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야사 요녀 유감동
조선시대 쎅스 스켄들이라면 모두 어우동을 떠올릴것이다
허나 어우동 뺨치는 스켄들의 주인공이 한명 더있다
어우동은 성종 때에 터진 스켄들로 얼마전 내가 한번 다룬바 있으며 그때 이미 유감동의 스켄들도 언급한 바 있다
유감동 스켄들은 세종 때 터졌으니 그 방면으로 치면 어우동보다 한 50년 가까이 선배가 된다
당시 50년 차이라면 어우동이 일으킨 스켄들은 아마도 유감동이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
기록을 들춰보면 상당히 흡사한데가 많아서 말이다
둘다 천부적으로 남자를 넘넘 좋아해 신세 조지는 줄 모르고 음행을 일삼았다
둘다 반상과 귀천을 따지지 않고 쓸만하면 덤벼 댔으며 좋다 오는 남자 차지 않고 다 받아 주었다
그래서 고관 대작들두 상당히 연루되여 세상을 들끓게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우동은 현세까지 알려져 중년 나이트 쇼걸들의 단골 메뉴까지 되였는데 유감동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까?
기록에 나타난 숫자로 보면 단연 유감동이 간통한 남자의 숫자가 훨씬 많다
당시 사헌부의 수사기록 수치이니 실제로 누가 많은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뭏든 그럼에도 불구하구 어우동이 우리에게 더 알려진 것은 그녀의 엽색 행각이 더 깊은 정권의 심장부로 들어갔기 때문 일 것이다
기록엔 없지만 최고위층의 관련 사실이 야사로 전한다
그래서 유감동은 유배형을 당했고 어우동은 사형을 당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행여 불까봐...)
3공시절 고관대작들의 쎅스스켄들로 총맞아죽은 정인숙 여인의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너무알믄 다친다는 속담이 여기에도 적용 되나보다
유감동은 신하들의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에두 불구하구 세종임금의 너그러운 배려루 유배형에 그쳤으나 그 천부적인 기질을 고치지 못하구 유배지에서두 엽색행각을 그치지 못한다
사람을 죽인것두 아닌 요부의 기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너그럽게 배려한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가운데 치적이 으뜸이라 제일 훌륭한 임금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호색한 임금으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임금이니 유감동두 살려두지 않았을까
자... 그러면 과연 유감동이라는 여자가 어떤 여잔지 자세히 더듬어 보자
유감동은 지금의 명예 서울시장격인 검한성(劍漢城) 유귀수의 딸로서 평강 현감 최중기에게 시집을 갔으니 어였한 사대부가의 부인이다
남편과 무안군수로 나갔을때 병을 핑계로 서울로 먼저 올라와 남자 밝힘증을 발휘하기 시작하다 들통나서 쫗겨나게된다
쫗겨난건 고기가 물을 만난거다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마음껏 그의 기질이 발휘 되였다
꼬리가 긴게 아니라 끝이 없었는지 하도 소문이 흉흉하여 드디어 스켄들이 터지고만다
하도 기가막힌 사건이라 몸소 세종대왕이 사헌부에 자초지종을 물었단다
이때 벌써 사헌부에서 관계한 남자의 숫자를 헤아릴수 없다고 아뢰었다
여러 고관 대작의 이름이 거명되는데 여기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고 본보기 두사람만 뒤져보자
정효문과 이효랑의 이름이 거명 되는데 무슨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세종대왕은 이들의 관직을 직위 해제하지말고 일단 잡아오라 명한다
그러자 그 유명한 충신 김종서 아뢰길 ....
"정효문은 그의 숙부인 정탁이 먼저 유감동과 간통한 줄 알고도 고의로 간통하였나이다
또 이효랑은 유감동의 남편 최중기의 매부이면서두 간통을 했으니 이 두사람의 행실이 짐승과 같사오니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나이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도데체 어찌 생겨먹은 여인이길래 천륜을 마다하고 그녀의 치마폭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을까?
타임머신 타고 가서 꼭 한번 나두 보고 싶다
간통한 남자들의 대부분 특징이 한두번으루 끝나지 않구 지속적으루 계속해서 간통이 루어졌다
이 사실은 이 여자가 간두 크게 여러명의 남자와 따블 내지 트리플 플레이를 계속 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겉모습도 한목 했겠지만 속이(?) 어찌된 여자인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작은 아버지와 동서맺구 ......
처남의 부인두 안가리고 ......
두눈이 멀어 버린 그 남자들의 사연이 이 여자 속에(?) 있었던게 아닐까?
눈에 뛰는 큰 사례만 들었을 뿐 기록에는 수없이 많은 남자와 사연이 나온다
아뭏든 드러난 남자들은 관직이 직위해제되는자 곤장1 00대 맞는자 죄질이 무거운자는 귀양을 가기도 했다
얼마후 재상의 딸 어리라는 여자가 흡사한 사건을 또 이르키자 사헌부에서는 유감동을 사형시키지 않은 때문에 유사 사건이 재발한다고 세종대왕께 상소를 올린다
그리고 정확히 47년 후 어우동 사건이 다시 발발한다
다음엔 어리 사건이나 다뤄볼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