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는 파문을 일으켰다. 무함마드를 풍자하고 코란을 악마의 계시로 빗대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이슬람 모독이었다.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슈디에 대한 사형 집행을 선언했다. 오, 무서운 것이었다. 루슈디는 "다른 감수성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들도 피습당했다. 이탈리아인 번역자는 흉기 피습됐고, 일본인 번역자는 1991년 피살됐다. 일본인 번역자가 써 놓은 '계단에서 죽는다'는 메모 하나가 우연히 발견됐는데 그는 실제 계단에서 피살돼 그 구절이 묘한 '악마의 시'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범인도 못 잡은 채 종결된 그 사건을 두고 일본에서 '국가가 봉인한 살인 사건'이란 비판도 나왔다.
도망 다니기에 지친 루슈디는 10년 뒤 "더 이상 숨어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호메이니도 이미 죽었다. 세월이 약인 것이다. 하기야 2001년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을 때 한국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제 프랑스 파리에서 무장 괴한들이 이슬람 풍자 만평을 실은 주간지 사무실을 침입해 "신은 살아 있다"며 총기를 난사했다. 8일 현재 1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주간지는 앞서 엉덩이를 드러낸 무함마드가 "내 엉덩이도 좋아해?"라고 말하는 만화를 그려 이슬람 인들의 분노를 산 적도 있었다. 이슬람 인들은 지존 무함마드를 그리는 것조차 신성 모독으로 여기며 분개한다.
2005년 덴마크 신문이 무함마드를 그린 12편의 만평을 실었을 때도 소동이 일어났다. 한 이슬람 교도는 만평자를 살해하면 1천만 달러와 죽은 사람 몸무게만큼 금을 주겠다는 현상금을 내걸 정도였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예루살렘 성 전투에서 숱한 사람이 죽은 뒤, 성을 내주는 십자군 장군이 이슬람 장군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성은 뭐냐?" 이슬람 장군은 뜻밖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슬람 장군은 자기 군대 쪽으로 돌아서면서 "모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에 걸쳐 있는 것이 웅숭깊다. 끝과 끝, 모든 것을 놓고 하는 대결은 배타와 독선, 그리하여 결국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그 둘의 아슬아슬한 경계 타기에 삶의 묘리가 있지 않을까. 그것을 맛보고 체득하는 것이 삶과 종교의 궁극일 것이다. 정치라고 다르지 않다. 살리는 건 선이고 죽이는 건 악이라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영어에서 '살다(live)'의 철자를 거꾸로 하면 '악(evil)'이라니 이 또한 묘하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