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6장 경제와 기술로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다
3. 기초산업이 튼튼해야 경제가 발전한다
문선명은 어렸을 때부터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 치하에 와세다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문선명은 특히 기계공업 계통에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때에 앞날을 내다보는 사업들을 구상했다.
북한의 남침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의 실정을 감안할 때 하루 빨리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기계공업의 꽃인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주장했다. 통일교 기업들 중 최초로 정부 허가를 받은 사업은 예화산탄공기제작소였는데 1959년 12월에 정부 인가를 받았다. 아직 시장조차 형성되지 않아 사업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특허상품으로 발전시키면서 장래를 대비해 나갔다. 문선명은 일본 사람들이 쓰다가 버리고 간 선반기계를 1962년 화폐 개혁 전에 72만 원을 주고 샀다. 그것을 교회로 쓰던 적산가옥의 구석진 연탄광에 들여놓고 '통일산업'이라 이름 지었다.
"여러분의 눈에는 이 선반기계가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고작 낡은 기계 한 대를 들여놓고 도대체 무슨 사업을 벌인다는 것인가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앞에 놓인 이 기계가 머지 않아 7천대 아니 7만 대의 선반기계가 되어 대한민국의 군수산업과 자동차 공업까지 꼬리를 물고 발전할 겁니다."
그러나 기술개발은 그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갖은 실패 끝에 10년 걸려 끝낼 일을 3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매진했다. 그 결과 공작기계 등 기술개발에 성공하여 공기총과 선반, 부속기계 등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통일산업은 M1소총과 똑같은 공기총을 만들어 청와대에 납품했고, 1969년에는 정부와 계약을 추진하는 한편 1973년에는 방위산업체로 지정받아 분당 3,0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발간포를 개발하는 등 자주국방의 틀을 갖추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왜 살상무기를 만드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하나였다.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강해지는 게 최고의 방법이자 최선의 방법이다. 무기의 국산화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를 우리 손으로 지킬 수 있고 절약된 돈으로 다른 산업을 일으킬 수 있어 모든 점에서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문선명은 바로 그러한 마음으로 방위산업에 뛰어들었다.
과학기술 평준화의 꿈을 가지고 출발한 대표기업이 바로 통일중공업이다. 통일중공업은 1959년에 단 4명으로 출발했으며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무릎쓰고 발전을 거듭하였다. 아무런 기반이 없었던 초창기에 경제기반을 닦기 위해 밑바닥부터 가장 정성을 들인 기업이었다.
"통일산업 저기 있을 때 내가 하루에 두 번 가는 날이 많았고, 세 번까지 가는 날도 많았다구요. 왜 그런 거예요?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이 경제기반으로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데까지 확대시키려는 하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기까지 심각한 정성을 들여야 된다 이거예요. 쓰레기통 같은 선반 하나를 주워다 놓고 세계 제일가는 공장을 만든다고 하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다구요. 세계 제일가는 공장을 만드는 거예요. 그 누구도 믿지 않았어요.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군수산업이라든가 자동차 공업까지 꼬리를 물고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독일의 과학발전 요인이 화학공업에 있다고 판단해 소재산업에도 투자했는데 그 결과 설립된 기업이 '한국티타늄공업'이다. 한국티타늄공업은 1968년 세워진 '한국지타공업'과 '동화지탄'을 1972년에 인수하여 출발했다. 특히 동화지탄은 두각을 나타냈으나 일본과의 기술제휴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었던 회사였다. 그러나 통일교에서 인수한 이후 이산화티타늄 신제조법 개발의 성공으로 안정적 성장이 가능했다. 1985년 7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고, 87년에는 증권사에 상장되었다. 1995년 5천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고, 99년에 온산 공장을 준공했지만 IMF가 닥치자 그 험난한 파고를 이기지 못해 경영권을 잃고 말았다.
경영권을 잃은 기업은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정성을 들인 통일중공업도 노사분규로 부도를 맞고 말았다. 문선명은 초창기부터 과학기술 평준화의 꿈을 안고 정성을 투입한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천억 원을 추가로 쏟아 부으면서까지 회생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끝내 경영권을 지키지 못했다. 비록 통일중공업은 IMF 이후 통일교와 분리되었지만 기술평준화에 대한 노력은 여러 곳에서 값진 열매를 맺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