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신(神)이 조선을 망엽(忘葉)치 않으신다. 히 12:17-18 1950년
조선은 특히 묵시(默示)의 나라이요 조선족은 특히 묵시의 민족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보이심은 중국도 아니요, 일본도 아니요, 인도도 아니요, 오직 조선이다.
조선의 교옥(橋玉) 사건은 조선의 유사 이래 처음 되는 참사이고 네로 황제 학살이후에 처음 되는 참화이다.
꽃 같은 처녀들이 나는 예수를 믿는다 하고 형장에 사라지고 사려 깊은 학자들도 나는 예수를 믿는다 하고 무서운 단두대에 이슬이 되여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사숙녀들이 한꺼번에 수십만 명씩 참살을 당하여 불국(佛國) 신부 9인 중국신부 1인 합 10인의 교사와 근 백만의 신도들이 참사를 당하였다.
그 때 당국자들은 다 시정도배(市政徒輩)들이요 썩은 유교를 테두리하고 있는 무지배(無知輩)이다. 덮어놓고 외국에서 온 신교(新敎)라 하여 배척하기 시작하여 아무 죄 없는 신도들을 참살함은 실로 조선망국을 묵시함이요 또 천진(天眞)한 교민(敎民)들이 조금도 두려움 없이 형장에 달려드는 것도 역시 천의 묵시이거늘 명확무식(冥確無識)한 도배들이 한 사람도 이에 대하여 언과(焉果)의 맘을 갖은 이가 없는 것도 역시 천의 묵시이다.
천주교(天主敎)가 이렇게 전도의 길을 개척한 후 1885년 감리교목사아펜셀라 부처(夫妻)가 내한하였고 장로교목사 언더우드목사도 내한하여 우리 정부에 전도를 청원하였더니 역시 거절 당하고 교육과 의료사업만 허락함으로 아펜셀라 씨는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세우고 스크랜톤 부인은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세웠고 스크랜톤 의사는 병원을 운영하다가 그 후에는 망명 중이던 김옥균(金玉均) 씨가 교회에 의하여 귀국하였다.
그 때 시재(時宰)들은 더욱 축미(*味)하여 기군동상(箕君銅像)과 매관매직(賣官賣職)의 도배(塗褙)이다. 김옥균 씨는 고종황제(高宗皇帝)를 뵈옵고 시간의 급박함을 주상(奏上)하고 지금 당국자들이 미국 어디인지 영국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며, 종교가 무엇인지, 경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신하를 데리고 조수(潮水)같이 밀려들어 오는 세계 대세를 어떻게 막으시렵니까 참 딱한 일이 올시다. 또 야소교(耶蘇敎)를 부인하시고 허가하지 않으시니 역시 큰 국난 올시다. 구미각국의 문명이 모두 기독교로 산출된 고로 기독교인을 반대하는 나라는 미개국으로 인정되고 다른 나라와 같이 어깨를 견주지 못합니다.
황제(皇帝)는 들으시고 네가 똑똑히 아느냐 물으시고 즉시 외부대신과 내부대신을 부르시고 기독교 전도를 윤허(允許)하셨다. 이때부터 조선 내 각지에 교회가 우후죽순같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고생하던 민중들은 만민평등의 복음을 듣고 목마른 자 물 사모하는 것처럼 복음을 달게 받았다. 국내에도 평양(平壤), 선천(宣川), 의주(義州) 등지가 더 왕성한 것은 그 곳이 더욱 학정이 심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묵시하심이다.
오백년 동안 유교에 물들고 고치기 어려운 근성을 가진 이 백성들이 학정에 눌려서 보다 하나님의 지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때는 가장 신앙 자유 시대이다.
조선 각종 문화라고 하면 다 기독교의 산물이다. 천주교의 발상을 보려면 약현 성당을 볼 것이고, 감리교의 발상을 보려면 배재학당(培材學堂)과 이화학당(梨花學堂)을 볼 것이며, 장로교이 발상을 보려면 연동교당(聯動敎堂)을 볼 것이다.
