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학 작가상 응모작품
23-기도하는 손
내 삶이 늘 그랬듯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바쁜 걸음 종종거릴 때. 어머니의 기도하는 손을 떠올린다.
꽃을 자식처럼 마음 다하여 외로움 고달픔 달래가며 인내하는 나는 꽃밭지기로 이십여년을 살아왔다.
2024년 올해 연초부터 마음 속 접어두었던 하나의 크나큰 결심을 결행했다.
평생동안 나의 어머니 기도는 육남매를 위한 절절한 무속신앙이셨지만 지극정성으로 키워내신 희생이 오늘 내가 있음이라...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신앙을 넘어 나를 위한 오직 남은 여생을 위하여 <가톨릭 인터넷 교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마음 다지고 다져가며 새벽까지 두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공부했다. 드디어 6개월만에 컴퓨터 모니터에 팡파레도 울려주며 수료증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작은 오빠가 다른 사람의 권유도 없이 혼자의 힘과 의지로 그 길을 선택했느냐고 물어오신다.
‘말이 빚’이 아니라 글친구와 동생뻘 선생이 묵주 2점을 주며 꼭 성공하라고 어깨를 내어준 그 힘으로 가열차게 몰입했다고 말했다.
팔순이 넘어 구부정해지신 작은 오빠는 아직도 막냇동생이 아기로 보이시는지 “우리 막내 대학원 졸업한 택이다. 정말 장하다.”라며 연신 추켜세우신다.
정말 대학원 졸업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이렇듯 작은 오빠네 가족과 함께 하는 신앙은 큰 힘이 되었다.
무릇 종교란 자신이 현실과 잘 타협하며 맞서지 않고 스스로 다가가는 지혜를 깨닫기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 일요일 낮 미사를 마치고 5km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비로소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맞이한다.
파란 하늘 위 양떼구름도 올려다보며 한없이 행복해진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는 모든 일들의 마무리를 위하여 서두르지 말자. 욕심내지 말자. 나누며 살자.
좋은 이웃과 친구를 위하여 선한 마음으로 위하며 살아가자.
나에게 되뇌고 또 되뇐다.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어느덧 경찰청을 지나 애막골 새벽시장 앞에 다다랐다. 그 시간에도 좌판대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을 파는 노인들이 계신다.
젊은 시절 나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았었다. 남편의 사업 뒷바라지에 남은 부채를 떠안고 수없이 끙끙 앓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들고 가기에 무겁지 않은 푸성귀 한 다발을 사서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래. 걸어다닐 수 있고 읽고 쓸 수 있으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내 인생의 남은 삶이 얼마일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 후회로 남지 않게 잘 살다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영원히 배울 수 있고 배우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하듯 그저 본능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살기보다는 성찰과 사색을 통해 항상 깨어있는 삶을 가지라는 지혜의 말씀들을 기억하며 기죽지 말아야지. 노래 잘하는 새, 노래 못하는 새도 저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다고 했다지.
내겐 마흔이 훌쩍 넘은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이란 곁에 있으니 든든하고 좋다. 세상살이 이쯤 되니 기죽을게 없지만 언젠간, 언젠가는 곧 좋은 배필이 있으리라 믿으며 성가시게 걱정하거나 잔소리 하지 않으련다. 현명한 아이이니 알아서 잘 살아낼거야. 걸으며 기도하는 사이 꽃집 앞에서 발길이 머문다.
긴 장마와 불볕 더위에 축 늘어진 꽃잎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앞치마 갈아입고 꿀맛 같은 휴식에 취한다.
오늘도 감사한 휴일. 멀리서 재재거리는 새들의 아름다운 성가소리에 귀기울여 오늘 하루가 의미 있고 즐겁다.
어느 詩人의 글이 생각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 한 송이 들꽃 속에서 /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 찰나 속에서 / 영혼을 붙잡는다”
순수를 꿈꾸며 맑은 영혼을 위하여 곁에 있는 아들과 딸, 사위, 손녀들에게 내 정성을 다하리라.
마침, 여름방학을 해서 좋아하는 큰 손주. 여중 1학년 처음 맞이하는 방학인데 전부 A 가득한 성적표와 학업우수상을 받아왔다.
평소에 진중하여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극도로 어색해하는 아이. 말없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줄 아는 현명함이 있어 장차 어떤 여성으로 클지 지켜보고 싶은 아이다.
둘째 손주는 두 눈에 꿀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귀여움 그 자체다.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불쑥 돛단배 입으로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바라보는 눈도 귀엽고 매일 똑같은 잠옷과 애착베개를 껴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내일은 밭에 나가 매끈하게 자란 가지를 따다가 중국식 가지요리를 해먹여야겠다. 굴소스 넣고 두반장과 맛술, 향신료를 넣어 이국적인 맛을 내보자.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는 그냥 얻어지는 추억과 기억이 아니다.
물론, 손주는 귀엽고 예쁘기만 하지만 그 아이들이 어떤 요리를 좋아하는지 눈 여겨 보는 것도 중요하다.
방학동안 함께 공감해주며, 책 읽기, 글쓰기를 하며 문예창작을 도와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기도는 라틴어 세 문장으로 끝맺음한다.
1.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2. 아모르 파티(Amor fati)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3. 까르페 디엠(Carpe diem)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 여기까지 왔으니 내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을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