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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4편)
20210419
바라제 존자에게 이견왕이 묻 되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하니 존자가 대답하되
"불성을 본 이가 부처입니다"
"스님은 불성을 보았습니까"
"예, 나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불성이 어디에 있습디까"
"예, 불성은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게 무슨 작용이게 나에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예, 지금 작용하는 것이 보이건만 대왕 스스로가 보지 못하십니다"
"나에게도 그 작용이 있습니까?"
"예, 대왕께서 착용하신다면 그것 아닌 것이 없지만 왕께서 작용치 않으신다면 본체마저 보기 어렵습니다"
"작용할 때엔 몇 곳으로 나타납니까?"
"예 나타나는 곳은 여덟 곳이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 나타나는 법을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예, 태에서는 몸이라 하고, 세상에서는 사람이라 하고, 눈에서는 본다 하고, 귀에서는 듣는다 하고, 코에서는 냄새를 맡는다 하고, 혀로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물건을 잡고, 발로는 다니니, 두루 나타내면 항하사 세계에 퍼지고, 거두고 모으면 한 티끌에 들어갑니다. 아는 이는 불성인 줄 알 거니와 모르는 이는 정신 영혼이라 합니다" 하니
왕이 말을 듣고 마음이 트이어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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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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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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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궁금해하시는 독자분들이 그동안 많이 늘었는데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어떤 특정한 종교나 단체를 비방하거나 포교 또는 전도를 하기 위함이 아니랍니다.
오로지 수행을 통해 견성성불을 돕고자 하는 마음의 글이며
기독교분들이 하루속히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품 안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글이랍니다.
아무쪼록 저도 열심히 할 것이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또한 모두들 열심히 하셔서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중요한 내용은 (※)를 해 두었는데요.
바쁘신 분들은 (※)만이라도 골라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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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본성(불성/성령/마음)을 보는 내용인데요.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성은 보는 거랍니다.
이것을 볼 줄 모르면 이 공부는 한 발자국도 이어나갈 수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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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침]
견성성불(見性成佛)의 핵심
부처님이 알려주고 계시는 방법을 압축하면 딱 네 가지랍니다.
<※부처님 수행 방법의 사성제(四聖諦)>
1. 현재 이 순간 깨어서 알아차린다. (고성제)(간화선은 화두를 알아차린다)
2. 그리고 알아차림만 남을 때까지 노력한다. (집성제)(간화선은 화두(의단)만 남을때까지)
그러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견성/見性)
3. 마음에 것들을 비우고 버린다. (멸성제의 핵심/바라밀/波羅蜜)(간화선은 마지막에 화두(의단)를 타파한다, 깨버린다.)
3. 그러면 스스로 도(道)를 이룰 수 있다. (도성제의 핵심/成佛)
오늘 내용도 이 안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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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보니까 바라제 존자(婆羅提尊者)는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들어오기 전의 제자랍니다.
그리고 달마대사는 이견왕(異見王)의 숙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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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아주 중요한 내용인데요.
그 이유는 불성을 보는 방법이라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새벽 별을 보다가 이것을 깨달았는데요.
깨어서 별을 알아차리는 순간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셨던 거랍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 주의하셔야 할 대목은..
부처님이 "별을 보고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과 "별을 보다가 깨달았다"고 하는 의미는 다르답니다.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다가 깨달으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별을 보고~"는
내가 별을 보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나의 의식이 밖으로(별 쪽으로) 향해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별을 보다가~"라는 의미는 "또 다른 무엇?" 이 성립된답니다.
부처님의 의식이 별 쪽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별을 보고 있는 안쪽으로 향해 있었다는 뜻이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할 때에는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많이 써서 설명해야 하고 들어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말로 표현을 해서 상대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로 표현을 하자니 어려워서 부처님도 많은 방편을 쓰셨던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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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이번 달에 카투사로 제대를 한 젊은 친구가 "어?" 하면서 본 것이 바로 그것이랍니다.
몇몇 분들은 불성은 볼 수 없는 것이라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런 분들은 미안하지만 아직 이것을 못 보고 모르시는 분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
부처님 말씀대로 알아차림만 남을 때까지 알아차림을 해보십시오..
바로 그곳에서 불성을 보실 수 있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대념처경]을 통해 수차례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답니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로지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 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라고요.
