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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9
천년을 참아온 백두산이 폭발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뜨겁다. 지난 수년간 백두산 근처에서 일어나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것.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팀의 ‘국민안전처 용역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9년부터 침강하던 백두산 천지 외륜산의 해발이 지난해 7월부터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이 일대는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도 10㎝가량 상승했었다. 지난해부터의 상승 높이는 비록 1㎝도 채 안 되지만, 다시 융기를 시작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만일 백두산이 정말로 폭발한다면 언제쯤 화산활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또 화산 폭발과 함께 입게 될 한국의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될까.
백두산 보도만 나오면 등장하는 윤성효(52) 교수. 그는 백두산 화산 분출 우려를 국내에 최초로 알린 화산학자다. 백두산 연구만 25년째이다. 화산 전공학자가 몇 안 되는 국내 학계에서 백두산을 연구한 사람은 그 말고는 찾기조차 힘들다. 그는 시간만 나면 백두산에 간다. 1996년에는 중국에 교환 연구원으로 가서 백두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가 연구한 백두산의 화산 폭발은 어떤 모습일까.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사안이다. 윤 교수팀뿐만 아니라 다른 화산 전문가들 또한 미국의 옐로스톤, 일본의 후지산과 함께 백두산을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화산으로 꼽고 있다. 땅속에 뜨거운 마그마를 잔뜩 품고서도 가만히 있는 화산이 활화산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백두산처럼 활성화 조짐이 뚜렷한 화산은 언제든 큰 폭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 시기를 정확히 모를 뿐이다. 시기적으로 백두산이 분화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2년 일본의 화산 전문가 다니구치에 따르면 2019년까지 68%, 2032년까지는 99%다. 그는 2011년 발생한 일본의 대규모 동일본지진의 판 운동 영향과 역사상 백두산 분화의 시기적 연관성을 근거로 이 같이 주장했다. 윤 교수는 보통 ‘화산이 가까운 시일 내에 폭발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시일은 ‘100년 이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윤 교수를 비롯한 한국의 화산 전문가들은 백두산 폭발 시기를 섣불리 예견하는 것을 우려한다. 백두산 화산의 폭발 시기를 단정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적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는 시추 연구로 화산이나 지진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있지만, 백두산은 그런 과학적 시추를 한 적이 없다. 땅속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에 어느 누구든 백두산 폭발의 정확한 예측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이번처럼 화산 지표를 꾸준히 관측하다 보면 극히 단주기적인 예측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에는 화산 지진이 빈발하고, 화구가 급격히 부풀어 오르는 등의 전조현상이 나타난다. 백두산도 십여 년 전 이러한 징조를 보였다. 2002년부터 무려 5년간 화산 지진이 빗발쳤다. 심한 경우 한 달에 250회 정도나 일어났다. 이것은 백두산 폭발의 전조현상으로 의심되었고, 북한과 중국 당국을 긴장시켰다. 북한 당국은 2007년 남한 정부에 백두산 화산 남북 공동연구를 추진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백두산은 서기 1000년경 대폭발이 발생한 이후 네 차례(1413년, 1597년, 1668년, 1702년)에 걸쳐 소규모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 서기 1000년경의 대폭발은 ‘1만년 이내 지구상에서 폭발한 가장 큰 화산 중 하나’로 명시될 정도의 규모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큰 화산 폭발인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탬보라 화산(87㎦) 폭발에 버금간다. 화산 폭발이 발해 멸망의 원인으로 거론될 정도이며, 당시 흐른 용암의 양은 50∼172㎦로 추정된다.
백두산의 높이는 2000년대 들어 10㎝나 높아졌다. 윤 교수팀이 중국 정부의 인공위성 사진을 입수한 결과, 산 정상을 중심으로 백두산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산 전체가 부풀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하의 마그마가 성장함에 따라 백두산 정상부가 솟아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지구자원탐사위성(JERS1)이 1992년 9월부터 1998년 10월까지 측정한 사진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백두산은 천지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이 해마다 약 3㎜씩 솟아오른다.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에릭 헤틀란드 연구원이 1998년부터 2년간 백두산 지하에서 발생하는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 지표면 아래 5∼10㎞, 15∼25㎞ 두 군데에서 마그마방으로 추정되는 고온의 영역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런데 5~10㎞ 지점에서 관측됐던 마그마방이 당시 2~3㎞ 지점까지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는 진앙지가 천지 아래쪽 불과 2㎞ 지점이라는 의미이다. 마그마방은 마그마가 거대한 덩어리 형태로 뭉쳐져 있는 것을 말하는데, 수직으로 성장하여 상승하면 곧 분출로 이어지게 된다.
