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전반:콘체르트슈튀크(Konzertstück)유행 공공 연주회의 청중은 대부분 3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들이 너무‘길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청중의 요구에 부응하여,작곡가들은 기존의 3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 대신 단일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이러한 단일악장의 협주곡은 청중으로부터 즉각적인 호응을 받았다.이것은 당시의 수많은 음악 비평에서 확인되고 있다.한 비평문에서는“그 어느 누구도 이제는3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단1악장만으로 성대한 잔치를 치렀다고 느낀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단일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은‘콘체르트슈튀크(Konzertstück)’라 명명된다(이탈리아어: Concertino,영어: Concerto piece,불어: Morceau de concert).우리말로는‘소협주곡’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작곡가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이다. 즉,그는 단일악장을 1821년에 작곡한 바단조 피아노 협주곡(Op.79)에 처음 사용한 것이다. 이후 이 명칭은 단일악장의 협주곡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었으며,베버의 작품은 이후 멘델스존,슈만,리스트 등의 단일악장 구성의 협주곡 작곡에서 하나의 모델이 되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 19세기 후반: ‘대연주회’인 교향곡 연주회로 선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콘체르트슈튀크가19세기에 전반기에 청중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면, 19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점차적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으로서 주목을 덜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우선, 19세기 후반기 이후의 이상적인 음악회 형태인‘서곡-협주곡-(휴식)-교향곡’의 구성을 지닌 소위‘대연주회’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연주회 유형은19세기 중엽부터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세기 말과20세기로의 전환기에 보다 뚜렷하게 강화되면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그러니까19세기 전반기의 연주회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 다양한 장르의 각양각색의 작품을 선보이는‘만화경 프로그램(Kaleidoskop-Programm)’이 지상명령이었다면, 19세기 중엽 이후 새로운 연주회 유형에서는 교향곡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물론19세기 전반기의 연주회에서도 교향곡은 청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장르였다). 때문에 ‘대연주회’는 종종 ‘교향곡 연주회(Symphoniekonzert)’와 동의어로 사용되곤 했다.교향곡은 대연주회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19세기 중엽 이후 작품의 길이와 규모가 점점‘거대화(Monumentalisierung)’되어가는 현상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뿐만 아니라19세기에는 음악의 제반 장르가‘교향곡화’된다). 이처럼 작품의 거대화 경향은 연주회 프로그램 구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단일악장 구성의 협주곡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는 거의 설 자리가 없게 된다. ▲ 한국의 KBS ‘열린 음악회’의 프로그램 우리나라의 경우, KBS가 방영하는 이른바‘열린 음악회’에서 다악장 협주곡에 비해 길이가 짧은 생상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사라사테의〈치고이너바이젠〉등이 자주 연주되는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또한 베토벤의〈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Op.40과Op.50이 여전히 음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리스트의〈죽음의 무도(Totentanz)〉,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피아노 협주곡〈부를레스케(Burleske)〉가 종종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등장하는 것도 일부의 편견을 불식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출처: 서양음악사100장면(2),pp.14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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