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일요일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 (선자령,곤신봉, 동해 전망대, 매봉, 소황병산, 노인봉)
어제 청계산 다녀와서 이슬 맞지 말고 뜨거운 물에 몸을 풀었어야 하는 건데. 좌우간 몸이 개운한 것은 아닙니다. 새벽 3시 눈을 떴다가 4시까지 더 누워 있기로 합니다. 4시 10분전, 긴장한 탓인지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창밖을 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못가는거지. 그러나 강릉 가서 회를 먹는 한이 있어도 꼭 출발하라는 당부가 있어 주섬주섬 짐을 꾸립니다. 근래에 제법 무거운 배낭을 지고 나서는 나를 보고 집사람은 여러 가족 걱정시키네, 가능하면 안가는 편에 서세요라고 말합니다. 꼭 그래야겠습니다. 4시 50분에 집을 나서니 당촌초 앞에 벌써 일행이 와 있고 이매촌에서 한분을 태워 5시에 출발입니다. 길을 잘아는 분이 운전을 하여 국도로해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우리 일행은 4명이 다 왔는데 안양에서는 한분이 안와서 3명이 출발이랍니다. 시간상 여주 휴게소에서 만나면 시간을 허비할 것 같으니 아침 먹을 소사 휴게소에서 만나잡니다. 그런데 내가 착각을 했습니다. 소사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 맞는데 나는 속사휴게소에서 먹을 생각을 해서 속사휴게소에서 만나자고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소사 휴게소 지나고 보니 속사휴게소 가기 전에 월정사 가는 IC가 나옵니다. 아뿔사. 할 수 없이 그 팀은 그냥 빠져나가라고 연락을 하고 나니 우리 역시 속사 휴게소 가기 전에 횡계가 나와 그리로 빠집니다.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빗발은 굵어졌다 가늘어 졌다 하지만 잠시도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칠 기미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정 어려우면 선자령에서 강릉으로 하산하면 되니까 하고 위로를 삼습니다. 횡계에서 전에 아침 먹던 아우네를 찾았으나 문을 열지 않았고 황태회관에서 황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습니다. 식당에서 안내하는 사람은 비가 이렇게 오는데 산에 간다고 하니 참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옛 대관령 휴게소. 그 북적거리던 휴게소가 이젠 장사하는 가게가 하나도 없습니다. 차를 주차하고 배낭을 내려 건물 추녀 안에서 차비를 차립니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산은 다른 분 배낭에 찔러 넣고 간식 일부와 물을 다른 분께 맡깁니다. 배낭에 너무 많이 넣어 짐이 곤란해서입니다. 판쵸 우의를 입고 지팡이 두개를 짚고 나섭니다. 비는 내리지만 바람은 불지 않습니다. 선자령 가는 길은 자동차 길입니다. 길이 아주 좋습니다. 국사 성황당 입구 비석을 지나 한참 가니 오른쪽으로 무슨 항공과 관련된 시설이 있고 왼쪽으로는 거대한 목장들이 펼쳐 지기 시작하며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보입니다. 갈림길에서 선자령 2.9KM, 2.7KM 표지가 있어 당연히 2.7을 택하니 한봉우리에 닿습니다. 새봉입니다. 이제 비는 그칩니다. 판쵸를 벗어 배낭에 매답니다. 시야가 확 트여 전망이 일품입니다. 강릉과 동해, 경포대와 강릉 비행장이 발아래 보이고 지나온 쪽으로 능경봉, 멀리 발왕산 정상이 보입니다. 이내 출발하여 거대한 풍력 발전기를 바라보며 전진합니다. 풍력 발전기가 참 많습니다. 눈으로 세어 보니 47개까지 셀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록을 보니 49개가 있답니다. 풍광은 참 좋습니다. 비도 그치고 등산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입니다. 1000미터 이상의 고원 위를 걷습니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는 마치 SF영화에서 낯선 외계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9시 30분, 1,157미터 선자령에 닿습니다. 쉬면서 전망을 감상합니다. 강릉서 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차가 한참을 올라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차가 올라 올 수 있는데까지 오면 한 시간은 절약 될 것 같습니다. 대간길은 온통 파헤쳐져서 자동차 길이 되어 있습니다. 리본도 거의 떼어내져 있습니다. 1,127미터 곤신봉은 길가에 표지석만 있습니다. 그냥 길입니다. 삼양 목장과 풍력 발전이 길을 내어 대간 길은 새로 난 길과 옛 샛길을 오고가고 합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저만치 앞에서 관광버스가 가고 있습니다. 1100미터 넘는 산위에 관광버스. 참 김이 샙니다. 가까이 가니 동해 전망대입니다. 1,140미터. 안개가 낍니다. 잠시 쉬며 물마시고 간식을 먹습니다. 관광버스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버스가 많이 왔다갔다 합니다. 소화병산, 매봉 쪽으로 갑니다. 목장길을 갑니다. 자동차 길입니다. 그런데 그만 대간길을 놓친 것 같습니다. 영 리본이 보이지 않습니다. 목초를 베어 쌓아 놓은 랩 뭉치를 만져 봅니다. 정말 거대한 목장입니다. 이윽고 열쇠를 교환하기로 한 매봉에 닿습니다. 봉우리는 저 위인데 표지판은 길가에 있습니다. 11시 20분. 3시간 20분 걸렸습니다. 내 전화는 배고파요 하길래 꺼놓았습니다. 