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주의가 지닌 장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칼뱅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강조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에서 오는 불확실성과 인간의 나약함을 의지하지 않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런 특징은 구원에서 성령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선택교리는 개인 구원의 “심오한 신비”를 설명함으로써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이런 칼뱅주의의 장점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의 구원여부가 달려있고, 하나님조차도 인간의 결정에 종속된다고 보는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비해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이런 칼뱅주의가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 그것으로 야기되는 문제점에 더 주목한다. 스탠리 그렌즈는 다음과 같이 칼뱅주의의 약점들을 제시했다:
(1) 칼뱅주의는 하나님을 편파적이며 불공정한 분으로 만든다. 칼뱅주의가 제공하는 개념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다르다(행 10:34).
(2) 칼뱅주의는 명백한 결정론(determinism)이기 때문에 우연성(contingency)을 상실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이루었던 우리의 상식이나 체험과 모순된다.
(3) 칼뱅주의는 견인(perseverance)이라는 잘못된 개념과 결부된다. 성경은 믿음을 붙잡으라고 명령한다(히 6:4-12).
(4) 칼뱅주의는 선택교리와 불가항력적 은혜교리를 연결한다. 이런 설명은 구원과 관련된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5) 그리고 불가항력적 은혜는 성경적인 은혜와 조화되지 않는다. 성경은 은혜가 멸망하는 자에게도 부어지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딛 2:11; 요 12:32). 또한 불가항력적 은혜교리는 철학적인 문제점도 크다. 왜냐하면 도덕적 결단은 “당위성”과 “가능성”을 모두 요구하는데, 그 개념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칼뱅도 이런 비판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중예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변론했다:
(1) 하나님의 선택은 그를 폭군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일을 의롭게 하는 최고의 기준”이다. 버림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본성 자체”에 따라 사망으로 인도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불공정하지 않다.
(2) 선택론은 인간에게서 죄책과 책임감을 제거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악한 의도로 인하여 주께로부터 받은 순결한 본성을 부패시켰고, 또한 그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후손 모두를 그와 함께 멸망으로 이끌게 된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 작정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평함이 매우 분명”하다.
(3) 선택론은 하나님을 편파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신다는 사실은 사람을 고려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다.”
(4) 선택 교리가 올바른 삶을 향한 열심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우리가 택하심을 받은 목적이 바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엡 1:4).”
(5) 선택의 교리가 모든 권고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가 예정된 자에 속하며, 또 누가 거기에 속하지 않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자들을 우리의 평안에 함께 참여하는 자들로 만들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뱅의 이런 변론은 주장만 있을 뿐 그에 대한 타당한 근거는 결여되어 있다. 성경적 근거도, 논리적 근거도 부족하다. 칼뱅은 예정과 선택 교리를 오직 성경과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복음 전파의 비형평성, 복음에 대한 다양한 반응, 소수의 신자와 같은 현실적인 경험 자료” 그리고 “목회적인 유용성과 가치” 등도 예정론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8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