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父情)의 역
대학에 낙방하고, 하릴없이 집에서 구들장 신세를 지고 있었다.
추운 어느 겨울날, 아버지는 출근길에 내방 문을 열고 아무 말 없이 하얀 서류봉투를 툭 던지고 나가셨다.
발가락을 꼬무락거려 손으로 가져와 펼쳐보았다. 서울에 있는 재수학원 원서와 기차표가 들어있었다. 밖에선 어머니의 잔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12시 45분 차. 무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딱히 시간 때울 곳도 없고 해서 광장을 배회했다. 저 멀리 대합실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그곳을 향해 걸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고삐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엔 싸움 구경이 제격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관중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아부지 저 대학 안 갈래유, 돈 있남유? 시골에서 기냥 농사나 질내유, 왜 자꾸 그래유”
“이놈아 대학가야 사람된댜, 내 소팔고, 논팔아서 니 학비델텐께 서울가서 공부나 햐~”
“그 돈 있으면 지금 줘유, 대전서 장사나 하게…, 안간다니깐유”
순간 그의 아버지는 대합실로 오르는 계단에서 바닥으로 곤두 박치며 굴렀다. 아들의 손을 잡아 끌다 놓치면서 뒤로 넘어지며 사고가 난 것이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군중들은 웅성거렸고, 아들은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를 부여안고 울부짖었다.
“아부지 눈 좀 떠봐유, 제가 잘못했어유, 대학 갈께유”
들고 있던 하얀 봉투로 아버지 이마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아들은 사람들을 향해 “우리 아부지 좀 살려 줘유, 119, 119좀 불러줘유” 간절히 읍소했다.
하얀 봉투사이로 튀어나온 서류는 다름 아닌 재수학원 원서였다.
저 멀리서 ‘삐뽀~삐뽀’ 119구급차 출동소리가 들려왔다.
대합실에는 ‘서울행 새마을호 112호 열차가 잠시 후 대전역에 들어옵니다’라는 승무원의 역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들 부자를 둘러싸고 있던 군중의 둥근 대열도 이내 흩어졌다. 그들에 묻혀 플랫홈으로 뛰었다.
헉헉거리며 객차에 올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언가 잡혀 꺼내보고 난 가슴으로 펑펑 눈물을 흘렸다. ‘아들 믿는다. 넌 나의 희망이야. 잘 다녀오거라’라고 적힌 메모지와 1만원짜리 10장이었다.
상경하는 내내 차창 밖을 바라보며 아버지라는 이름을 뇌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