웠을 것이다. 일단 배고픈 문제가 해결되고 나더라도 도시에서는 살 집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집 저 집 셋방살이를 옮겨가면서, 연탄리어카로 이사를 하면서라도 한뎃잠을 자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또한 늘 힘드셨을 것이다.
그러니 배 안 곯고 잠잘 방이 있는 것만도 벅찬 상황에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르칠 능력이 되었겠는가. 덕분에 우리는 늘 배우고 싶은 열망에 몸부림쳐야만 했었다.
산다는 것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슬퍼질 때 나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늘 “각다분하다”고 푸념하시던 그 조그맣고 힘없고 불쌍하기만 한 내 어머니를. 아직 어리기만한 자식들을 혼자 품어 안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느꼈을 때 그 엄청난 절망감과 외로움을 누가 이해할 수 있었으랴.
아, 그래서 나는 아직도 어버이가 되지 못하고 자식인 채로 남아 있는 가보다. 아니 어머니의 자식인 채로 남아 있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붉은색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릴 살아 계신 가슴이 없는 나는... 그래서 5월이 슬프다. 가슴이 아프고 서럽다. 어딘가 주저앉아서 실컷 울고 싶다.
아, 한번이라도 그 조그만 몸을 끌어안고 실컷 울 수 있다면. 혼자서 그만큼 살아내시느라고 고생했다고 위로라도 바칠 수 있다면. 그 까짓 자식들이 뭐라고, 그냥 전부 제 살길 찾아가라고 내 버리고 혼자 팔자를 고치지 그랬느냐고 한번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해볼 수 있었으면...
그러나 당신이 어떤 분인지 나는 안다. 나는 그 분의 마음을 안다. 온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분이라는 것을. 아, 그래서 결국은 자신이 불에 타 죽을지언정 자식만은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어리석도록 가엾은 어머니였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어머니를 사지(死地)에 내 몬 것은 누구인가, 누구인가.
말을 해라. 이 뻔뻔하고 더럽고 탐욕스러운 자식들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울분과 탄식으로 마침내 길을 가다말고 아무데고 주저앉아 울었다. 너무나도 슬프고 원통하였다. 가슴에 피멍이 들어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 쓰리고 아팠다.
그러고도 너... 어버이라고? 너는 어버이가 될 자격이 없지 않은가. 저 분홍빛 카네이션을 보고 부끄러워하라. 아, 저 불길 속에 타버린 그 엄청난 모정을 너는 어이할거냐.
나는 천천히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줄 서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나도 섰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넘어져버릴 것 같은 노인들, 풀죽은 바지들 속에 비치는 가냘픈 다리들. 그런 노인들 속에 나도 있었다.
나도 이미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경로석부터 살펴보는 노인들, 그러나 이제 경로석도 거의 항상 만원이 된지 오래이다. 노인들은 힘없는 표정으로 빈 좌석을 찾는다. 그러나 빈 좌석은 없다. 노인은 할 수 없이 문가에 기대어 선다.
문이 열리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선다. 후끈 풍기는 젊음의 열기. 그들은 생기가 넘친다. 피부는 희고 다리는 튼튼하다. 벌써 반팔 티셔츠를 입고도 추워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 우악스러운 힘으로 노인들을 밀쳐버리지나 않을까 나는 공연한 걱정을 하고 서 있다.
그 수많은 노인들도 전부 어버이들이리라. 그들의 자식들은 우리 형제들처럼 뻔뻔하고 더럽고 탐욕스럽지는 않겠지. 그들의 자식들은 오늘 부모를 생각하며 무슨 선물들을 했을까.
그래도 분명한 것은 해마다 어버이날이라고 이렇게 지정이라도 해 두었기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모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날마저 없었다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거나 하는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오니 아이들이 일찍 퇴근하였고 큰딸이 주문한 연어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딸은 아내에게 화사하고 고운 카네이션꽃바구니를 선물하였다. 그렇게 우리 집의 어버이날은 이제 어엿하게 성장한 우리 딸들로 인해 풍성하였다... (2019.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