다른 팀과 연락해보니 길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 진행하기로 하여 한 20여분은 갔나 싶은데 이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문 7KM, 그리고 또 다른 길은 무슨 아파트 단지 같은 곳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리본도 하나 없습니다. 다른 팀과 연락하여 다시 돌아가 매봉 표지판 밑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40여분을 허비합니다. 드디어 일행을 만나 점심을 먹습니다. 파커를 꺼내 입습니다. 40여분 점심을 마치고 열쇠 교환하여 다시 길을 나섭니다. 14:00시입니다. 매봉으로 올라서 대간길을 가노라니 빗방울에 바지가 몽땅 젖습니다.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길가는 온통 멧돼지가 땅을 파 헤친 흔적입니다. 금방 파헤친 듯 생생한 것도 많습니다. 비오고 안개 끼어 조망은 없습니다.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 숲길을 갑니다. 대개 왼쪽에 목장을, 오른 쪽에 숲을 두고 진행합니다. 선자령까지는 종아리가 땡기고 오른쪽 다리는 오금이 아프고 어제 등산의 후유증이 남았는데 다행히 오후에는 걸을 만 합니다. 소황병산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지납니다. 지나온 분의 설명으로 이곳이 소황병산이겠구나 할 따름입니다. 매봉에서 소황병산까지 한시간 30분. 등산로 아님 출입금지 밧줄을 들치고 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진행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이제 노인봉까지 한시간. 빗속을 열심히 걷습니다. 여전히 조망은 트이지 않습니다. 목장은 계속되니 참으로 대단한 목장입니다. 소황병산 못미쳐서 소떼를 만납니다. 길을 막고선 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봅니다. 소들을 피해 갑니다. 노인봉 거의 다 온 지점 바위에서 잠시 쉽니다. 저 앞쪽이 아마 노인봉 같습니다. 노인봉서부터는 나무계단으로 길이 좋다고 했는데.그러나 정상은 들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생각나고 봉우리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도는 듯한 등산로에 산악회 리본이 선명하게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아무리 가도 노인봉 길 같지 않습니다. 내가 전에 가 본 노인봉 길을 회상하면 능선으로 가도록 되어 있는데 계속 밑으로 떨어지기만 합니다. 잠시 멈춰 의논합니다. 다시 돌아가 올라 갈 것인가. 다들 그냥 가자고 합니다. 진행합니다. 리본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간길을 벗어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산자분수령,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가로 지르지 않는다가 백두대간의 기본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길은 계곡길입니다. 작은 물줄기도 건넙니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잘못들었던 기억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게다가 이곳은 해발 11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 길은 점점 더 전형적인 계곡길로 변하고 계곡물은 더 크고 깊게 이어집니다. 별의별 불길한 생각이 다 일어 납니다. 이때부터 내걸음은 빨라지기시작합니다. 산속에서 해가 지면 큰일입니다.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다행히 다리가 말을 들어주어 거의 내달리는 수준으로 산길을 갑니다. 구르듯이 뜁니다. 아름다운 계곡, 바위를 흐르는 맑은 물, 폭포 등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비오는 날 산의 계곡을 건너지 말아야하는데 계속 유명산 계곡처럼 계곡을 이리건넜다 저리 거넜다를 반복합니다. 그럴때마다 계곡은 더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쉬어가자고 하지만 계곡을 벗어날 전망이 보일 때까지는 쉴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1시간 20여분을 쉴새없이 뛰었습니다. 간신히 다른 팀과 통화하니 아마 이곳이 안개자니 계곡일 거라고 합니다. 드디어 길가에 염소를 매어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휴우 하며 비로소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더 가니 어떤 사람이 트럭을 세워 놓고 풀을 베고 있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싶습니다. 비로소 앉아서 조금 쉽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답니다. 진고개는 한 4KM는 가야 된답니다. 도로에 도착하니 마침 다른 팀이 차를 가지고 옵니다. 반갑게 해후합니다. 오후 5시20분쯤입니다. 산 속에서 9시간 20여분 있었던 셈입니다. 비록 막판에 대간의 마루금을 벗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대간의 한구간을 종주하였습니다. 진부로 나가다가 산채 정식, 11,000원.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가, 가게도 있는 그 식당이 맛있었는데. 아 여하튼 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