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삶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 우리의 사유(思惟)를 잃다
-《도둑맞은 집중력》(외)을 읽고
하인혜
집중력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방법이 있을까?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최근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조차 버거워지면서 스스로의 문제라고 여겼던 집중력 부족이 사실은 시대적 현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스마트폰 알림에 시선을 빼앗기고, 불필요한 뉴스와 광고를 확인하며 시간을 낭비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리의 책은 이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력 부족으로 돌리지 않고, 구조적·환경적 요인에서 찾아간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이 책은 우리의 집중력이 단순히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 조직적으로 잠식되고 있음을 분석한다. 특히 하라는 ‘주의력 경제’라는 개념을 통해 기술 기업이 사용자들의 시간을 상품화하고, 중독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유도한다고 비판한다. 알고리즘이 우리로 하여금 화면을 떠나지 못하도록 설계된 과정은 단순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리는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점점 더 피상적이고 산만하게 만들며,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침해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하리가 지적한 디지털 시스템의 영향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하루를 시작하며 스마트폰을 열어보는 순간, 계획했던 많은 것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SNS 피드의 끝없는 스크롤, 끊임없이 권장되는 동영상은 나를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경험은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리는 멀티태스킹과 정보 과부하가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멀티태스킹은 효율적이라는 환상을 주지만,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한 번에 하나의 작업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점에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다.
책은 수면 부족 문제도 심각하게 다룬다. 하리는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수면이 현대인의 생활에서 얼마나 간과되고 있는지를 지적하며, 기술 중독이 수면 질까지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단순히 시력을 저하하는 것을 넘어, 깊은 수면에 필요한 멜라토닌의 분비를 방해한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청소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면부족은 학습 능력의 저하, 감정 조절 능력의 약화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함께 읽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테크노퓨달리즘》은 기술 발전의 경제적 측면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바루파키스는 기술 기업들이 전통적인 시장경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봉건적 지배 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 기업이 사용자 데이터를 착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부를 독점하면서 디지털 봉건 영주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바루파키스의 주장은 하리가 제시한 미시적 차원의 문제를 거시적 맥락으로 확대해 보여준다.
특히 바루파키스는 플랫폼 경제의 부작용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오늘날 기술 기업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며, 개인의 데이터가 어떻게 상품화되고ㅠ있는지 드러낸다. 하리가 개인의 삶과 정신적 영역에서 집중력 문제를 분석했다면, 바루파키스는 경제적 관점에서 기술 기업의 권력 집중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두 관점은 서로 보완적이며, 기술 발전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두 책을 읽으며 나는 과거 제레미 리프킨이 《엔트로피》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리프킨은 정보 과잉이 정신적 피로를 유발하고, 인간의 사고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리프킨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무수한 정보를 접하지만, 이를 깊이 이해하거나 활용하지 못한 채 피로감과 스트레스만 쌓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비판적 사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모든 논의를 통해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디지털 시대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이나 기업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리는 디지털 디톡스, 수면 관리 등 개인 차원의 실천을 제안하지만, 이는 가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바루파키스의 주장처럼,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기술 기업의 독점적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도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다시 깊이 생각할 수 있을까?’ 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앗아갔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기술의 노예가 되어 사고의 깊이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변화와 사회적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나부터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하루 한 시간은 독서와 사색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작은 변화지만, 이런 노력이 쌓여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디지털 시대의 삶은 한 사람의 사유만으로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변화가 모여 만들어질 더 큰 사회적 변화는, 분명 우리 앞에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기술의 도구가 아닌 주체로서 살아가야 한다.
*참고도서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김영사, 2023
아니스 바루파키스, 《테크노퓨달리즘》, 21세기북스, 2024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두산동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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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