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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탈 족보의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출신에 관한한 금수저이고 싶어진다. 특히 한국사회에선 과거는 미화된다. 어두운 과거는 덮어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좋지 않은 출신 학교는 숨기고 좋은 출신 학교는 내세우려 한다. 조상의 좋은 업적은 내세우고 좋지 않은 행세는 숨기려 한다. 그래서 조상 예기가 나오면 입에 침을 토하며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조상 중에 자랑스런 조상과 형편없는 조상이 두루 있지 않은 집안이 어디 있을까? 내게도 그런 속성은 여전히 나를 자극한다. 나도 조상 이야기가 나오면 나쁜 이야기는 안한다. 하기 싫다. 그런 점에서 나도 조상의 음덕과 후광을 등에 엎고 싶은 잠재적 본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 중에도 아마 형편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나에게 그런 조상에 대하여 전수해 주지 않았던 선조들 때문인 것 같다. 만약 내가 후손에게 조상의 이야기를 남긴다면 성경처럼 좋은 점과 그른 점을 모두 남기고 싶다. 어떤 이의 글에서 ‘조상의 훌륭한 점을 학생들에게 알게 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이 생겨 좋은 나누다 보면 간혹 뿌리 교육 운운하면서 조상의 훌륭한 점을 찾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적이 많다. 그리 나쁘진 않지만 그것이 과연 자존감 형성에 얼만 도움이 될까?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문 중심의 전근대의식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느꼈다. 세상에는 사회적으로 이름을 빛낸 인물도 있지만 그저 성실하게 살아간 정말 훌륭한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 업적을 남긴 사람은 업적만큼이나 해악도 끼친 점이 있다. 송강 정철은 멋진 시를 남긴 문학사적 업적이 있지만 철저하게 정적을 응징한 잔인함도 있었다. 조상의 업적을 자랑한다는 것은 사실은 허구일 수 있다. 조선시대는 모두 양반의 신분이고 싶었다. 양반이라야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인구의 30% 정도는 노비였고 절대 다수는 농민이었다. 상당한 지배층과 양반층은 그들을 수탈하는 지주였으며 관료였다. 해방 초기 서울대 총장을 지낸 분의 부친은 노비의 신문이었다고 한다. 그분은 스스로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차라리 그것이 제자들에게 동기강화와 입지의 당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손이 쓴 부친의 전기에는 양반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부친의 인격을 무너뜨린 것이다. 후광과 가문미화의 전근대적 욕구가 발동한 것이다. 이기백 선생은 그의 저서 『한국저통문화론』(일조각,2002)에서 “신분에 따라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규정하는 것은 낡은 시대의 유산”이며 “ 개인의 실력에 따라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봉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족보문화를 옛날의 신분적 질서를 바탕으로 자신을 과시해 보려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며 비판한다. 그것은 조상의 업적을 미화하여 자신을 과시하려는 자기 과시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의식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다. 특히 조상의 업적을 미화하는 것은 왕조주의 시대의 용비어천가이다. 김일성 부자의 정치도 바로 왕조시대의 용비어천가인 것이다. 출신 성분에 의해 자신을 지키고 과시하려는 낡은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역경을 딛고 선 사람을 뒤로 비아냥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그런 허위의식에서 떠나야 한다. 그가 누구의 후손이고 누구와 연이 닿아있고 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전 근대적인 후광문화이며 패거리 문화이며 벗어던져야 할 허위의식이다. 단지 그의 업적과 인격과 삶의 자취를 더듬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현재 그가 가정적으로 얼마나 건실하며 세상적으로 얼마나 정의로우며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내세우고 살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만큼 살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대통령이다. 그의 개발 독재는 후발국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박정희는 잘사는 나라를 위한 배짱 있는 정치를 했다. 김일성과도 당당하게 누가 국민이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지 경쟁하자고 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독재라는 민주주의 역사상 엄청난 오류를 자행했다. 그의 명암은 동시에 크다. 그런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와 후광정치의 결과로 스타에 오른 인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어떤가? 그는 지금 한국 보수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과거의 업적이 내일의 업적을 창조하리란 기대는 옳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성취지향적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의 신화를 이룩했고, 역경을 이겨낸 여명의 눈동자로 미화되었다. 서울 시장시절 청계천 개발로 일약에 모든 이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경제통의 그가 집권하면 경제가 잘 될 것이며, 대한민국이 한층 성장 성숙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의 재임기간은 그리 화려하지만 않았고 그의 중대 사업인 4대강 사업은 찬양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구속수감 되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이다. 과거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관료사회에선 높은 지위가 개인의 능력이 수 있지만, 때로는 코드가 맞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위에 맞추는 교언영색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이다. 지방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당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재인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고 있다. 충청대망론을 달군 안희정 전충남지사가 성폭행 의혹파문이 있기 전까지는 앞 다투어 자신이 안희정 코드임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탈 안희정인 사람도 많다. 기회주의자들이며 교언영색자들이다. 모두 자기모순이며 자기기만이다. 정치에선 팀과 로비의 연줄이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인간성과 도덕성과 정책과 일관성 있는 행동이다. 보수니 진보니 누구의 라인이니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방 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 등록을 하고 프로필을 내세운다. 가급적 어두운 과거나 좋지 않은 것은 숨기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누구편이라고 내세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족보가 그를 대면해 주지 않듯이, 후광정치가 아름답지 않듯이 중요한 것은 오늘의 그의 행적과 인격이다. 족보와 후광 등 자기기만과 허의의식을 떠나는 것이 진정한 민주의식의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 말로 탈 족보의식이다. (2018년 5월 1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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