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에니어그램3) 조조의 성격 - 성취주의자
조 성 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1. 노력파임
조조는 일을 처리할 때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이다. 조조는 낮에는 군사전략을 궁리하고 밤에는 유교경전을 읽었다. 조조는 전쟁터에서도 여러 종류의 책들 중 손자병법 책을 열심히 읽었다. 높은 곳에 이르면 시를 읊조리고 새로운 시가 나오면 음악에 맞추어 노래했다. 문학에 뛰어난 재주가 있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독서광이었다.
조조는 군무와 정무에 힘쓰면서도 시간을 내 문학에 관한 저술을 남겼고, 전쟁 중에도 군막 안에서 작품을 쓰기도 했다. 조조는 시문에 밝아 평생에 걸쳐 이룩한 군사활동과 역사적 사건에 밀접한 연관을 둔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많이 썼다. “해오행”의 주제는 동탁이 한나라 조정을 망치고 사회적 혼란을 유발한 배경과 과정 및 결과에 관한 것이다. 또 “호리평”은 원소가 조직한 반동탁연합군의 붕괴와 내분에 관한 것이다.
2. 상황파악을 잘함
조조는 물러나야 할 때와 나가야할 때를 살피고, 직접 나서야할 때와 남의 힘을 빌려야할 때를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조조가 젊었을 때 권력자인 대장군 하진의 참모를 했다. 하진이 환관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의 장군들을 불러올리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원소 등 다른 참모들은 찬성했으나 조조는 반대했다. 반대한 이유는 지방의 군대를 끌어들이면 이리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부르는 꼴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탁을 불러들이는 의견이 채택되었고, 불려 들어온 동탁이 정권을 장악해버렸다.
이처럼 조조는 상황의 본질을 꿰들어 보는 눈이 예리했다. 동탁은 조조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측근으로 쓰려했고, 이는 조조의 출세길이 보장되는 것이었다. 동탁은 한실을 없애고 자신이 천하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꿈꾸고 있었는데, 조조는 동탁의 한계를 보았고 그의 그릇으로 보아 오래 못 간다는 확신을 했다. 조조는 동탁을 제거하려다 실패했다.
조조는 전쟁으로 주인을 잃은 농지를 몰수하여 지방정부 소유로 하고, 이 토지를 자신의 군대와 투항한 황건군에게 나눠줘 경작을 하게 하는 둔전제를 시행했다(196년). 둔전제는 소출의 50%를 경작자가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제도로써, 식량의 어려운 사정을 간파한 조조의 상황판단에 따른 것이다. 둔전에 의해 식량문제가 해결되어 백성들이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는 백성들에 대한 관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었고, 군사적으로는 군량미 부족문제가 해결되어 각지에 할거하고 있던 군벌들에 대한 토벌전을 용이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부대가 이동 중인 어느 날 병사들이 갈증에 허덕일 때, 조조는 채찍으로 먼 산을 가리키며 신 매실이 많이 있다고 하여 병사들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병사들이 행군하면서 민간에게 폐를 끼칠까 봐 병사들에게 보리 싹을 밟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고 명했다. 그런데 자신의 말이 메추리에 놀라 날뛰는 바람에 자신이 내린 군령을 스스로 어기자, 자기의 머리카락을 잘라 병가들에게 보여주어 군율을 유지시켰다.
3. 성취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음
조조는 비능률과 반복되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일을 추진할 때 능수능란하게 휘어잡는 능력이 있었다. 조조가 낙향하는 길에 아버지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 들렸다. 여백사가 조조에게 대접할 고기를 준비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는데, 조조는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여백사 뿐만 아니라 후환을 없애기 위해 그 식구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조조는 자신의 위신에 상처를 입히거나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인물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해치웠다. 순욱은 조조의 입신 초기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했지만, 나중에 왕이 되려는 조조의 야망을 순욱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조조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병을 앓고 있는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다. 텅 빈 그릇은 죽으라는 명령임을 안 순욱이 자결했다. 조조의 위신에 상처를 입혀 제거된 인물로 공융과 예형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당대 최고수준의 재능과 인맥을 보유한 명망 높은 문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조에게 격분을 사게 되어 처형되었다.
조조는 또한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난 자가 있으면 시기하여 제거해버렸다. 조조가 한중 땅을 놓고 유비와 대치하며 진퇴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을 때, 닭요리를 보고 밤늦게 암호를 정하러 온 하후돈에게 계륵(닭갈비)으로 암호를 정해주었다. 암호를 전해들은 부하장수 양수는 자기를 따르는 병사들에게 짐을 꾸리고 돌아갈 채비를 하게 했다. 하후돈이 놀라 양수에게 묻자, 닭갈비는 먹자니 살점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진격해도 이길 수 없고 그렇다고 여길 머물러 있어도 이익이 없으므로, 내일 위왕(조조)이 회군할 것이라고 했고 하후돈이 감탄하여 짐을 꾸렸다. 그러자 영채들의 모든 장수가 돌아갈 채비를 했다.
조조는 이 사실을 알고 군기를 문란시켰다는 이유로 양수를 처형시켰다. 그런데 사실 양수는 이전에도 몇 차례나 조조의 속마음을 읽거나 조조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조조는 전부터 양수를 미워하고 있다가 계륵사건을 명분으로 양수를 없애버린 것이다.
4. 실리적이고 실용주의적임
조조는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하는 일에 인색하고, 개인의 감정보다 일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① 도덕보다 능력을 중시함
조조는 덕이 아니라 무력으로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인재를 구할 때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능력만 뛰어나면 상관하지 않았고, 과거에 적이었어도 능력이 뛰어나면 인재로 등용했다. 오직 재능만을 인재기용의 기준으로 삼은 조조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 붙잡힌 위종과 필모, 장수 권위까지 죽게 만들었던 장소, 격문을 써서 조조는 물론 조조의 조상까지 욕보인 진림 같은 사람도 기용하였다.
조조는 공허한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 합리주의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성격이 조조가 강력한 무술스타인 여포나 군벌 중 큰 세력을 자랑했던 원소를 무너뜨리고 화북지방을 통일함으로써 후한의 승상으로 위공이 되고 위왕이 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②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함
한나라 황제가 동탁에 얹혀 있다가 동탁이 죽고 전란에 휩싸이자 유랑생활을 하게 되어 조정이란 것도 이름뿐이었다. 조조가 천자를 모시겠다고 하자, 궁핍했던 천자와 조정은 환영했다. 천자가 조조에게 대장군이란 벼슬을 내리고, 원소에게는 태위라는 벼슬을 내렸다. 원소가 조조보다 벼슬이 낮다고 받지 않자 조조가 대장군을 양보했다. 이는 명분보다 실리를 취하는 조조의 성격에서 나온 발상이다.
조조가 천자를 모시고 근거지인 허창으로 가니, 모든 명령이 천자와 조정의 이름으로 나가게 되었다. 따라서 조조가 조정이 되어 다른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었다. 실권이 없는 천자지만 그 이름이 갖는 상징적인 가치를 조조가 재빨리 간파한 것이다.
(참고문헌) 조성민, 삼국지에서 내 성격을 찾다(제2쇄), 박영사, 20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