이 말의 뜻은 알아차림 만이 남을 때까지 해보라는 뜻이랍니다.
이 단계에서 지혜와 알아차림이 성립된다는 뜻이랍니다.
(간화선에서는 이것을 "의단疑團이 뭉쳤을 때"라고 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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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는 이런 경우도 있었는데요.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랍니다.^^
어느 날 제가 타고 다니던 승용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삼중 충돌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제 자동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앞에 서있던 버스를 들이 박고 뒤따라오던 차가 제 차를 다시 들이 받는 바람에 제 차는 폐차를 했던 사고가 있었답니다.
바로 제가 앞차를 들이받는 짧은 순간이지만 저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는데요.
왜냐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저는 그 순간을 하나하나 깨어서 알아차리고 있었답니다.
(※ 평상시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 결과 그때나 지금이나 제 경우는 어떤 급박한 순간이 와도 자동으로 깨어서 알아차리는 습관이 생겼는데요.)
그때도 그랬답니다.
앞차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냥 편한 마음으로 될 때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포기를 하고 부닥치는 순간을 깨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순간 태어나서 두 번째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왜냐하면..
"꽝~" 하는 순간 내 눈앞에서 아주 선명하게 불성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인데요.
저는 한동안 사고고 뭐고 그 불성 자리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제 느낌으로는 꽤 오랜 시간 보고 있었는데요.
그때는 정말이지 불성 그 자체만 선명하게 보고 있었답니다.
조금 있다 보니까 사고처리를 하러 온 사람들이 저에게 무슨 질문을 하는 것 같았는데 저는 불성을 보느라 사고처리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그렇게 저는 계속 그 불성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나중에 그분들이 하는 말이 사고 충격으로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으로 알았다 하더군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의 눈동자는 넋 나간 사람처럼 말도 안 하고 웃는 얼굴로 계속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요..
사고가 난 사람이 비실비실 웃으면서 한 곳에만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볼 수 박에요.^^
솔직히 저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답니다.
속으로 "와~^^" 하면서 말이지요.
다음날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까 갈비뼈가 두 개 금이 갔더라고요..^^
그리고 그 통증을 몇 달간 또 알아차리면서 지냈답니다.
나중에는 그 통증이 없어지니까 서운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오늘 본문 내용처럼 작용이 없어졌으니까요..
여러분들도 작용이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곳에서 불성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은 어느 날 일물선원의 선원장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랬더니 눈을 크게 뜨시면서 선원장님도 이십 대 때 갑자기 앞차가 차선 변경을 하는 바람에 서 있는 차를 크게 들이받고 똑같은 경험을 하셨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선원장님은 갈비뼈가 세 개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 많이 웃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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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처럼 불성은 보는 것이랍니다.
깨어서 현재를 보면 늘 있는 것이지요..
(※)
깨어있지 않으면 오온과 생각들이 가려져 있어 볼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귀가 따갑도록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려 보라고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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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을 보는 방법은 그냥 단 한 번에 알아차려야 한답니다.
복잡하게 보려고 하면 더 헷갈린답니다.
(현재 수행자분들이 대부분 여기서 헷갈려 하고 있음.. 수행은 아주 단순하게 하는 것이 최상이랍니다.)
그래서 전혀 불교 공부를 안 한 사람들이 유리할 수도 있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뭘 알고 보면 더 헷갈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이나 다른 것들을 보지 말라고 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듣고 읽은 것들이 많다 보니 그 기준점으로 본인이 보고도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헷갈려 하거든요.
이것은 그냥 봐야 한답니다.
(※)
현재 이 순간 깨어서 보는 순간 제일 먼저 눈앞에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현재를 깨어서 보십시오.
현재라야 합니다.
1초라도 상관 없습니다. 현재 깨어서 보고 있는 쪽으로 의식을 돌려보십시오.
깨어서 보고 있는 바로 그놈이랍니다.
이 방법이 오늘 본문 내용에서 나오는 (눈.)에 해당하는 방법이랍니다.
나머지 방법도 모두 이와 같은 방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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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의 핵심은 여덟 가지의 작용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가 되면 나머지도 자동으로 된답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오온의 작용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수행도 마찬가지랍니다.
"나는 간화선은 할 줄 아는데 위파사나는 못한다"라는 말은 말이 안 된답니다.
