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귀족이 되어서는 미국의 앞날은 희망이 없습니다. 귀족이 되어 귀족 신분을 후손들에게 상속하는 것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는 유럽의 뒤를 이을 뿐입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후손이 아니라 선조가 훌륭한 명예를 받도록 하는 것이 훨씬 조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입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起草하고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 재향군인회 회장을 할 때,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戰功을 내세워 귀족으로 만들어달라는 군인들에게 한 말이다. 군인들의 ‘과거지향적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새로 건국된 미국이 귀족공화정으로 떨어질 것을 우려, 강력히 “No(안된다)!”고 거부했다. 한발 나아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한 민주공화정을 수립하는 신념을 관철시켰다.
◆지도자는 역사와 민족 관점에서 “No”라고 할 수 있어야
지도자는 자신이 총애하는 측근이나 공신들의 요청을 냉철하게 물리치고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은 ‘絶纓之會(절영지회)’라는 고사성어에 잘 나타나있다. 춘추시대 초 莊王이 큰 난을 평정한 뒤 공신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도중에 돌풍이 불어 불이 모두 꺼진 어둠을 틈타 한 사람이 장왕의 애첩에게 추행했다. 애첩은 그 사람의 갓끈을 끊어 왕에게 그 사람을 벌주라고 했다. 하지만 왕은 불 켜기 전, 참석자 모두에게 갓끈을 끊어 내던지라고 명령하고, 그 사람을 벌하지 않았다. 훗날 진나라와 큰 전쟁을 벌이다 장왕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자 한 사람이 죽음을 마다하고 왕을 구했는데, 그가 바로 애첩을 추행한 사람이었다. 만약 장왕이 애첩의 말만 듣고 불을 밝혀 그 사람을 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공신들의 근시안적 요구에 대해 “No”라고 말한 제퍼슨은 문관이 군대를 통솔하는 ‘무관에 대한 문관우위원칙’을 도입하고 언론의 자유를 강하게 주장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자기에게 듣기 좋은 얘기만 늘어놓는 ‘아첨꾼’보다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진실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자신과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이는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이자 정치를 잘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은 주 厲王(여왕)에게, 소공이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을 막았다가 터지면 사람과 농토가 많이 피해를 입는데, 백성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내를 막을 때는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릴 때는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하게 해야 합니다.”(『史記』 <周本紀>)
◆色厲而內荏(색려이내임) 하는 사람은 나라 망치는 도적
공자는 “낯빛이 위태로우면서도 속이 고약한 자들은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과 같다(色厲而內荏…猶穿窬之盜也與, 『논어』 <陽貨편>)”고 강조했다. 厲(려)는 ‘거칠고 모가 난 (숫)돌’이며, ‘갈다 힘쓰다 사납다 거칠다 위태롭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따라서 色厲(색려)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얼핏 보면 위엄스러운 듯하지만 그 자리가 부당하게 얻었기 때문에 언제 뺏길지 몰라 낯빛에 위태로움이 서려있는 것을 가리킨다. 荏(임)은 들깨인데, 향기가 강해 소나 염소들이 싫어함을 비유한다. 內荏(내임)은 속으로 고약한 자다. ‘색려이내임’은 陽貨(양화)처럼 높은 자리를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어 국민들의 피와 땀인 세금을 도둑질하는 ‘稅충이’를 뜻한다(이윤숙, 『논어역해3』, 338쪽).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기 좋아하는 것만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보고 듣고 말해도, 자신의 눈과 귀와 입으로 거르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오만과 편견(『오만과 편견』), 때로는 스스로의 상상력과 상대방의 미필적 고의(『위대한 유산』), 때로는 성급한 예단(『하워즈엔드』)과 허영심(『허영의 시장』) 때문에 사람을 잘못 판단해 일을 그르치는 게 되풀이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색려이내임’한 자들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공자는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객관적으로 살펴보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무리들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무리들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라(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 『논어』 <衛靈公편>)”라는 충고다. 또한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까닭과 말미암은 바와 편안해 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라(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논어』 <爲政편>)”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하나도 숨김없이 그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인에게 법관이나 軍警처럼 官服을 입힌다면…
옛날에 정치(입법) 행정 사법을 담당하던 관리들은 엄격한 규정에 따라 관복을 갖춰 입었다. 일하러 출근(登廳, 등청)할 때는 말할 것 없고 퇴청 후 집에 있거나 지인들과 교류할 때도 자신의 官位에 맞는 옷을 입어야 했다. 요즘도 법 집행을 담당하는 판사나 검사 같은 법관이나 무력을 담당하는 군과 경찰은 제복을 입는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그 법을 집행하는 행정 관료의 옷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어졌다. 물론 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은 배지를 달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봐야 식별할 수 있을 뿐 조금만 떨어져도 알 수 없다.
옷은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많이 좌우한다. 행동거지가 반듯한 사람들도 예비군 복만 입으면 왠지 모르게 자세도 삐딱해지고 술도 과음해 흐트러진 행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예비군복효과’다. 집 유리창이 깨져있고 골목이 지저분한 곳에서는 좋지 않은 일, 소매치기나 강도 같은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깨진 유리창 법칙’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앎에 이르고도 어짊으로 지키지 못하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으며(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必失之), 지혜를 갖추고 어짊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장엄함으로 이르지 않으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는다(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則民不敬)”고 지적했다(『논어』 <衛靈公편>).
옛날처럼 보여주기 위해 지나치게 형식적인 옷은 아니더라도 항상 책임과 품위를 자각할 수 있도록 정치인 옷, 즉 政服(정복)을 갖춰 입도록 하면 어떨까. 색려이내임 하는 사람이 판치고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많은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동서고금의 좋은 정책의 짜깁기(패치워크, 접붙이기)를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9022513598095690
첫댓글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에서의 경험을 검증된 문헌을 인용하여 적절히 잘 배합하고 비유하였네요....
정론직필로 가는 여정에 날로 당당해지길 기대합니다. /政山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