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싱크홀(sinkhole)
빗물에 녹는 석회암과 무리한 지하 공사에 싱크홀 생겨요
싱크홀(sinkhole)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9.10. 00:33 조선일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도로를 달리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땅속으로 사라졌어요. 땅이 갑자기 꺼져서 큰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구멍 크기가 무려 가로 6m, 세로 4m에다 깊이가 2.5m나 됐지요. 이 사고로 운전자 등 2명이 중상을 입었어요.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싱크홀 면적을 합치면 약 2.9㎢라고 해요. 여의도 면적만큼 땅이 내려앉은 것이죠. 싱크홀은 왜 발생하는 걸까요?
자연적으로 발생한 싱크홀
싱크홀은 땅이 가라앉아 생긴 구멍을 말해요. 석회암이나 암염 등으로 된 지층이 지하수와 지표수 등에 의해 유실되면서 땅이 깔때기나 원통 모양으로 붕괴되는 현상이죠. 우리나라에선 주로 석회암 지형에서 많이 나타나요.
싱크홀은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용해형’ 싱크홀입니다. 지표면에 노출된 석회암이 빗물이나 지표수에 의해 녹으면서 땅에 구멍이 생기는 걸 말해요. 석회암은 주성분이 탄산칼슘이에요. 탄산칼슘은 산에 잘 녹아요. 그런데 빗물이나 지표수에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녹아들어서 약한 산성을 띠어요.
그래서 빗물과 지표수는 지표면에 노출된 석회암을 녹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용해된 석회암이 많아지면서 구멍이 커져서 싱크홀이 생기는 거예요. 빗물과 지표수에 녹아서 생긴 싱크홀에는 물이 고여 웅덩이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그래픽=진봉기
다음은 ‘침하형’ 싱크홀이에요. 침하형 싱크홀은 모래가 많이 포함된 토양에서 발생해요. 땅속 석회암 일부가 지하수에 녹아서 빈 공간이 생길 때가 있어요. 그 위에 있던 입자가 작은 모래들이 그 틈새로 들어가요. 그러면 모래가 빠져나간 만큼 지표면이 움푹 파이고 싱크홀이 만들어지죠.
반대로 단단한 점토질 흙이 많이 포함된 토양에선 ‘붕괴형’ 싱크홀이 나타납니다. 점토는 입자끼리 붙어 있는 힘이 강해요. 그런데 아래 석회암이 지하수에 녹아 빈 공간이 생겼을 때 바로 위 일부 점토는 그 사이로 들어가요. 하지만 지표와 가까운 점토들은 서로 붙어 있어서 한동안 그 모양을 유지해요. 그러다 아래쪽 구멍이 점점 커지면 갑자기 땅이 무너져 싱크홀이 만들어져요.
도심의 땅 꺼짐은 인위적인 현상?
도심에서 싱크홀이 생기는 것은 인위적인 원인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과학자들은 이런 인공적 싱크홀을 자연의 싱크홀과 구분해서 ‘땅 꺼짐’이나 ‘지반 함몰’이라고 불러요. ‘지반 침하’라는 말은 자연과 인공 싱크홀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에요.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연희동에서 발생한 땅 꺼짐은 주변에서 진행 중인 공사로 인한 지하수 유출, 지하 매설물, 지형적 특성, 장마철 강우 등 복합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난 4일 밝혔어요. 주변 공사장의 영향과 지하 매설물(상하수도, 가스, 통신 등)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인공적인 원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픽=진봉기
도심의 땅 꺼짐은 대체로 지하수의 변화로 인해 나타납니다. 지하수를 한꺼번에 많이 쓰거나 공사 등으로 지하수가 과다하게 배출돼 땅속 지하수의 양이 달라지면, 지하수가 빠져나간 빈 공간으로 주변의 흙이 쓸려가 땅 꺼짐이 생기는 거예요.
최근에는 낡은 상하수도가 주범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땅속에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상하수도관이 노후화되면서 망가지거나 틈새가 생겨요. 그럼 그 틈새로 물이 흘러나와 주변의 흙을 쓸고 내려가거나, 틈새로 흙이 들어가요. 그러면 빈 공간이 만들어지고 땅 꺼짐이 생겨요.
전자기파와 로봇, AI로 미리 발견
이를 해결하려고 과학자들은 땅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상하수도관에 망가진 곳이 있는지 미리 찾는 거예요.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차량용 지표 투과 레이더(GPR)예요. 전자기파 장치가 달린 자동차가 땅속으로 전자기파를 쏩니다. 이후 반사돼 돌아오는 전자기파 정보를 통해 땅속에 빈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에요.
하수도를 직접 다니며 결함이 있는지 점검하는 로봇도 있어요. 스위스 연방공대 연구진이 만든 네발 달린 로봇개 ‘애니말’입니다. 하수도관을 사람이 직접 확인하는 건 어렵고 위험해요. 좁고 미끄러울 뿐만 아니라 질식 등 위험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거든요. 이런 위험한 공간에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해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콘크리트는 파손으로 수리가 필요한 상태가 되면 표면이 거칠어지는데요. 애니말은 발바닥에 촉각 센서가 있어요. 그래서 하수도의 바닥이나 벽에 발을 대보고 콘크리트 상태를 확인해 수리가 필요한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지요.
서울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하수관로 결함 탐지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서울시 하수관 곳곳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요. AI가 이 영상을 보면서 파손된 부위를 찾아내는 거예요. AI는 하수관 파손 및 침하, 이음부 결함 등 약 20종류의 결함이 찍힌 하수관로 이미지 6451개를 학습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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