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목걸이
손진숙
십여 년 전이었다. 신문 기사를 읽던 내 눈이 번쩍 뜨였다. ‘호기심천국 -보석의 치료 효과’라는 내용이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치료석이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믿음 때문에 서양에서는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를 눈병치료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즈음 문학과 인생 전반에 걸쳐 가르침을 주시던 선생님께서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포도막염과 결막염 등 눈병에 시달리며 병원 출입을 안방 드나들듯이 했다.
그날도 안과에 다녀왔었다. 마침 선생님과 안부 전화를 나누던 중 사파이어와 에메랄드가 눈병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과학칼럼니스트의 글을 이야기했다. 그 즉시 눈에 좋다고 하는 보석으로 목걸이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진심을 외면하지 못해서였는지, 내 심저(心底)에 욕심이 동했는지, 끝내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가운데 선택은 쉬웠다. 색상에서 단연 에메랄드가 내 마음을 끌었다. 붉은 계통보다 푸른 계열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은 단순명료했다.
백화점 금은방에도 들러보고 시내 보석상 여러 곳을 돌아보며 가격과 모양을 비교해 보았다. 결국 백화점으로 결정하여 주문 제작을 의뢰했다.
에메랄드의 크기가 내 눈동자의 4분의 1쯤 될까. 투명한 녹색이 눈부시다. 네모난 보석의 테두리에는 모래알만 한 큐빅 스무 개로 둘러쌌다. 원석만으로는 태가 나지 않아 인공을 가미한 것이다. 자연석과 인공석이 서로 보완하며 함께 빛을 내는 것 같다.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줄이면 마음 심(心)자가 된다는데, 에메랄드 산지 콜롬비아 호수의 물을 한 방울만 남긴다면 에메랄드 빛깔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모든 호수가 에메랄드 푸름 속에 고요히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어릴 때, 꿈을 엮듯이 감꽃으로 엮었던 목걸이가 생각난다. 집 앞 밭둑 모퉁이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고욤나무에 접붙이기를 하여 고동시가 탐스럽게 열리던, 그다지 크지 않은 나무였다.
해마다 오월이면 콩을 심은 밭머리에 감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었다. 밤에는 반딧불이가 꽁무니에 반짝반짝 불을 밝히고, 낮에는 노랑나비가 춤을 하늘하늘 추며 앉던 곳이었다. 토도독, 날아 앉은 감꽃은 반딧불이와 노랑나비의 변신인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밤하늘에 별이 되다 말고 피어난 꽃인지도 몰랐다.
예쁜 감꽃을 주워서 명주실에 꿰어 목에 걸면 신라의 요석공주라도 된 듯 가슴 설레었다. 무지갯빛 꿈에 무한정 부풀었던 감꽃 목걸이의 추억은 그해 감이 익어 마지막 한 알까지 떨구어 버리듯 한순간 흘러가 버렸다.
그 후 결혼예물로 받은 금목걸이는 목에 걸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강산이 한 번 바뀐 뒤, IMF 금 모으기를 할 때 아기 돌반지며 집 안에 있던 금이란 금은 몽땅 싸 들고 가서 새마을금고 창구에 디밀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내가 모아 낸 금붙이 몇 돈만큼은 지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려나.
변변한 목걸이 하나 없이 지내다가 결혼 전에 잠시 심취했던 불심의 씨가 살아있었는지 卍자 목걸이를 갖고 싶었다. 18금 반 돈으로 맞추어 한동안 애착하며 걸고 다녔던 기억도 떠오른다.
긴 강물을 휘돌아온 것 같은 세월이 눈앞에 일렁인다. 목걸이를 지녔던 시간이 징검돌처럼 아주 드물게 놓여 있다. 목걸이가 없던 시기는 가난하고 궁핍해서라기보다 자유롭고 걸림 없는 시절이었다고 감히 장담해 본다.
목걸이에 대한 인연을 총동원해 보면 소유보다는 무소유에 가까운 내 삶이었다. 대체로 귀한 보석을 두르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아쉬움이나 결핍을 느끼지는 않는다.
요즈음도 나는 대부분 집안에서만 지내는 터라 평상시 목걸이를 걸지 않는다. 특별히 외출할 때는 유일한 에메랄드 목걸이를 착용한다. 언제 보아도 흡족하다 못해 분에 넘치는 행운과 행복을 맛본다.
에메랄드는 온도차와 충격에 약하다고 한다. 금방 주인은 샤워에도 깨질 염려가 있다고 조심하라 했지만, 샤워 정도로는 괜찮은 것 같다. 그럴 리 만무지만 에메랄드는 되팔 때 값이 나가지 않아 재산의 가치로는 의미가 낮은 보석이라고 한다.
에메랄드 목걸이의 기적인지 알 수 없으나 7, 8년 전부터 안과 의원 문턱을 밟지 않고 있다. 이 얼마나 근사한 보석이고 선물인가.
반짝이는 백금 줄, 반짝이는 큐빅, 그 중심에 청명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는 내 눈병이 사라진 동력이랄까, 내 박동하는 심장이랄까. 최후의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하고픈 내 자존심 한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메랄드처럼 맑고, 깨끗하고, 푸르게 살아간다면 그 어떤 부끄러움과 부러움에 감염될까. 치료석의 다른 이름 백신석이다.
십여 년 전, 선생님께서 눈병 치료에 좋으라고 선물해 주신 에메랄드 목걸이는 에메랄드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라는 지침인가도 싶다. 신선한 감촉의 에메랄드 목걸이를 목에 걸어본다. 바른 눈을 뜨고 살피라는 가르침이 환하게 길을 밝힌다.
《선수필》 2023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