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조광조 (靜庵 趙光祖, 1482~1519)
도교철학의 대명사 소격서(제천단 도교 제사권)는
진작에 폐지되었어야 할 도교풍습이었다.
기호사림파 조광조[한성]는
영남 신진사림파 김굉필의 제자로 김굉필이 함경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조광조의 부친이
함경도 지방관으로 발령을 받아가게 되자 김굉필을 찾아가 제자가 되어
도학 정치를 펼쳐 이상주의적 성리학 국가를 추구한 인물이다.
영남 신진사림파와 기호사림파의 철학은 분명히 다르다.
영남사림파의 도학정치는 도교철학에 치우친 도학정치[道學政治]를 말한다.
이색의 영향을 받아 정도전을 거쳐 이언적, 이황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선조 때 도학에 약간 치우친 양광도 동인 주리학파[정이학 신봉학파]
북인 [대북/소북]의 도교철학, 장자철학, 제자백가 철학 숭상학파,
소북을 잇는 남인 윤휴학파/허목학파의 주리철학+도교철학, 제자백가 철학 융합정치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기호 사림파의 도학정치[道學政治]는 미신을 타파하고 소격서를 폐지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인 이상주의적 성리학국가를 말한다.
서로 추구하는 이상주의적 성리학 국가가 달랐다.
[주자학 안에 있는 정이학, 정주학, 예학 등 고대문서를 제대로 연구하여
합리적으로 밝혀진 것만을 수용하자는 것]-한마디로 주역/역술, 사술 [사주, 관상], 도술 [도참술]
풍수지리, 예언, 예언서, 점, 복, 운세, 작명, 토정비결, 주술, 저주의식 등 도교풍습을 없애고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만을 수용하자는 정도철학]
중종, 인종, 명종시기에 공신세력은 주기철학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이었고,
사림파 역시 서경덕의 주기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시기였다.
서경덕의 제자들만 배워가며 성종, 중종시대에 개성에서 익혀가던 때였다.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그 이치를 캐내어 알게 됨을 말하는데
과학, 공학의 발전을 말한다.
격물은 과학, 공학을 뜻하는 말로 세종이 격물을 숭상하여 장영실 등 많은 과학자를 배출시키고
언문을 창제하여 다수의 언문학자들을 만들어낸 바가 있었다.
세종 이후에 격물이 급속도로 퇴보해가고 있었다.
조광조가 추구한 도학정치는 도교철학을 숭상하는 조선이 아니라, 과학, 공학을 발전시키고
잘못된 성리학 학문의 기본을 바로잡고 [斯文], 사람이 주체 [인주/人主]가 되어
제대로 된 성리학 국가를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고려시대, 고려말 혼란과 조선전기, 중기까지도
국민들은 샤머니즘, 토테미즘, 도교니즘, 기복불교 신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리학의 학문를 제대로 연구하여 학문의 기본질서를 바로잡아 격물의 이치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발전시켜 보자는 사상이었다.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주체적으로 주인이 되어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밝혀내고
완전한 성리학 국가를 만들어보자고 개혁정치를 펼치려 하였던 것이다.
이이는 조광조에 대해 평하기를 급진 개혁파로 분류하였고,
조광조의 기묘사화의 영향을 받아 서경덕, 기대승에 이어 후학 양성에만 치중한다.
정계에 진출했다가도 오래 있지 않고 바로 물러나는 것은 조광조의 기묘사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노자의 도교철학은 형이상학적인 학문으로
도교풍습으로는 역경에 나오는 주역/역술을 시작으로 하여
도술 [도참설], 사술 [사주, 관상], 예언, 예언서, 풍수지리, 토정비결, 주술, 저주의식 등의 풍습이
도학이었다.
이런 학문은 형이상학적인 학문이었으므로 실체가 없고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전혀없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성리학에 나오는 국가발전과 국민발전에 필요한 학문만 남기고,
형이상학적인 학문을 퇴출시키는 일과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연구하고 그 뿌리를 밝혀
과학적 사고방식인 형이하학적인 학문으로 바꿔보자고 주장한 것이 조광조의 개혁정치의 근간이다.
이게 같은 사림파라 할지라도 기호사림파와 영남사림파의 학문이 다른 이유이다.
조광조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개혁정치를 펼쳐 향약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려 했다는 것과
과거제 현량과를 설치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음서제도로 들어오는 훈구세력을
견제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중종반정의 공신세력을 축출하고 성리학에서 꼭 필요한 학문만 남기는 일과
격물 [과학, 공학]을 발전시켜 새로운 성리학 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개혁정치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격물치지 정책은 성리학의 근본을 정확하게 밝혀 성리학에서 형이상학적인 도교풍습을 몰아내고
제대로된 성리학만 남기고 퇴출시키려 하였으며, 격물 [과학, 공학]도 발전시키려는 정책이었다.
이게 조광조가 생각하는 이상주의적 성리학국가였다.
같은 사림파라 할지라도 서로 추구하는 머리속이 전혀 달랐다.
성리학 안에는 삼경인 시경, 서경, 역경이있는데 역경에서 주역/역술이 나온다.
역경 [주역/역술]은 노자의 도교철학에서 나온 학문으로 형이상학적 학문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역경은 사라져야 할 학문이었다.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중에서도 국가와 국민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만을 남기고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대학[大學]은 순자의 성악설을 기반으로 하여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이어받은 학자들이 편찬한 학문으로
성인들의 말을 배우는 학문이며, 주로 왕이 배워야 할 덕목으로 왕과 고위 신하들에게나
필요한 학문이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거나 백성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었다.
