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장로직을 조기은퇴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장 7절)
우리 교회는 원로장로로부터 시무장로에 이르기까지 무려 41명이나 되는 장로님이 계시는, 장로가 많은 교회 중 하나이다. 나는 1977년에 장로 장립을 받은 후 만 24년을 한 교회에서 시무하고 2001년에는 정년을 2년 남기고 조기은퇴를 하였다. 내가 장로 장립을 받을 당시만 하여도 교회 성도의 비율이 2:8 정도로 남자 신도들이 적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장로로 피택되는 데는 비교적 경쟁도 적었다. 일꾼이 적다 보니 쉽게 장로로 피택된 듯하다. 장로 피택 당시 나는 아직 신앙이나 능력도 부족하고 교회 직분에 얽매이기가 싫었기 때문에 극구 사양하였다. 장로 후보로 피택되고 나서도 가능하면 장로 장립을 미루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 교회의 강권과 주위의 권유로 인해 45세 때인 1977년 9월 25일 교회 창립기념일에 장로 장립을 받게 되었다.
장로로 피택된 후 내가 속한 지방회 주최로 장로 후보 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다. 우리 교단의 원로로서 교단을 위해 많은 일을 해서 존경받는 김옥선 장로님이 선배 장로로서 한 시간 강의를 하셨다. 이때 강사 장로님께서는 두 가지를 후배 장로에게 교훈으로 주셨다. 첫째는 장로 장립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개인이 아니고 공인이다, 일거수일투족 행동을 비롯하여 말에나 생각에 이르기까지 공인임을 자각하고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교회는 물론이고 교단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장로는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분명해야 하며,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교훈을 은퇴할 때까지 간직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장로 장립을 받은 1977년 당시는 장로, 목사의 은퇴시기 문제로 교계가 어수선할 때였다. 북한에서 피난 온 분들은 실제 나이와 호적의 나이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장로 은퇴 연령을 호적대로 하느냐, 아니면 출생 연령으로 하느냐 하는 논란도 오갔다. 아마 강사 장로님께서는 이런 상황 때문에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강조하신 듯싶었다.
나는 이때 구태여 힘든 장로직을 정년인 70세까지 다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조기은퇴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정년을 2년 남겨두고 조기은퇴를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장로가 되었을 때와는 달리 1980~90년대에는 교회가 크게 부흥하여 젊은 일꾼들과 고등교육을 받은 일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굳이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은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교회의 부흥을 위하는 길이었다. 이런 생각에서 나는 2년 일찍 은퇴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내가 늘 말해오던 조기은퇴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마침 우리 교회의 수석장로로 수고하신 김상원 장로님도 나와 동갑인데 조기은퇴를 결심하셔서 우리는 함께 은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둘이서 의논하여 원로장로 추대식을 생략하고 대예배 시에 선포하는 식의 간소한 은퇴를 교회에 요청했다. 장로 시무가 20년이 넘으면 원로장로가 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계에는 교회 공식 예배 말고 개인을 위한 행사가 만연하기 시작했고 감투에 연연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박사 취득 감사예배, 회장 취임예배, 은퇴예배 등 개인적인 일로 교회적인 행사를 벌이는 것이 당연시되는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는 신문에 공고를 하고 초청장을 발송하여 잔치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교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하고 잔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간소한 은퇴를 생각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같이 은퇴하시는 김 장로님이 흔쾌히 동의해서 2001년 7월 8일 대 예배 시에 간단히 은퇴한다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은퇴식을 대신했다. 내 소신은 이러했지만 이런 일로 후배 장로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앞으로 원로장로나 명예장로 추대행사가 없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 행사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내가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기독교계가 너무 허례허식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교계 신문에 나오는 부흥회 광고나 협의체 광고를 보면 상임회장, 대표회장, 공동회장, 여성회장, 지역회장, 대대표회장 등등 어떤 때는 회장만 10여 명이 넘을 때가 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다 하늘나라에서 갚아주실 텐데 왜 그리도 대외적인 명예와 직함에 연연하고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으려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장로 직분을 충실히 하고 후일 하늘나라에서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상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가급적 상 받는 일을 자제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하여 검소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반성하여 근본인 예수 믿는 일에 충실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