그 후 각지의 의료, 교육기관이 별같이 버려있는 것이 다. 기독교의 산물이다. 그 후에 일적(日賊)이 나라를 주관하던 때 다른 민중들은 다 의수우명 하는데 오직 기독교만이 적극성이 많았고 또 교회는 친영(親英) 친미파(親美派)라 하여 항상 감시를 더하다가 3.1운동이 발발한 때부터 더욱 감시가 심하여 교우를 교당에 불러놓고 불을 놓아 태워 죽이기와 총을 놓고 칼로 참살하기 부난기살(不亂其殺)이다.
이런 무서운 참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우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달겨드는 기(起)우*화(火)하는 그 용(勇)은 사람이 일이 아니요 역시 하나님의 지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 후에 나는 함북지방(咸北地方) 청진(淸津)에 가서 전도할 때 역시 핍박이 심하고 일적(日賊)들의 행동이 무섭게도 날카로웠다. 교회를 친미파로 인정하고 교회요인들을 1945년 8월 15일에 다 포살(砲殺)하기로 내정되었다.
3일만 지나면 요인들은 다 포화 밑에 재가 되고 나는 이를 모르고 전도에 종사하다가 8월 13일 소군(蘇軍)이 청진에 상륙하여 청진 시내가 다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포살(捕殺)의 음모는 저절로 깨여졌다. 어쩌면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이렇게 사랑하시는가 하고 눈물로 기도하였다.
해방 후에도 공산당들의 핍박이 도리어 일적(日賊)보다 더 심하건만 교인들의 모이는 열이 조금도 약하지 않았다.
남한에도 공비(共匪)들이 믿는 어린 학생을 총살할 때 학생들이 주님이 기도와 같이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요 하고 기도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묵시하신 힘으로 되였다 합니다.
그뿐 아니라 카이로회담 포츠담회담에 다 조선을 독립케 하자고 가결됨이 조선에 아무것도 없어도 신도 백만 명이 있음을 증거로 하여 가결되었으니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하신 진리가 묵시된 것이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은 공연히 떠들고 공비들은 저들이 나라를 만들겠다고 가진 악독한 일을 행하니 실로 무지하기 짝이 없다. 삼팔선이 가로막혀 남북이 서로 보고도 건너오지 못하니 이것도 역시 홍해를 갈라지게 하시던 능력이 아니면 안될 줄 믿고 기도할 뿐이다
조선은 세계 중 야소(耶蘇)를 잘 믿는 나라로 칭송이 있고 세계 소국(小國) 중에 선교 많기도 조선이 제일이요, 조선 중에도 평양에 선교사가 제일 많다고 칭송을 마지않는다.
지금은 천주교도 원근 각지에 사원이 즐비하여 상당한 숫자를 가지고 있으면 금년에는 로마교황으로부터 사절을 파송하여 경성에 주재한 후로 더욱 활기를 가졌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조선민족을 어떻게 보실까. 예전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쫓지 않을 때에는 여러 가지 재앙을 받게 하시고 고생시킨 후에 건져 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가르치고 의지하게 하셨다. 우리의 급속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조금도 어기지 말고 순종하면 우리 문제가 빨리 해결될 것이고 민족이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뜻을 어기면 우리 문제가 결핍(*逼) 될 것은 역사와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앞으로 어떤 걸음을 걸어가든지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잊지 않으실 것만은 거의 확실성이 있다.
오 - 하나님 우리는 지금 애굽의 고통이상 고통을 가졌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고통, 입을 것이 없어 고통, 이보다 더 큰 고통은 공화(共禍)입니다. 날마다 살상(殺傷), 방화(放火), 치손, 약탈(掠奪)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
공비(共匪)보다 더 큰 고통은 자민족 중 나라를 좀먹고 민족을 못살게 하는 주변 때문에 하고 애부(哀訃)를 마지않는다. 아 - 하나님 살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