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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나는 양의 문이라(요한복음 10:1~10)
* 본문요약
예수님은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양과 목자와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인도합니다.
양 또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가지만
다른 사람은 그 음성이 다르므로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
그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우리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도적이요 양을 죽이는 강도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양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양의 문입니다.
찬 양 : 434장(새 38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442장(새 569)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 본문해설
1. 자기의 양을 인도하는 목자(1~3절)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목자)를 위하여 문을 열어주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 양의 우리(1절) :
그 당시 팔레스틴에 있는 양의 우리는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한 것으로
마을 사람들이 양을 모두 그곳에 두었다가
아침에 데리고 나가서 다시 저녁에 데리고 옵니다.
양의 우리의 형태는 보통 다음 세 가지의 입니다.
➀ 동굴에 울타리를 친 것
➁ 3미터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치고 그 위에 가시덤불을 얹어 놓은 우리
➂ 3미터 높이의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지붕까지 얹은 것으로 가장 튼튼한 우리
어느 것이든 양의 우리에는 오직 하나의 출입문만 있습니다.
- 절도(1절) : 클레플레스
‘절도’의 헬라어는 ‘클레프레스’로 어떤 일을 남몰래 하는 것을 뜻합니다.
겉으로는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포장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은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 강도(1절) :
남몰래 하던 것을 남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어서 하되
자기의 말에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2.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4~6절)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불러낸) 후에 목자가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낯선 사람)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 비유(6절) : 파로이미아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의 비유는
파라볼레(parabole)로 은유적인 비유를 가리킵니다만,
이곳 요한복음에서의 비유는 파로이미아(paroimia)로 수수께끼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유대인들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나는 양의 문이라(7~10절)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이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나는 양의 문이라(7절) :
누구든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 도적(10절) :
여기에서의 도적은 1절의 절도와 강도를 포함하는 말로,
그의 것을 빼앗고 폭력까지 행사하여 결국 그를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 자를 가리킵니다.
* 묵상 point
1. 나는 양의 문이라
1) 양의 문이신 예수님(7절)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팔레스틴에는 위의 본문 해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여러 종류의 양의 우리가 있었지만,
공통적인 것은 반드시 그 출입문은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입문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 우리는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목자가 그 출입문에서 자기 양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오고
목자는 그 양들을 데리고 가서 꼴을 먹인 후에
저녁에 데리고 와서 그 문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2)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매일 보는 이 양의 우리를 이용하여
오직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기 위해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영검을 두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했습니다(창 3:24).
이것은 죄를 범한 사람은 결단코 낙원(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화영검으로 막혀 있는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생겼습니다.
누구든 그 문으로 들어가면 낙원(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그 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주께서 주시는 주의 이름을 가지고 그 문에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3)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신 예수님(9절)
팔레스틴의 양의 우리의 담은 높이가 3미터나 되어서
아주 힘 있는 자가 아니면 그 담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면 어린아이도 장애인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십니다.
벽이 아니라 문이므로 누구나 그 문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병든 자도, 죄를 지은 흉악한 자도,
누구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천국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2.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
1) 목자도 자기 양을 알고 양도 자기의 목자를 알고(2~4절)
목자가 각각 자기 양의 이름을 부르면
양들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와서 그를 따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며 참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열망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자들에게는
영의 눈을 뜨게 해서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자신을 돌볼 참 목자의 음성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요 10:11~18 큐티 참조).
2) 그의 양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예수님(7~9절)
당시 목자들은 돌팔매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 돌팔매는 짐승을 쫓기 위해서 사용하지만,
때로는 양들이 위험한 길로 가려 할 때
양의 앞에 돌팔매를 던져 양들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위험으로부터 당신을 돌보십니다.
그러다 당신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 할 때
우리 앞에 고난이라는 돌팔매를 던져 위험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십니다.
3. 다른 데로 들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
1) 절도(1절)
절도로 번역된 ‘클레프레스’는 어떤 일을 몰래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에게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들이 하는 일은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물론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백성들 앞에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거룩한 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과 권세입니다.
이것을 남모르게 하고 있으니
그들은 유대인을 이끄는 목자가 아니라 ‘절도’라는 것입니다.
2) 강도(1절)
강도로 번역된 ‘레스테스’는
절도의 행위를 폭력적으로 행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마당에 장사치들을 두어
그들에게서 아주 거액의 상납을 받아 부자가 되었고,
그 돈을 로마에 매수하여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을 바로잡으려 하고 참된 말씀을 전파하시니
그들이 원하는 돈과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폭력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강도입니다.
3) 도적(10절)
도적은 위의 두 가지의 결과로 나타나는 일을 가리킵니다.
도적은 절도와 강도의 일로 사람의 것을 빼앗고 그를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여기에서의 도적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는 악한 영을 가리킵니다.
사악한 마귀와 사탄에 사로잡힌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 바로 이들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바르고 참된 영을 분별할 지혜를 주께 구하십시오.
➀ 혹시 나는 절도는 아닌지
교회 부흥을 외치지만 실상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내 잇속을 챙기려는 것은 아닙니까?
봉사하고 헌신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에게
인기를 얻거나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겉으로는 거룩을 표방하지만
실제로 그의 마음에 숨겨놓은 다른 것이 있는 자들,
그렇게 거짓된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여
예수께로 가야 할 마음을 빼앗는 자들이 바로 절도입니다.
➁ 혹시 나는 강도가 아닌지?
내 마음에 있는 나의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했다면
이것이 바로 강도입니다.
제직회에서 내 의견에 반대했다고 싸움을 일으키거나,
반대 의견을 낸 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했다면
이것이 바로 강도입니다.
이들 역시 말로는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마음속에 있는 검은 마음을 아십니다.
➂ 이 모든 것이 다 멸망으로 향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거룩이고
그 마음에는 다른 것이 있는 자들은 결국 멸망을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을지라도 주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주께 드리기에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4.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
자기가 저지르고 범한 죄이지만 그 죄의 결과를 책임질 능력이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셔서 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의 죄를 친히 자신이 지시고,
그 대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께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그 복을 받을 자격이 없으나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나라의 영광의 복을 받기를 원한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주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수가성 우물가의 그 여자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그 여자와 같은 사람도
그 죄를 모두 용서받고 영원한 영광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주께서 오셨습니다.
* 기도제목
1. 양이 그의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리게 하셔서
주님의 음성과 악한 영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2. 주님이 나를 알고, 나도 주님을 아는
신비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3. 나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항상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따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