간화선으로 된 사람이라면 위파사나든 조사선이든 모두 통하는 자리가 그 자리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수행 방법이 많다 하더라고 그 길로 들어가는 길은 단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원리도 모두 같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르치는 자리에 계시는 분들은 어느 수행 방법이든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그래야 상대에게 잘 맞는 수행 방법을 제시해 줄 수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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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수행 방법이든 돌이켜서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여덟 가지에서 나오는 작용들을 돌이켜서 보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헛수고랍니다.
수행의 가장 기본은 조견오온(照見五蘊) 이랍니다.
오늘 본문 내용의 여덟 가지 방법도 모두 이 안에 속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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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에서 여러분들이 주의해서 보셔야 할 점은
(※)
[불성은 작용하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본성은 그 어디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으려면 여러 가지 작용들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답니다.
(※)
그러려면 먼저 내가 깨어있어야 한답니다.
깨어서 알아차리고 있는 가운데 볼 수가 있답니다.
꼭 여덟 가지로 한정 지어서 알아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기능이 이 여덟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분들도 열심히 해보십시오,
깨달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알아차림으로 하시는 분들은 늘 깨어서 알아차리십시오.
화두로 하시는 분들도 늘 화두를 들고 바라보십시오..
이것 외에는 없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모든 만법(萬法)은 이 하나로 통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효스님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신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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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불성은 이 여덟 곳의 작용에서 나타난다는 뜻이랍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여덟 곳의 작용에서 불성을 알 수가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누구나 사람들은 이 여덟 곳의 기능들을 쓰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몸)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사람)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눈.)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귀)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코)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혀)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손)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발)의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것을 줄여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중국 스님들은 함축해서 이야기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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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뿐 아니라 그 외에도 수많은 기능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볼 수도 있답니다..
발생하는 바로 그 자리에 불성이 있다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이것을 일반 사람들은 보지를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평상시에 모든 의식이 밖으로만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의식을 안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랍니다.
(몸)을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눈.)을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귀)를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코)를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혀)를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손)을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발)을 통해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면 그 작용이 일어나는 쪽으로 의식이 깨어서 가 있어야 합니다.
(※)
이렇게 수행할 때의 의식은 항상 내 안쪽으로 가 있어야 한답니다.
절대로 작용하는 바깥쪽으로 의식이 가있으면 안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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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교에서는 이것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작용이라고 명칭하고 있는데요.
이 문구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ㆍ귀(耳根)ㆍ코(鼻根)ㆍ입(舌根)ㆍ몸(身根)ㆍ뜻(意根)의 총칭이다. 12처(十二處)중의 6처(六處)에 해당하며 육입(六入)이라고도 한다. 안계(眼界)등의 전5근(前五根)은 감각기관(五官) 또는 그 기능을 의미하고, 그 체(體)는 색법(色法), 곧 색근(色根)이다. 여기에서 의근(意根)은 심법(心法)으로 무색근(無色根)이다.]
라고 되어있는데요.
한문식 표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조견오온照見五蘊)이지만..
입소리 표현은 오늘 본문 내용처럼 (몸)(사람)(눈.)(귀)(코)(혀)(손)(발)의 작용을 통해 나를 알아차리라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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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는 이렇게 따로따로 하지를 않고요.
(※)
내 몸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일어나고 살아지는 것들이 모두 다른데 언제 따로따로 분리를 해서 하느냐 이거지요.
이것도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서 하시면 좋답니다.
하나는 좌선이나 이와 유사한 환경에서 수행을 하실 때에는 바라제 존자 처럼 이 여덟 가지의 작용 중 하나를 선택하셔서 깨어서 알아차리면 좋고요..
일을 하시거나 움직이면서 수행을 하실 때에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하시면 좋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좌선을 하실 때는 하나만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깨어서 알아차리라는 뜻이고요.
일을 하거나 움직이면서 할 때는 내게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면 좋다는 이야기랍니다.
부처님도 이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가시면서 하셨답니다.
(※)
중요한 것은 깨어서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깨어있는 놈을 찾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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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꼭 좌선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아주 잘못된 생각이랍니다.
수행은 어느 장소, 어느 환경에서도 모두 가능해야 한답니다.
그 이유는 수행은 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대화를 나누면서도, TV를 보실 때에도 늘 깨어서 하는 거랍니다.