왕의 통치학문 [제왕학]이 바로 대학[大學]이었다.
순자[성악설]는 노자를 잇는 인물로 노자의 도교철학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로 법가사상 [법학]을 창시한 인물이다.
도교철학은 격물치지 [과학, 공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악습이나 다름없었다.
고려, 조선백성들은 도교니즘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도교의 선교는 고구려의 멸망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함.
영양왕 때 양견이 서위의 우문각, 우문호의 황족일족 수백여명을 참살하고 북주왕으로 있다가
수나라를 건국하고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수에 입조하라는 조서를 보내자, 사신의 목을 쳐서 돌려보내
수양견으로 부터 침공하지 않는 국교 정상화 조건으로 선교를 받아들였는데,
고구려인들이 선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여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였음].
도교풍습은 신분제도 [양반, 중인, 평민, 천민], 고대풍속 등 예학 안에 들어가 있는
주자가례, 가례복식, 관의복 복식, 상투, 제사, 제사의례 및 풍습 등 사회문화, 장례제도가
모두 도교철학에서 나온 것으로 공자부터 인정되고 시작되는 성리학 안에서 주인행세를 한 격이었다.
인현왕후 폐출사건 ,의인왕후 저주사건에서도 저주의식과 예언, 예언서가 사용되고,
정명공주, 인목대비 유폐사건, 장희빈 사건에서도 단골로 도교의 예언, 예언서, 토정비결,
주술, 저주의식이 정치에 악용되어 큰 폐혜[幣惠]만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모든 사건에는 동인, 남인이 숭상하였던 도교철학에서 기인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도교의 도학풍습은 고려, 조선사회의 전반에 뿌리가 내려 악습으로 자리잡게 되고
오히려 과학, 공학이라는 격물이 들어갈 자리에 도교풍습이 깊숙히 자리잡았을 뿐이었다.
노장철학, 제자백가 철학이 사회전반에 뿌리가 내린 지나친 도학정치는 조선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도학이란 도교풍습을 인정하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주자가례의 장점으로는 제사상으로 인하여 고려, 조선인에게 흔하게 나타나던
각기병, 야맹증, 구루병, 색맹증, 색약 등 비타민 부족을 해결해주고, 사전에 질병을 예방시켜 주는
순기능이 있었다."
특히 각기병 [지각이상/비타민 B1],
야맹증[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서 못보거나, 밤눈이 어두운 현상, 비타민A]
허리가 굽는 구루병 [뼈, 다리가 휘거나 허리가 굽는 병, 비타민D, 칼슘부족]은 청소년, 노인 등에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이었다.
선조 초기 서인정권 때 주기학파가 위의 병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 풍속을 일시 장려한 것인데,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는 바람에 도교풍습에 치우친
서인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 [노론/정주학 신봉학파/송익필 학파>송시열로 이어짐],
양광도 동인[이언적 주리학파/정이학 신봉학파/이황학파>이산해, 류성룡, 김성일, 김성주],
북인 [대북/노자의 도교철학, 장자철학, 제자백가(백이숙제) 신봉학파. 조식학파/합천,산청>정인홍, 이이첨/선산],
남인 [주리철학+도교의 노장철학, 제자백가 철학 융합학파/청남학파/청도, 청송, 청풍/윤휴학파, 허목학파
>홍성의 남인 영수 채제공으로 이어짐],
남인 탁남학파 [주리철학 원리주의 학파/허적학파/진주, 마산, 창원, 진해, 거제>유영경, 유희분>허적학파]
정권에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기호사림파 조광조가 추구하는 도학정치는
성리학의 이치를 제대로 연구하고 합리적으로 밝혀진 사실만을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퇴출시켜 과학, 공학이라는 격물을 연구하여 발전시켜 가며
완전한 성리학 국가로 만들어 보자고 모든 것을 개혁시키려 한 정치를 말한다.
조광조의 급진 개혁사상은 중종반정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공신 훈구파를 공격하였다.
중종반정으로 집권한 훈구 공신파 76명을 공훈에서 삭제하자는 "공신 위훈 삭제사건"을 일으키자,
공신 세력 남곤 [밀양], 심정 [평북 강서], 홍경주 [한성] 등은 거짓 소문을 퍼트려 공작하고
대궐 후문 나뭇가지에다가 "주초위왕(走肖爲王)=조씨가 왕이된다"라는 정치공작을 하여
조광조 등 사림파가 모두 하옥되고 유배갔다가 조광조를 비롯한 기호사림파 70명이
모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도교철학은 중상모략, 권모술수, 교언영색, 감언이설로 정치공작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교풍습은 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이었다.
고려, 조선에서의 대학[大學]은 왕의 통치학이 아니라 신하의 통치학이나 다름없었다.
대학, 대학지연의, 삼국지, 삼국지연의 등은 왕이되는 통치학이며 왕이되거나 신하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정치공작으로 악용되어 권력쟁탈, 반정, 세도정치, 내란, 전쟁 등 국가가 혼란해지는 학문일 뿐이었다.
기호사림파에 이어 주기학파에 이르러서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어 맹자의 심성론, 천성설, 성선설만을 가르쳐 "이성을 정립"시키고
"인격완성"을 통해 조선을 개화하여 근대화시키려는 근대 이성철학파가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