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행(四川行)29
“니기미....겨우 막았네...”
“글게요, 성님 대단하네요...”
“............”
상귀와 하귀는 천성을 속일 수는 없는지 그 와중에서 떨리는 팔을 주무르
며 나불 댔다. 고죽노인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의 일장 뒤에 무정이 있
었다. 어느덧 여기까지 밀려 온 그들이었다.
“어이 노인네 뭐라 말 좀 하지?”
“............”
상귀는 고죽노인을 불렀다. 허나 노인은 말이 없었다. 그는 이상한 생각
에 노인의 앞으로 돌아갔다.
“ ! ”
상귀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이상한 느낌에 하귀도 앞으로 달려갔다.
“노...노인네!”
하귀의 입에서 경호성이 터졌다. 고죽노인의 앞저고리는 온통 빨간 색이었다. 그위로 가슴을 지나 목을 타고 턱선을 거쳐 그의 아랫입술까지 이어져 있었다. 엄청난 충격의 내력을 그대로 받아낸 고죽노인의 기혈이 역혈해 버린 것이었다.
“니...니미...쓰벌.....이...이....미련 곰퉁이같은 노인네야! 안되면 뒤로 빠져야 될 것 아냐!....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상귀의 눈에 고죽노인의 모습이 잘 보이질 않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잘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그의 상세는 엄정했
다. 그는 흐르는 눈물과 빗물을 연신 소매로 닦아내고 있었다.
“아...안되겠어...영감...영감...눈떠봐! 당장 저 뒤로 가자구요!”
하귀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고죽노인의 신형을 잡아 끌었다. 고죽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질질 끌려 갔다. 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쑤시고 있었다. 그가 가진 내력을 모두 토해낸 것이었다.
하귀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이자 큰 형같은 사람이었다. 맨날 뭐라 해도 그것이 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항상 툴툴거렸지만 고맙게 여기고 있었던 그였다.
힘겨운 세상, 상귀와 둘이 살면 되는 일이지만 고죽노인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크읍.....영감.....눈 좀 떠...... 크읍.......에미랄...무지하게 가볍네....
크읍”
코를 훌쩍거리며 하귀는 무정의 뒤에 고죽노인을 내려다 놓았다. 깡마른 노인네였다. 먹는 것조차 항상 자신에게 더 주던 노인이었다. 그는 일어났다. 더 이상 보면 눈물이 샘솟을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의 신형이 돌려졌다. 상귀의 옆에 장창을 꼬나쥐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니미 . 쓰벌, 이 씁새들아. 와.....오라고......어디 한번 해보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상귀였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와......어서와.....끝장을 보자 이 쉐이 들아. 이 치사하고 야비한 쉐이들아!”
장창을 흔들어 대는 하귀의 목소리가 빗속을 울렸다. 그들의 눈에서는 흐르는 빗물처럼 눈물이 샘솟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은색갑주를 입은 사람을 필두로 한떼의 인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대로의 속도에 같은 진영이었다.
“미.....안.....하..네.......무....대주.....”
끊어질 듯한 여린 목소리가 무정의 귀에 들렸다. 고죽노인이었다. 무정의 가슴에서 불길이 일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그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들이 있었다. 친구이자 동료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이자리에만 셋이나 엄연히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의 동료를 희생시킬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싫어 전장에 혼자 온 그였기에.....
“끄으......으으으...”
무정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가 모든 힘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더 이상 이대로 놔 둘 수는 없었다. 그의 발밑에 기마대의 땅울림 소리가 들렸다. 다시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최후의 힘을 모았다. 그리고는 폭발했다.
“고오오오오오”
이장여에 달하는 공간에 묵기가 퍼져 나갔다. 상귀와 하귀는 뭉클한 묵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대장의 묵기였다. 그들은 눈을 돌렸다.
“대장!”
상귀의 경호성이 터져나왔다. 대장의 상태가 이상했다. 몸이 나아서 그런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 고통에 온몸을 떨고 있는 무정의 모습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악!”
무정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묵기들이 무정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정의 두 눈은 꼬옥 감겨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상귀의 귀에 들렸다. 그들은 급히 신형을 돌려 창창을 올렸다. 어느새 십장 안으로 들어 와 있었다.
료직은 거검을 들었다. 그의 모든 내력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오장 앞에 떠꺼머리 거지같은 청년 둘이 장창을 들고 있었다. 저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자신의 갑주는 백련정강이었다. 저 정도의 장창날따위는 소용없었다.
그는 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백광이 빗속을 뚫고 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이었다.
“스슷!”
이상한 소리와 함께 거지같은 청년들 앞에 육척이 넘는 크기의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참마도가 하늘 높이 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놈이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무정의 눈이 떠졌다. 눈의 핏줄이 모두 터져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붉은 혈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갔다. 그는 신형을 옮겼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거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상귀의 앞에 가 섰다. 그리고는 초우를 들었다. 온몸의 기를 초우에게 보냈다. 초우의 도끝에 이장의 검강이 생겨 나갔다. 무정은 도를 내렸다. 온 힘을 다해서......
“꽈과과과과광~~~~~”
엄청난 폭팔음이 연속적으로 들렸다. 상귀,하귀는 귀를 막고 엎드렸다. 너
무나도 강한 음향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무정은 도를 내렸다. 그러자 그의 앞으로 오장정도의 길이까지 그 영향력이 미쳤다. 눈앞의 은색기갑을 입은 사내는 이미 뒤로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초우를 들었다. 힘이 있을 때, 그는 온힘을 다해 초우를 휘둘러 댄 것이었다.
대여섯 번쯤 휘둘렀을까......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정도면........... 무정의 몸에서 힘이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모든 힘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무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만큼이면 상귀와 하귀는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만큼 했으면.............
그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상귀는 눈을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떴다. 그들의 눈앞에 좌우로 십여 장, 앞으로 오,육장의 대지가 얕게 파여 깍여 나간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 나가 눈을 들어 기마병을 찾았다. ...... 아무도 없었다. 기마병들은 말과 함께 이미 삼장 뒤에 즈음에 널부러져 있었다.
“대.....대장.....”
문득 하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귀는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퍼붓는 빗줄기 속에 대장은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지긋이 감겨있었다. 왼손의 갑주는 아직도 탄탄해 보였다. 그의 긴 머리가 대장의 울끈불끈한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대장의 오른손에서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스륵.....콱!”
대장의 참마도 였다. 어떤 순간에서도 놓지 않았던 참마도 였다. 헌데 지금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더니 땅에 박혔다. 대장이........병기를 놓쳤다.....
“이...씨.....대장!...대...대~~장~~~~!”
상귀의 외침이 대지를 둘러싸고 흘러 나갔다. 하귀는 대장의 얼굴을 감싸쥐고 있었다. 무정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하귀는 그런 대장의 얼굴을 감싸 쥐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엉....엉....대장......엉....”
어느덧 하귀가 주저앉아 울어대고 있었다. 고죽노인에 이어서 대장까지 죽게 될 것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그가 용서 하지 못한다. 그는 목 놓
아 울었다. 상귀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어디선가 은은히 뇌성이 울렸다. 서서히 상귀의 어깨가 들먹여지기 시작했다. 굳건히 서있던 그의 신형마저도, 무릎이 ...........젖은 대지에 틀어박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