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원종 - 일찍부터 정신생활에 몰두 1. 사람은 왜 사는가
1 내가 16세 되던 해에 6·25사변을 맞게 되었는데 한 분뿐인 형님이 양구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를 당하셨다. 나와 형님과는 10세의 나이 차이가 있어서 평소 무서워했으나 성장해 가면서 정이 두터워져 갔다. 정든 형님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받고 나는 생후 처음으로 쓰리고 아픈 슬픔을 맛보았다.
2 형님이 전사한 후 그 충격이 내게 얼마나 컸던지 그때부터 ‘인생은 무엇 하러 사는가? 최후의 갈 길은 어디냐?’라는 등의 의문이 생기고 회의감과 허무감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3 이러한 나의 고민을 풀어줄 석연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던 중, 우연히 ‘월간 사상계’에 실린 ‘자본론 비판’을 읽고 나니 공산주의가 절대 진리인 것 같이 느껴져서 ‘진리는 승리한다’라는 법칙에 의해 자본주의는 반드시 망하고 공산주의는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되니 ‘형님의 죽음은 개죽음이었구나’ 생각되어 나는 7년 동안 병역을 기피했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공산주의 운동을 하고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4 하루는 어머님께서 형님의 죽음을 애통해하여 점성가에게 가서 점을 쳐보니 “아들은 북한에 포로로 있으니 절에 가서 불공을 많이 드리면 다시 만날 수 있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5 나는 곧장 절을 찾아가 법사에게 “불공을 드리면 형님을 만나 볼 수 있느냐?”라고 질문했더니 법사는 대답하기를 “인간은 본래 타락을 해서 악을 지니고 태어나 모든 복을 잃어버렸으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악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며 자연히 선의 복이 임한다”라고 하면서 형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6 나는 7년간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그러자 이상한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배후를 알아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다가 혹시 관상가나 점성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끼고 염불을 그만두고 연중에 두세 번씩 절에 가는 정도로 그쳤다.
7 그러나 불교에 대한 매력은 대단해서 장래는 불교에 투신하여 중이 되거나 아니면 공산주의 운동을 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자살하려고 하였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