늘 내 마음을 깨어서 바라보고, 챙기고, 마음에 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는 것이랍니다.
이렇게 늘 나를 바라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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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작용이란
사람은 누구나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를 이용해 일도하고,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사랑도 하고, 싸우고, 별의별 것들을 다 하면서 살고 있지요.
이러한 것들에서 작용이 일어나지요..
오늘 본문 내용과 같이
(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작용에 속합니다.
(사람)들 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도 모두 작용에 속합니다.
(눈.)을 통해서도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작용에 속합니다.
(귀)를 통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작용에 속합니다.
(코)를 통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작용에 속합니다.
(혀)를 통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작용에 속합니다.
(발)을 통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도 모두 작용에 속하지요.
하다못해 감기가 걸려서 콧물이 나오는 것도 작용에 속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수행 도구랍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로 만든 것이 화두(話頭) 법이고요.
그 작용을 깨어서 바라보십시오.
작용이 강하면 가할수록 더 알아차리기가 좋겠지요.
지금 보고있는 대념처경 내용도 같습니다.
시체가 썩어가고 죽은 피가 말라 가는 과정을 보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를 관찰하는 순간 거기서 발생하는 작용은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자장율사처럼 해골을 앞에 놓고 관찰하는 순간 발생하는 작용은 또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사랑하는 부모나 자식이 죽어갈 때 발생하는 작용은 또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 발생하는 작용은 또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하다못해 길을 가다가 오만 원짜리 지폐가 길에 떨어져 있는 것만 보아도 발생하는 작용은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저처럼 순식간에 빙판길에서 자동차가 삼중 충돌을 당했을 때 발생하는 작용은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또
갈비뼈에 금이 가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일어 날때 발생하는 작용은 또 얼마나 강열하고 뚜렷할까요.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불성을 보기 딱 좋은 기회랍니다.
이런 것보다 더 깨어서 알아차리기가 좋은 작용이 또 어디 있을까요.
사랑하는 연인이 배신을 했습니다.
마음이 엄청 아프고 괴롭습니다.
이것보다 더 알아차리기가 좋은 작용이 또 어디 있을까요..
지금부터라도 수행자라면 이러한 작용들을 깨어서 보아야 한답니다.
그저 아픈 것에 끌려 들어가면 안 된답니다.
(※)
알아차리고 있는 그놈에게 의식이 가 있어야 불성을 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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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꼭 작용이 아픈 곳에만 있을까요?
즐거운 것도 작용이오.
괴로운 것도 작용이오.
슬픈 것도 작용이오.
서운한 것도 작용입니다.
모든 것들이 작용이랍니다.
그 작용을 깨어서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위파사나의 핵심이고
바로 이것이 조견오온(照見五蘊) 이랍니다.
(※)
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 속에서 불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그 방법은
현재 이 순간 깨어서 보면 알 수 있는 것이고요.
여기서 깨어서 보는 놈이 바로 그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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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이러한 기능 등을 통해 작용되고 있는 곳에 불성이 있다는 내용이랍니다.
불성은 어느 것이든 작용되고 있는 곳에 불성은 드러난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을 못 알아차릴 뿐이지요.
,
(※)
그런데 왜 알아차리는 사람은 알아차리고 못 알아차리는 사람은 못 알아차릴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답니다.
알아차리는 사람은 의식이 안으로 향해있지만
못 알아차리는 사람은 의식이 다른 곳으로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 중요)
눈앞에 이쁜 색시가 있다고 하지요.
깨어있는 사람은 앞에 있는 이쁜 색시를 보면서도 지금 보고 있는 내 쪽으로 의식이 가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의식은 앞에 있는 이쁜 색시에만 홀딱 빠져 있지요.
,
하나 더 해볼까요.^^
어떤 일이 생겨서 지금 머리가 아주 복잡하고 생각이 많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그 생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그 생각 속에 푹 빠져서 해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작용에 속한답니다.
눈으로 이쁜 색시를 보는 것도 작용이오.
생각도 작용이지요.
내가 느끼는 모든 작용들을 깨어서 알아차려 보십시오.
,
정확히 말하면 불성(성령/마음/본성)은 늘 나타나 있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못 알아차리지요.
이것은 마치 [매직아이]와 비슷합니다.
