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와 에버그린” 2026년 32번째(총 50번째) “포천(축석고개~국립수목원)~남양주(순강원~풍양궁 구궐유지비)” Riding. [역사탐방]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 25.0도이고 낮 최고기온은 영상 34.0도이다.
◈ 집에서 09시30분 자전거 타고 출발-한강 자전거길-서울 성동구 금호동4가 “용비교 쉼터”에 09시40분 도착하여 회원 만나 출발-중랑천 자전거길-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월릉교 서편”에 10시10분 도착.
커피 마시고 쉬었다 10시30분 출발-중랑천 자전거길-부용교-부용천 자전거길-자일천 자전거길(호국로1598번길-천보로242번길-호국로1694번길)-호국로-호국로1828번길-의정부시 자일동 산 92 “전적비휴게소”에 11시38분 도착.
쉬었다 11시50분 출발-호국로1828번길-호국로-축석고개삼거리-광릉수목원로-이동교로-거친봉이길-고모루성길-이곡길-
광릉수목원로-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675[소흘읍 직동리 387-2] “이송불고기” 식당(031-541-1232)에 12시28분 도착.
오전 라이딩 거리 44.0km
2명이 “돼지 숯불고기 정식” 점심(@12,000원) 먹음. 커피 마시고 식당에서 13시30분 출발-광릉수목원로-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산 50-18 “국립수목원”-봉선사천 자전거길-왕숙천 자전거길-내각사거리-내각1로-네긱2로-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66 “순강원(인빈묘)”에 14시10분 도착.
“국가지정문화재 비공개”로 순강원 관람 불가하여 “순강원 표지판” 사진 찍고 14시12분 출발.
순강원(順康園) [비공개]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2로 84-31
▷ 순강원(順康園) 이야기
순강원은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왕으로 추존된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의 원이다. 순강원은 1613년(광해군 5)에 인빈 김씨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인빈묘(仁嬪墓)로 처음 조성되었다. 1623년(인조 1) 손자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후 1636년(인조 14) 묘소 입구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 이후 영조 대에 들어 왕을 낳은 후궁(사친)의 사당과 무덤을 궁과 원으로 높이는 제도인 궁원제(宮園制)가 만들어지면서, 1755년(영조 31) 묘를 원으로 높여 이름을 순강원이라 하고 원의 형식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원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護石)만 둘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상석, 향로석, 동자석(童子石), 묘표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각 1쌍을 배치하였다. 석마, 석양, 석호만 1755년(영조 31) 원으로 높여지면서 다시 만든 것이고, 나머지는 인빈묘 당시에 조성된 석물이다. 봉분앞에 있는 묘표석에는 ‘유명조선국 인빈김씨지묘’라고 써있다. 원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향로와 어로, 홍살문이 있으며, 비각 안에 있는 표석은 원으로 높여지면서 세운 표석으로 ‘유명조선국 경혜인빈 순강원’이라고 써있다.
▷ 인빈 김씨(仁嬪 金氏) 이야기
인빈 김씨(재세 : 1555년 음력 2월 29일-1613년 음력 10월 29일)는 본관이 수원인 사헌부감찰 김한우와 전주 이씨의 딸로 1555년(명종 10)에 태어났다. 외사촌 언니인 명종의 후궁 경빈 이씨(당시 숙의 이씨)가 인빈을 궁중에서 길렀는데, 선조 즉위 후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의 총애를 받아 1573년(선조 6)에 선조의 후궁이 되어 숙원(淑媛, 종4품)이 되었다. 선조와의 사이에서 4남(의안군, 신성군, 원종, 의창군) 5녀(정신·정혜·정숙·정안·정휘옹주)를 낳았으며, 1604년(선조 37)에 인빈에 책봉되었다.
둘째 아들 신성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동인 정권의 지지를 받아 왕세자로 책봉되려 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실현되지 못하였다.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사저에 나가서 생활하였으며, 1613년(광해군 5년)에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1755년(영조 31년) 궁원제의 예에 따라 시호를 경혜(敬惠), 사당의 이름을 저경궁(儲慶宮)이라 하였다.
“순강원” 사진 찍고 14시12분 출발-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48 “봉영사”에 14시17분 도착.
사찰 관람(무량수전, 지장전, 산신각 등)하면서 사진 찍고 14시25분 출발-내각2로-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723-9 “풍양궁 구궐유지비”에 14시35분 도착.
▷ 풍양궁 구궐유지비(豊壤宮 舊厥遺址碑)
풍양궁은 조선 초기 태종 원년에 설치된 이궁(離宮)으로 동이궁(東離宮)이라고도 불렸다.
당시에는 도성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풍양궁, 서쪽에는 연희궁(衍憘宮), 남쪽에는 낙천정(樂天亭)의 3개의 이궁이 있었다. 풍양궁은 <세종실록> 지리지 양주도호부조에 "양주의 동남쪽에 있으며 곧 풍양현의 옛터이며, 또한 태종이 거동하여 계시던 곳"이라 하였다. 풍양궁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어 한 여름철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았으며 태종은 낙천정과 풍양궁을 수시로 왕래하였다. 또한 중종대에는 광릉 참배를 위해 왕의 행차 시 머무는 대주정(大晝停)으로 사용되었으며, 거국적인 군사 훈련이 실시되는 강무장으로 자주 이용되기도 하였다. 1696년(숙종 22)의 기록에 의하면 풍양궁은 터만 남아있다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불타 버린 것으로 추정되다. 이와 같이 터만 남아있던 풍양궁에 영조는 옛 궁궐터에 아무 표식이 없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며 친히 비의 앞면에 "太祖大王在上王時 舊厥遺址(태조대왕이 상왕으로 계실 때의 궁궐의 자리), 뒷면에 "皇明崇禎紀元後三乙亥仲春晝停干此拜手敬書(숭정기원후삼을해(1755년) 음력 2월에 이곳에 머물면서 삼가 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쓴다)라 써서 경기 감영에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또한 고종황제가 광무 10년(1906)에 비를 추가하여 세우고 비각을 중건하도록 명하여 현재 비각 안에는 두 개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의 높이는 196cm, 너비는 47cm이며 민무늬 대석에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 팔작지붕 형태의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비각은 전면 2칸, 측면 1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 현지 표지판 설명문 내용 -
사진 찍고 14시40분 출발-내각2로-내각1로-내각대교-왕숙천 자전거길-진관교-경춘북로-남양주시 퇴계원읍 퇴계원리 “퇴계원교”에 15시15분 도착.
쉬었다 15시30분 출발-별내역-금강로-화랑로-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화랑대”에 15시50분 도착.
쉬었다 16시00분 출발-묵동천 자전거길-월릉교 동편-중랑천 자전거길-서울 성동구 금호동4가 “용비교 쉼터”에 16시37분 도착하여 바나나(@1,800원) 음료 마시고 오늘 라이딩 마감(쫑)함.
쉬었다 16시50분 출발-한강 자전거길-집에 17시00분 도착.
오늘 09시30분부터 17시00분까지 실제 4시간45분 라이딩 90.12km(2026년 누계 3,631.9km, 9년째 총 누계 92,360.9km) 자전거(평균 시속 18.9km, 최고 속도 39.5km)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