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설치 문제
20여개월간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포로수용소에 대하여 포로들을 감시하던 한국군과 제주도출신 포로들끼리 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처음 포로로 미군에게 잡혀서 부산 가야 포로수용소에 왔을 때 만 해도 머지않아 제주도 포로수용소가 설치된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되면 고향으로 갈 수 있을 생각하여 내심 좋아하였다.
1950년 8월경 거제리포로수용소 전경(뒤쪽 중앙이 만덕고개임)
그러나 거제도수용소가 시설되면서 나의 기대했던 꿈은 사라졌다.
원래 부산수용소에 수용되었을 때 포로들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또 다른 포로수용소의 장소로 제주도가 적지라고 생각한 것은 유엔군 사령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제주도가 포로수용소로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제주도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서울등지에서 피난민이 수만명이 들어가 있는 것과, 제주도는 물 사정이 나빠서 음료수확보가 어렵고,
제주도는 4.3 사건 등을 겪으면서 형성된 도민들의 좌익사상으로 인하여 육지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이고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포로들은 옹호할 것이라는 것과,
한반도가 북한군에 빼앗길 경우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겨야 하는 문제가 있는 점 등 때문이란 말들이다.
제주도가 위와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포로수용소로서의 적지로 결정이 유보된 후, 다음의 후보지가 거제도가 된것은 거제도는 섬이란 점 때문에 포로들 감시가 쉽고 제주도와는 달리 음료수가 충분한 이유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섬이 작기 때문에 포로들을 감시 감독하는 인원이 적게 소요하게 되니 그에 따른 경비가 또한 적게 든다는 것이었고,
더군다나 섬이 작기 때문에 포로들이 도망갈 우려가 적다는 것과, 포로들을 채소 재배 등 토지를 이용하는데도 또 하나의 좋은 장소라고 여길 수 있는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처음 부산의 가야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을 거제도로 이송하기에도 쉬웠을 뿐만 아니라 계속 불어나는 포로를 수용하는데 시설확장이 또한 쉬웠다는 것이 후보지로 선정되게 된 여러 이유라고 하였다.
▲ 거제도 수용소에는 북한군 13만, 중공군 2만 등 모두 15만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거제도수용소에는 포로들이 환자를 위한 병원도 설치되어 있어서 환자들의 이용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제64 야전병원과 2개의 별관 부속병원은 환자들의 요양소로 이용하였다.
병원침대도 3천여 개나 있는 대규모의 병원이었고, 요양소에 또한 2천5백 개의 침대가 있어서 환자들을 요양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