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쪽 팔리지 않게!
예전에 유행했던 에피소드 하나.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 탄 딸이 엄마를 향해 외쳤다. “엄마! 빨리 와. 문
닫혀!” 엄마는 잰걸음으로 딸을 향해 돌진.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엄마! 괜찮아?” 딸이 묻자, 엄마는 씩씩대며 말했다. “아픈 게 문제야? 쪽 팔린 게 문제지!”

▲ ‘또 오해영’ <tvN 캡쳐>
‘또 오해영’을 본 적이 있는가?
최근 tvN 월화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한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또 오해영’. 극중 여주인공인 서현진(오해영 분)이 화장실 변기 위에 가부좌를 틀고 수도하듯 마인드컨트롤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나는 쪽 팔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쪽 팔려 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건 자랑스러운 겁니다.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개뿔, 망신, 개망신…..."
에릭(박도영
분)에게 마음을 들켜버려 자랑스러운(?)듯 눈물을 머금고
있는 서현진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누구나 쪽 팔렸던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단 한번도 쪽 팔렸던 적이 없다고 한다면, 쪽 팔렸던
생각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쪽 팔린 감정이 올라오기에 쪽 팔린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내면의 방어기제를 발동!
결국 또 쪽 팔리게 될 것이다. ‘쪽 팔리다’라는
말은 사람의 얼굴을 속되게 표현한 ‘쪽’과 ‘팔다’의 피동형인 ‘팔리다’의 합성어다. ‘쪽 팔리다’는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는 말의 속어로 주로 부끄럽거나
창피할 때 쓰인다.
창피함 + 집착 = 수치심
창피함과 수치심은 다르다. <취약성의 힘>,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강연으로 TED 역사상
최고의 강연자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브레네 브라운. 그녀의 책<마음가면>이 이번 달 출간됐다. 그녀는 창피함과 수치심의 차이점에 대해
‘수치심이란 나의 어떤 결함 때문에 내가 사랑과 소속감을 느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매우 고통스러운
감정을 말한다. 반면 창피함은 순간적인 감정이기에 나중에는 우습게 여겨지기도 한다. 창피함의 징표는 내가 창피한 행동을 했지만 그것이 나에게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기에 얼굴을 잠깐
붉히고 만다. 창피한 감정은 우리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라고 설명했다.
나 또한 수치심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세웠다. ‘수치심은 창피한 경험의 집착으로 생긴, 나를 하찮게 만드는 에너지
뱀파이어다.’ 우리는 한 순간 생겼다가 유유히 흘러가는 감정들에 끈적끈적한 속성을 지닌 부정적인 생각들을
접착시켜 나라는 존재의 근원을 뿌리째 흔들며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수치심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 라파엘로, 아담과 이브 <구글 이미지 캡쳐>
가장 원초적인 감정, 수치심
수치심을 선악과를 따먹고 느낀 감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서에 보면,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뱀에 꼬임에
넘어가 결국 따 먹는 사건이 나온다. 이로 인한 벌은 가혹했다. 아담은
음식을 얻기 위해 평생 땀을 흘리는 근로자가 되었으며, 하와는 해산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 임산부의 삶을
경험해야 하며, 영원히 살 수 있던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선악과를 따 먹고 여호와가 아담을 불렀을 때 아담은 말한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수치심은 죄책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점은 ‘나는 나쁜 사람이다’와
‘내가 나쁜 짓을 했다’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수치심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여기서 죄책감은 ‘나쁜 짓을
하면 안되겠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지만 수치심은 ‘나=나쁜 사람’으로 스스로 규정지어버리기에 우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숨기곤
한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타인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수치심(羞恥心)이다.
그들의 낯짝이 두꺼운 이유
여기서 수치심의 감정을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자. 보편 타당하게 수치심이 생겨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다. 누가 봐도 쪽 팔려야 할 상황임에도 얼굴(쪽)이 두꺼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경우를 일컫는다. 우리는 가끔 매스컴에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을 해놓고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른 채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게 될 때 이런 말을 한다. “어쩜 저렇게 낯짝이 두꺼울 수가 있지?
양심도 없네!” 그럴 수 밖에. 인간은 양심이 없으면 ‘제부끄러움’을 모르고,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면 ‘남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길목에서 시인 윤동주처럼 과거에 부끄러웠던 일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할 수 있을까?

▲ 영화 '동주' <네이버 영화 캡쳐>
영화 ‘동주’에서 청년 동주는 마음 속 멘토인 정지용을 만나게 된다. 정지용은 말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게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거지."
멘토의 말씀을 허투루 듣지 않았을까? 시인 윤동주를 느껴본다. 영화 속 '동주'는 나에게 부끄러운 것, 감추고 싶은 것들을 드러내라
한다. 이것들을 내 삶의 동력으로 만들어 더욱 당당하게 나아가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고 한다. 사랑.
그래 사랑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용기와
연민.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향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생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와 힘. 어쩌면 신은 인간에게 깨달음이라는 고귀한 열매를 주기 위해 수치심이라는 고통의
뿌리를 경험하도록 허락한 것은 아닐까?
바람에 나부끼지 않을 ‘텅 빈 충만’
곧 본격적인 휴가와 바캉스가 시작된다.
바캉스(vacance)는 프랑스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되었으며 ‘~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의미의 접두사 va-에서 'vacation(휴가)',‘vacant(비어있는)’, ‘vacuum(진공)’등의 단어가 파생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불교용어에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이 있다. ‘텅
빈 충만’, 텅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
앞서 선악과를 따 먹고 숨어버린 아담의 모습을 텅 빈 마음으로 감응해보자. 어떠한가? 괜스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벌거벗음에 수치심이
발동한 순간, 무화과 나뭇잎으로 중요부위를 가린 아담과 하와의 모습!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보일 듯 말 듯 나풀거리는, 인류 최초의 팬티, ‘무화과 잎사귀 팬티’. 결국 이를 불쌍히 여긴 여호와의 사랑과 연민(compassion)이 인류 두 번째 팬티, ‘양 가죽팬티’를 탄생시켰다. 이제는 더 이상 바람에 나부끼지 않는다.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도 된다. 내 자신이 벗었음에 대한 수치심을
허용할만한 근원적인 이유가 사라졌다. 무엇을 망설이나? 고통은 좀 쓰지만 열매는 참 달다.
너무 멀리 갔나? 이제 에덴동산을 떠나
현실세계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첫째, ‘후안무치’를 경계하자. 둘째, 함부로
쪽 팔려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자. 셋째,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존재만으로 온전함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올해 바캉스(Vacance)는
‘텅 빈 충만’을 느끼며 충분한 휴식을 누려보자.
글. 감정경영연구원 양내윤 원장
첫댓글 좋은글
묻혔네요
소풍사진에 묻혔네요!
시원한 여름나소서
깊이 있는 글.....고맙습니다. 모든 것은 뜻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뜻을 지키면 경계도,쪽도, 불완전도,휴식도....문제가 되지 않겠죠? 뜻을 어겼으니... 수치심이....
히햐. 아주 맛있습니다. 무척 반갑고요.
중후하되 무겁지 않게, 그리고 재밌게 읽히는 글.
양내윤 멘토님의 글이 갖는 힘이라 여겨집니다.
Have a joyful vacance all you !!!
감사합니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감성을 개발하여야 되겠군요!^^
감정노동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신만큼 양내윤부회장님의 깊은 사색이 느껴집니다. 쉬운 글은 그 내용을 통달한 사람만이 쓸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