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네트워크 구멍난 기업-정부… 요소수 대란 이어 전기차 쇼크
‘제2 요소수사태’ 부른 대관업무 약화
지난해 말 ‘요소수 대란’에 이어 올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자동차 업계 피해까지 세계 경제 지각변동에 따른 국내 피해가 발생하지만 정부 당국과 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에선 미중 갈등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구조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와 기업의 해외 네트워크가 취약해진 것도 피해가 이어지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 요소수부터 반도체, 전기차까지 피해 이어져
26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산 친환경 차량이 미국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진 ‘인플레 감축법(IRA) 사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정책 대응 취약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지난해 말 한국 경제를 강타한 ‘요소수 대란’과 유사하다는 시각이 많다. ‘요소수 대란’은 지난해 11월 중국이 석탄에서 생산되는 ‘요소’ 수출을 통제하면서 한국에서 디젤차량 운행과 비료 제조 등에 차질이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중국 내 상황 변화에 따른 국내 피해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고 사태 후 대응마저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 입법 과정에서도 기업들의 중국 내 투자를 제한하는 조항이 들어가면서 중국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피해를 입을 상황에 놓였다.
○ “국내 기업 및 정부 해외 네트워크 취약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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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에선 IRA가 갑작스럽게 진행된 면도 있지만, 1년 넘게 논의돼 온 ‘더 나은 재건법(BBB)’의 수정판 격이기 때문에 입법 상황을 면밀히 관찰했다면 대응이 달랐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요소수나 IRA 사태 모두 정보활동이 잘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의 출발점”이라며 “대사관 경제 담당자와 기업, 민간의 정보 교류가 상대적으로 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주미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는 ‘기업 애로사항’이라는 민원 게시판이 있다. 그런데 이 게시판에 올린 민원에 대한 답변은 2018년 11월 이후 올라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기업들과는 (그 외에) 다양한 채널을 두고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고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전경련의 기능을 크게 위축 시키면서 해외 네트워크가 약해진 것이 한 예다. 전직 경제단체 관계자는 “전경련은 미국, 일본 네트워크가 강했는데 전체 직원 수가 3분의 1로 줄면서 약해졌다”며 “주요 그룹도 대외 협력 부서를 폐지하거나 사람을 줄이면서 채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SK에 이어 LG 등이 미국 내 대관조직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영향력을 더 키워야 할 단계라는 지적이다.
한 정보당국 관계자는 “지난 정권의 첫 4강(미중일러) 대사들 중 외교관 출신은 한 명도 없어 전문성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사관에서도 정보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당국자들은 “IRA 법안의 경우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도 법안 추진 움직임을 알아채고 사전에 불이익을 막기 어려웠다”며 “EU, 일본 등과 함께 공동서한을 보내고 미국 당국자 면담 등 대응을 취했다”고 해명했다.
○ 정부, 국회, 기업 나섰지만 해법 어려워
미국을 방문한 정진석 국회 부의장(왼쪽)이 21일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났다. 사진 출처 정진석 국회 부의장 페이스북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방한 중인 에릭 홀컴 미국 인디애나 주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IRA를 거론하며 “우리 기업들이 차별 없이 미국 기업들과 동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주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국민의힘 김정재,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이재정 의원은 미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측은 “한국의 우려와 분노를 잘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만큼 행정부로서는 당장 (법안 내용을) 조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의원단은 전했다.
현대차는 IRA 대응을 위해 부사장급 임원이 이끄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그러나 이렇다 할 묘수를 찾진 못하는 분위기다. 23일 급히 미국으로 떠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르면 내주 귀국한다. 정 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대로 현대차 TF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