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12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발표로 촉발…공정과 정의 기준에 대한 논쟁 불붙여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최근 보안 검색요원 19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공정하다는 이른바 최소극대화의 규칙에는 부합한다. 최선의 결정은 아닐 수 있어도, 최악의 결정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의 순서로 치면 정규직 전환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가 먼저라는 지적은 잠시 접어두자. 정의의 철학자 존 롤스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의 제1과제는 절차와 제도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공방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공정과 정의의 기준에 대한 고민거리들을 드러낸다. 정부도, 전환 대상인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분노하는 청년들도 모두 공정과 정의를 말하고 있다.
▲ 취임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의’가 ‘공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2016년 11월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학교 내 행정직 등 사실상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법안은 현장에서 거대한 반대에 부딪혔다.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기존 교사들과의 형평성 때문이었다. 논란이 된 것은 부칙 2조 4항이다. ‘사용자는 교육공무직원 중에서 교사의 자격을 갖춘 직원은 관계 법령을 준수해 교사로 채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부칙은 규정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반대 성명을 내고 “치열한 임용시험을 거친 예비교사, 학교 계약직 교사와의 형평성에 어긋나고 교직의 근간을 흔드는 조항”이라며 비판했다.
반발이 거세자 부칙 조항 삭제를 약속하고 신규 채용자에 대해선 별도의 임용 절차를 마련하겠다고도 했지만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사람이 바로 지금의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다. 장관이 됐지만, 법안을 다시 추진할 생각은 없다.
정부는 ‘선의’를 강조한다. 교육공무직법안도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의의 핵심은 절차의 공정에 있다. 공정이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올바름을 뜻한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약자는 보호해야 하지만 사회적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의 결정에 분노하는 청년들에게는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고, 그에 따른 차별적인 보상이 제공되는 것, 그것이 ‘정의’일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건국 이래 가장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세대다. 많은 청년이 정규직을 꿈꾼다. 그럼 어떻게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가. 청년들은 공정하게 겨루자고 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내가 한 노력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노력과 나의 노력 사이에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는 이를테면 업적주의 또는 능력주의로 이어진다.
그러나 청년들은 경쟁 그 이상의 공정한 과정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능력주의에 어긋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나보다 덜 노력한 누군가가 나보다 더 많은 혜택을 갖는다면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공정하지 않은 일이며, 따라서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공정한 과정과 절차에 따라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정성과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준부터 다르다. 청년들이 믿는 능력주의가 꼭 공정한 것이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우리 사회 한편에는 ‘경쟁’이야말로 우리 사회 발전의 동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는 우리 사회 고통의 근원이 바로 ‘경쟁’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이 7월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정규직 전환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실패했다
물론 누구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도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며,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사회가 어떤 기준을 공정성과 정의의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가 발표한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라는 게 있다. 선택의 절차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도 사회 구성원이 바라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정당하게 배려돼야 할 조건들을 모두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민주 사회에서 개인과 집단의 이해, 이념, 가치관에 따라 대안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한쪽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고 다그칠 사안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합리적 절차와 타협안을 도출하는 과정의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해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대기업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퇴직자 자녀의 특별 채용을 약속하는 고용 세습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산재로 인한 유가족의 경우는 어떨까. 인천공항의 경우 공개 경쟁시험을 거쳐 정규직을 뽑되, 기존에 비정규직으로 쌓은 경력에 대해서는 가산점을 주는 정도가 공정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가산점을 준다면 얼마나 주는 것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일까.
젊은 세대가 공정성에 예민해진 것은 그만큼 기회의 문이 좁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공공부문과 대기업 등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이런 일자리를 차지하는 청년은 전체의 10% 남짓이다. 대다수의 선택지는 어쩔 수 없이 중견·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인 게 현실이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6.4%가 비정규직이다. 현 정부 직전인 2016년 8월의 32.8%보다 더 늘어났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인데 고용은 불안하고, 복지는 허술하다. 사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를 더욱 확대할 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공정성과 정의 문제의 해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실패했다.
김상철 /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