어느 순간 "어?" 하면서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평상시에 지금 작용하고 있는 그 경계에 깨어서 의식이 가 있어야 볼 수 있답니다.
마치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듯이 찌만 보고 있는 것처럼 화두든 알아차림이든 깨어서 보고 있어야 불성을 볼 수 있답니다.
바라제 존자가 오늘 알려주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이런 것이랍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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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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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오늘도 알아차림에 대한 부처님 수행 방법인 [대념처경]에 나오는 내용 중 일곱 번째 내용인데요.
이어서 보겠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면서 힌트를 얻어 보십시오..♡
(이 내용은 부처님이 직접 수행하셨던 방법들을 전하는 내용이랍니다.♡)
ㅡ
11:5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일 년이 넘어 뼈 무더기가 되어 쌓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실로 이 몸도 (저 시체와) 똑같은 성질의 것이다.
이 몸도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고.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고,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고,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한
몸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낸다.
"이것이 몸이다."
라는 알아차림은 그에게 확립된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르지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 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는 방법이다.
(13:20~ 은 다음 주에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ㅡ
(해설)
오늘 내용도 지난번과 비슷한 내용인데요.
오늘은 우리가 그 당시처럼 시체가 썩어가는 보습들을 보고 수행할 수가 없는 관계로..
그 대신 죽어가는 사람의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내게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작용들을 관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같이 한번 동영상을 보면서 내게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작용들을 잘 관찰해보시지요.
특히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현상들을 잘 관찰해보시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이것도 하나의 작용에 속한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내게서 일어나는 작용들 속에 불성이 있다는 뜻이랍니다.
왜? 시체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하는가?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평상시에는 자신을 못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부유하고 고민이 없는 사람들은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부족할 것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렇게만 흘러가나요..
지금은 부족할 것이 별로 없고 고민이 없어 보이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피눈물을 흘릴 때가 있지요.
이때가 사실은 찬스랍니다.♡
부처님도 지금 방편으로 시체나 죽어가는 사람 또는 이와 유사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서 나를 되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랍니다.
왜냐하면 작용이 아주 강하게 일어나거든요..^^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목숨] 임종을 둔 마지막 하루
https://youtu.be/4kAwRpGrU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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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분들의 글이랍니다. ♡
오늘도 [유마경] 내용을 들어보시면서 각자가 내가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가늠해 보시지요..♡
아직은 유마거사의 내용은 안 나오고 서품(서론)에 해당하는 부처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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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4~
청정한 십선업도야 말로 보살의 불국토이다.
저 사람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 불국토에는 선업을 닦은 결과로서 천수를 누리는 사람, 대부호가 된 사람, 이성과의 교제에 흠이 없는 사람, 진실을 말하는 사람, 말씨가 온화한 사람, 가족 간에 화목한 사람, 싸움을 절묘하게 화해시키는 사람, 시기하지 않는 사람, 성내지 않는 사람, 올바르게 보는 사람 등에 중생들이 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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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십선도(十善道)란
인간의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행하는 선도(善道)인데요.
1. 신체(몸)×신삼(身三),
2. 입(언어)×구사(口四)
3. 마음×의삼(意三)
으로 행하는 선도(善道)를 말한답니다.
쉽게 말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
해서 모두 열 가지인데요.
(몸)으로 짓는 세 가지는..
1. 살생(죽이는 것),
2. 투도(훔치는 것),
3. 사음(남녀의 관계의 부정),
(입)으로 짓는 네 가지는..
4. 망언(거짓말을 하는 것),
5. 양설(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6. 악구(험담을 하는 것),
7. 기어(함부로 말하는 것),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는..
8. 탐욕(탐하는 것),
9. 진에(화내는 것),
10. 사견(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
이 열 가지 행위를 잘 짓는 것을 십선도(十善道)라 하고 잘못 짓는 것을 십악도(十惡道)라고 한답니다.
이것을 통틀어 계율(戒律)이라고 하고요.
즉
이 열 가지 기준점을 토대로 (부록 2)에 계시는 분들은 늘 자신의 행위를 점검해 보아야 하고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알아차림을 통해 내려놓고 버려야 한답니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끝내는 불국토에 안주할 수 있는데요.
