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문소루-사촌마을-만취당-남대천공룡발자국 유적지-율정호
구봉산 문소루
구봉산/구성산
의와 예를 상징하는 의성에서 의를 담당하는 곳으로 유서 깊은 산이다.
원래 이름은 구성산이라고 전해왔으나 일제강점기에 구봉산으로 바뀌어졌다.
구성산은 의성을 상징하는 산으로 문소루가 재건되어 있다.
문소루-의성을 상징하는 문소루는 영남의 4대 루 중의 하나/도남4대 루라고도 한다/안동 영호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의성 문소루 그 중 문소루가 가장 먼저 세워졌다. 원래 현재 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6.25사변에 전소되었고 1983년에 현재 자리에 재건하였다.
문소루(문소루)-풍류음악을 듣는 곳/들을문, 풍류음악소
고대 중국 요순시대에 순임금이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음악이 소 음악이다.
의성이 태평하고 평화로운 지역이다라는 뜻이다.
현판: 소소구성봉황래의-풍류음악을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내려와서 춤을 추었다. 봉황-평화를 상징하는 상상의 새로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는 의성
원래 저 글은 고대 중국 서경에서 따온 글로서 소소구성에서 구성산이 되었다.
문소루가 지어지고 내방객이 루에 올라오면 방문객이나 손님들이 시를 한 수 지었다. 시를 지은 현판/시판(고려 후기 문신)이 김지대 포은 정몽주
이런 시판으로 문소루의 창건 시기를/고려 중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영천 임고가 고향인 포은 정몽주의 시판은 수도 개성으로 올라가면서 문소루에 올라 지은 시이다.
문소고을은 예부터 아름다운 고장이다라고 시작을 하였고 절름발이 나귀를 타고 경화(서울경, 꽁화)로 간다. 개성으로 가서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자신과 고려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한 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의병
꼭 기억해야 할 1896년 3월 25일 창의한 병신의병
구성산은 병신의병의 격전지로서 안동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던 의병
대구, 군위에 있던 관군이 안동의병을 진압하기 위하여 의성을 지나가게 된 관군들. 그 소식을 듣고 구봉산 자락에 매복한 의병 새벽부터 전투가 벌어졌다.
기록에 의하면 스무명의 관군을 사살되었다.
의병이 일어난 이유-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한나라의 국모가 일본에 의해서 시해가 되고 불타버리는 사건. 일제에 의한 단발령 사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하여 창의한 병신의병
사촌마을
-역사는 1392년 김자첨 선생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
입향하면서 서쪽에 만든 숲이 사촌 서림 천연기념물 제405호 사촌가로숲
증손자 김광수가 향나무를 심고 500년전 영의정 지음
증손자 김사원 440년전에 만취당 창건
사촌마을에 인구는 많을 때 500호 현재 400호 이상 거주 중
성씨 안동김씨120호 이상, 풍산 류씨 20호, 안동 권씨, 의성김씨 등이 모여 사는 반촌
사촌가로숲-1km에 달하는 인공숲
바람과 추위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방풍림
-풍수지리적 이유로 조성되었다는 설-서쪽 우백호가 없어 인재가 나지않는다.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서 조성되었다는 설
등잔밑이 어둡다고 가까이 있는 것은 소홀히 하기 쉽다.
행복은 바로 옆에 있다.
의병의 본고장이었던 사촌마을은 125년전에 전 마을이 전소된 가슴 아픈 역사
선비와 학자는 물론 수많은 의병을 배출한 사촌마을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의병기념관
1896년 3월 의병모집 일주일만에 첫 전투-구성산전투
6분이 대구 망우당 공원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모집은 격문을 써서 옷깃에 숨기고 다니며 의병을 모집했던 시절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지만 의로움으로 이겨낸 것이 아닐까?
예견된 결과로 패배의병의 본거지라고 일제의 보복으로 불타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딱 한 채 살아남은 집이 있었다. 보물 1825호 만취당 임진왜란 전에 지어진 민가건물 중 드물게 보전되어 있는 건물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태어난 집이자 모친 김소강 여사가 탄생한 집.
440년의 역사를 간직한 만취당의 현판은 한석봉의 친필
전설에 의하면 만취당 마루 위 중간에 가로지른 나무가 있는데 가마 밑받침으로 서애 유성룡 선생을 잉태 중에 친정으로 와서 애기를 낳을 때 타고 온 가마라고 함
16세기 중반에 지어져 지금까지 보전된 흔치 않는 건물
임진왜란 발발하기 8년 전에 완성. 임진왜란 당시 김사원 54세 대가없이 양곡을 나눠준 김사원선생(1539~1601) 46세에 지어진 집/ 나눔과 베품을 실천함
영의정 서애 류성룡이 탄생하였고(1542 10.1.) 8세까지 살다가 서울로 감
모친 김소강여사는 90세까지 사시는데 정경부인으로 남녀 차별 없이 재산을 상속한 분재기를 남기다.
화재를 피한 이유-만취당 옆에 우물이 있어서 초기진화에 성공하였고 6.25에도 초기진화에 성공한 만취당. 마루 바닥과 천정이 다 보인다. 누가 숨어 있는 것도 보인다. 다른 집은 보이지 않으니 다 불태웠다. 만취당 수리한 기록이 있어서 보물이 지정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만취당이 있어서 역사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공룡발자국
공룡발자국을 100여기 정도 국내내륙지역 최대 공룡화석유적지
공룡의 존재 2억년 쥬라기부터 우리나라 특히 의성은 백악기 시대의 공룡 3종류 정도/초식공룡 발자국 1미터 정도/12톤 이상 진흙에 밟으니 지층이 깊이 있던 것이라 족적으로 공룡발자국으로 추정/발톱이 달린 모양 덩치가 작다. 몸이 날렵하다.
수억년이 지나도 뚜렷한 이유-금성산 화산이 7천만년전 비슷한 화산활동 그 열에 의하여 굽혔다
율정호
조선최조통신사 율정박서생
농정개혁을 주도한 실학의 선구자
박서생의 호를 따서 율정이라고 함
통신사-일본 처음으로 외교관으로 갔는데 신뢰의 뜻
율정호-일본으로 갈 때 타고 간 배를 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