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며칠 전 TV에 나오는 동물원의 모습을 보다가 불현 듯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교도소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철창 뒤에서 멀뚱멀뚱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원숭이, 그리고 그 원숭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창살 너머의 사람들. 하루 3번씩 때가 되면 밥을 공급받고 일정시간마다 ‘점검’을 받으며 수시로 ‘순시’의 대상이 되는 재소자들의 처지가 동물원에서 사육받는 동물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곳에선 밤9시가 되면 애국가와 함께 방송이 종료되면서 취침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아침 6시 반에는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교정’과 ‘사육’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이곳만의 질서를 만나게 됩니다. 예컨대 평일 낮에 방안에서 누워있는 것은 교도관의 제지를 받는 행동입니다. 사실 이곳의 규칙을 보면 “~하면 안된다”는 부정형 문장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저는 방 동료들이 누워서 낮잠을 잘 때 조용한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하긴 합니다만, 이와는 별개로 종종 지나가던 교도관들이 쇠창살 너머에서 저희를 향해 누워있지 말라고 한 마디씩 할 때마다 울컥 올라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명령’을 내리는 교도관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을 ‘교정’하는 재소자. 막상 이 장면에 직접 처해보고 나니 (이런 비교를 해서 미안하지만) 제가 동물원의 동물이 된 듯한 생각에 짜증과 분노가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죠. 물론 모든 교도관들이 그런 규율을 원칙대로 수행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어린 학생을 혼내는 듯한 말투와 표정을 가진 교도관을 보면 실제로 제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혼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표와 규율을 통해 사회에 순응하는 노동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관으로서 학교와 감옥이 갖는 유사성을 이곳에서 몸소 여실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린왕자>소설을 보면 관계란 서로를 길들이는 것 이라고 하는데, 시스템 상 이미 길들이는 자와 길들여지는 자가 일방적으로 정해진 공간에서 제가 선택한 방식은, 교도관들에게 인사를 꼬박 하는 것입니다. 복도를 지나며 방 안을 쓰윽 둘러보는 교도관에게든 거실 바깥에서 걸어가다 마주치는 교도관에게든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인사가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에서 공손함의 표시로 하는 인사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함으로써 내가 한낱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당신들처럼 감정과 욕구를 가진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교도관들이 가진 인간성을 자극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당신들을 인간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만큼 저 역시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애초에 저로 하여금 총을 들 수 없게 만들었던 제 양심, 그리고 이에 기반한 삶의 지향을 여기에서도 견지하고픈 간절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감시와 통제, 이를 지탱하는 ‘불신’의 시스템 속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옥에서의 시간들을 배움과 성장의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이제 남는 것은 무엇을 배울지 무엇을 배우지 말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취사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저의 가치관이 개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저의 판단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편협해지는 것은 아닌지, 타인에게 엄격하면서 스스로에게 관대한 것은 아닌지 계속 돌아보게 됩니다. 제 시야가 좁아진 걸 확인할 때마다 제 선택을 지지하고 격려해주셨던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여유를 찾으려는 심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 유대에 대한 기대를 철회하려는 제 마음이 보일 때의 무기력함과 서글픈 감정을 견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1년 6개월이라도 징역의 시간동안 제가 ‘교정’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5월입니다. 제게 5월은 작년에 초등학교로 교생을 나가서 만났던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며 충만해졌던 사랑의 기운들을 다시금 불러와봐야겠습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지만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번 병역거부자의 날을 앞두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병역거부권 실현 촉구를 위한 1인시위가 매일 있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군인이 될지 말지를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젊은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루 빨리 살상을 거부할 권리가 인정이 되었으며 합니다.
2011. 5. 1.
영등포교도소에서 날맹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