이것은 이번 생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음 생에도 영향을 미친답니다. (진실)
바로 이 부분이 여러분들의 앞날과 다음 생을 결정짓는답니다. (진실)
지금 깨달았다고 해서 다음 생에 태어나자마자 바로 깨닫는 것은 아니고요.
다시 이 법을 만나 다시 깨닫게 되는데요.
그때는 선업이 있는 상태라 한결 쉽게 깨닫고 성불을 이룰 수 있답니다.
문제는 깨닫기 전에 또 모르고 좋지 않은 악업을 짓는 경우인데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깨닫자마자 참회부터 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되거든요.
기독교인들은 회계의 눈물을 흘리게 되지요.
제 경우도 그동안 수십 억겁 동안 잘 해오다가 바로 전 생에 엉뚱한 악도(惡道) 때문에 지금도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인데요.
과거 생에 이 화려하고 무소불위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오늘 내용처럼 십선도(十善道)를 잘 닦았더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됐을 건데요.
다시 깨닫게 되면 나의 행적들이 그대로 다시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답니다.
누구나 깨닫기 전에는 십우도(十牛圖)의 내용처럼 악업을 짓게 되는데요.
도인들의 세계에서도 일직선으로 쭉 가는 경우는 드물고요.
이렇게 생과 생마다 깨닫기 전에는 실수들을 많이 하면서 한 단계 한단계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결과는 그대로 인연법으로 연결이 되고요.
그래서 부처가 되기까지는 수십 억겁이 걸리는 거랍니다.
이 인연법은 한치도 벗어날 수가 없답니다.
부처님도 이 인연법은 벗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제바달다(提婆達多)와의 이연만 예를 들어도 수십 억겁 생을 거쳐오면서 이 인연법(因緣法)을 못 벗어나다가 종국에는 부처가 되신 분이신데요.
우리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계속 이렇게 실수하고 바로잡고 또 실수하고 바로 잡아가면서 수십 억겁을 이어나가다가 종국에는 완전한 부처가 되는 거랍니다.
문제는 이것조차 못 깨닫는 것이 큰 문제이지요.
그러니 수행을 해 나가시다가 실수가 조금 있더라도 신경 쓰지 마시고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이 인연법을 다른 말로 연기법(緣起法) 또는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이라고도 하는데요.
저는 이것을 듣기 편하게 (보이지 않는 끈)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답니다.
보이지 않는 끈의 작용을 운(運)이나 재수(財數)로 돌리기 보다 본인이 뿌린 데로 보이지 않는 끈들이 작용을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내가 "야.!" 하면
상대는 "왜!" 하듯이..,
내가 "안녕하세요.^^" 하면
상대도 "네 안녕하세요.^^" 하듯이
이 보이지 않는 끈인 인연법은 서로 연결되어 작용을 하고 있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인연으로 인해 잘 풀려나가고..
어떤 사람은 좋은 인연을 통해 잘 풀려나가다가도 또 다른 좋지 않은 인연으로 막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쁜 인연으로만 흐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뿌린 데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치는 이 연기법(緣起法)에 의해서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한국 불교에서는 이것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22:17~ 은 다음 주에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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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 보내드릴 선문염송 105편인데요.♡
뜻을 아시는 분들은 요점만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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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5편)
20210414
2조 혜가대사에게 3조가 묻되
"제자는 몸에 병이 걸렸으니, 화상께서 참회해 주옵소서" 하니,
2조가 대답하되
"죄를 가져오너라, 참회해 주리라"
3조가 양구하다가 다시 말하되 "죄를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2조가 말하되
"그대의 죄는 다 참회되었으니, 불, 법, 승에 의지에서 살라"
3조가 말하되
"제가 지금 화성을 뵈오니 승보인 줄을 알았으나 불보와 법은 무엇입니까?"
2조가 대답하되
"마음이 부쳐요, 마음이 법보니라. 불보와 법보가 둘이 없나니, 승보도 그러하니라"
2조가 말하되
"제자는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이 안팎이나 중간에 있지 않고 마음이 그렇듯이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2조가 몹시 대견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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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튜브 동영상 내용은 오랜만에 현각스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각스님은 태어난 해가 저와 같은데요.
인연이 되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스님인데요.
수행에 있어서 좋은 내용들이 많으니 잘 들어보시죠..^^♡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여여선원 현각스님 초청법회 2009.03.25
https://youtu.be/l9mBLEqCb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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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