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조 서평
시적 형상화形象化를 통한 시조의 서정적抒情的 동일성同一性
이성호
...전략
1)
낡은 편지 꺼내들고 침침한 눈 닦는다
이번 작전 끝나면 통일이고 평화라던
전선의 마지막 편지 읽어도 다 못 읽은
햇살은 물에 젖고 눈물자국 말라간다
어미의 눈시울에 얹혀 있는 내 아들아
코리아 그 먼 곳 향해 굽은 등을 세운다
2)
살 떨리는 충성 앞에 눈물도 얼어붙어
턱까지 차오르는 희디흰 눈 이불 속
잠들면 돌아가겠어요, 식탁 환한 곳으로
핏물이 흥건한 땅 황홀한 슬픔 속을
계절은 식어가고 메아리는 흩어져요
어머니 등불을 켜요, 주름살이 보여요
- 김덕남 「부산을 향하여 Turn Toward Busan 」전문 (주석은 필자가 생략했음)
「달팽이」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진술 방법이 직접적이라고 한다면, 부산을 향하여는 간접적이다.
이 작품은 각주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전경화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전 세계인이 6.25 전란 중 전사한 참전용사를 추모하 여 묵념하는 행사에 대한 해석이요, 그 정신의 본질을 꿰뚫어 사랑과 희생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술 중심의 평면적 표현에 그칠 가능성이 많은 제재를 시인의 시적 역량의 깊이로 담금질하여 입체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수사적 측면에서 표현의 특기할 사항 중 하나는 작품에 나타난 화자의 심리적 거리다. 이 작품의 도입부인 1)의 첫 수에서는 어머니의 눈을 통한 그 거리가 객관적으로 다소 떨어져 있지만, 본문에 들어 갈수록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좁혀지고, 2)에서는 심리적 거리가 시인 자신이 화자가 되어 완전히 일치되고 있다.
시에서 심리적 거리는 시인이 시적 대상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거리가 멀어도 곤란하지만, 시인의 대상에 대 한 본질의 정확한 파악과 진정성의 깊이에 따라 그것이 주는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이는 시인의 감수성의 깊이와 지적 통찰력에 기인한다. 본질의 미적 감지 상태가 실제와 일치할 때, 대상 속에 감춰진 비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2) 에서와 같이 극적으로 반전되어 대상에 대한 시인의 진정성의 깊 이가 과감 없이 드러나 그만큼 호소력을 자아내게 한다. "돌아가겠어요”, “등불을 켜요”라고 부르짖는 그 모습은 처절하여 더없는 인간의 본심을 자극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노대바람 등에 업고 대놓고 달려드는
한눈팔지 못하는 최전방 전투현장
단단히 스크럼을 짠
방어선 앞에 섰다
애초부터 휴전 없는 전쟁을 바라보며
전설 속 불가사의한 아틀란티스 떠올린다
사라진 대륙에 얹혀 수장된 병사들을
생각할 틈도 없이 또 퍼붓는 화살과 창
산더미로 달려드는
아, 아 인해전술
전쟁은 죽음뿐이다!
저 피의, 붉은 비린내
-변현상 「테트라포드 Tetrapod」 전문
테트라포드는 방파제 또는 방조제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쌓아둔 네 개의 다리 달린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바다의 경계선이 되어 전신을 파 도에 묻고 부딪치고 얽혀서 온몸을 던져 차단하는 세계의 마지막 보루다.
이 작품은 드러난 비유의 텍스트간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 현장의 배경이나 병사들의 죽음을 형상화한 이미지 구성은 치열하고 폭발적이다. 냉엄한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는 시인의 어조가 사뭇 살벌하기까지 한다.
전사는 고투한다. 죽음을 불사하고 혁신의 대열에 앞장섰다. 서정적 질서의 파괴, 비합리적 세계에 대한 도전, 부정성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반미메시스적인 태도는 우리 주변에 산재한 극복되어야 할 삶의 가치로서 모방模倣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환유적 사유 구조다. 웬만한 나무의 뿌리까지 뽑히는 노대바람에서 시작하여 최전방 전투현장, 방어선, 플라톤이 언급한 '잃어버린 제국' 대서양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에 이르기까지 붉은 피의 비린내로 진동하는 모습은 시의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숨도 돌릴 수 없도록 휘몰아 간다.
이 작품의 주된 시적 장치는 풍자(allegory)적인 비판이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투사로서의 화자는 이중구조를 바탕에 깔고 드러내고 자 하는 속뜻을 감추면서 사회적 역리에 대한 척결에 목숨을 건다. 소외 계층의 삶의 리얼리티, 온갖 부정과 불의에 저항하는 화자의 후려치는 매질은 극한 상황에 대한 처방으로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마저 준다.
하략...
- 《부산시조》 2018. 하반기호 (통권 제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