백두산 천지의 수면 높이는 2189m. 이것을 감안할 때 2~3㎞ 아래 지점의 마그마방은 해수면 기준으로 0m 지점까지 올라와 있는 셈이다. 마그마는 맨틀층(지하 30∼2900㎞) 부위에 있다가 힘이 강해지면 그 위의 지각층(지표∼지하 30㎞)을 뚫고 올라온다. 문제는 일본 동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 태평양 지각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들어가면서 천지 아래의 마그마방에 자극을 주고 있어 화산 분출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 천지의 온천수 온도도 올라갔다. 1990년대에 섭씨 69도이던 장백폭포 아래의 온천수가 최근에는 최고 83도까지 뜨거워졌다. 헬륨 농도도 일반 대기의 7배나 증가했다. 지각 아래 맨틀에서 올라오는 헬륨가스의 증가로 백두산의 나무들이 질식해 말라 죽고 있는 상황. 해발이나 온천수 온도, 헬륨 농도의 상승은 화산 폭발 전의 징조다. 지하에서 뜨거운 마그마 활동이 계속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중국과학원 지질물리연구소 활화산연구센터와 윤 교수팀이 공동으로 측정한 결과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징조로 보면 백두산 화산은 내일이라도 터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바로 폭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마그마의 점성이 높다는 데 있다. 마그마의 점성이 높으면 지표면 위로 올라오는 속도가 느리고, 그 과정에서 굳어 암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면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뭘까. 바로 ‘화산 쇄설류(화쇄류)’다. 화산 구름기둥(분연주)이 1~5㎞ 올라가다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산비탈을 타고 주변으로 흩어지는 현상으로, 용암과 기존 암석이 크고 작은 파편으로 부서진 채 화산 가스와 한 덩어리가 된 것이다. 시속 130~180㎞로 빠르게 주변을 덮치기 때문에 피하기가 어려워 화산 폭발에서 가장 무서운 현상으로 꼽힌다.
온도도 500~700도에 달해 이들이 닿는 곳에는 화재가 발생하고, 생물들은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특히 뜨거운 재가 코로 들어가면 호흡기 점막이 손상돼 숨을 쉴 수 없다. 이 때문에 화쇄류는 화산 폭발로 인한 사망 원인의 70%를 차지한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시신들이 모두 웅크린 채 발견되는 것도 화쇄류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다른 화산과 비교해 볼 때 작은 규모가 아니다. 특히 다량의 화산재를 만들어내는 유문암질과 조면암질의 점성 높은 마그마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분출 가스를 붙잡아 둘 수 있다. 점성이 낮은 마그마는 가스를 붙잡아 두는 힘이 약해 소규모 폭발이 일어나는 반면, 점성이 높은 마그마는 최후의 순간까지 화산 가스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폭발을 하게 되면 대규모로 이어진다.
윤성효 교수를 비롯해 일부 화산 전문가들은 백두산 천지에 고인 20억t에 달하는 물과 함께 화산재가 분출될 경우 세계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천지의 물이 고열과 만나면 수증기로 부피가 팽창해 폭발의 기폭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분화구에서 25㎞ 이상 공중으로 올라간 화산재가 성층권에 잔존하게 돼 태양 복사를 차단함으로써 기후 한랭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20억t에 이르는 천지 물이 흘러내리면서 북한 양강도와 중국 지린성 일대에 대규모 홍수가 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화산 분출물들이 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화산성 홍수인 ‘라하르’는 경사면을 따라 시속 100㎞로 흐르기 때문에 주변을 휩쓸어 버린다. 특히 기존 분화구에 고여 있는 물이 많을수록 위협은 더 커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화산 분출물로 인한 피해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 남쪽의 한국에 직접적으로 미칠 수 있는 현상은 화산재로 국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할린 등 러시아 원동 쪽에 고기압이 발달해 백두산 화산재가 북동류를 타고 남한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최근 5년 동안의 기상 상황 등을 ‘유해물질 확산 대기모형’에 따라 모의실험한 결과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게 윤 교수팀의 설명이다.
윤 교수팀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백두산 화산이 폭발지수 8단계 가운데 5단계 이상의 대폭발을 할 경우 화산재는 8시간 만에 울릉도와 독도에 이른다. 또 48시간 뒤에는 호남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 화산재가 쌓인다. 화산재가 북풍 계열의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강원도에 최대 10.3㎝의 화산재가 쌓이고, 호남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 적게는 수㎜에서 많게는 수십㎜의 화산재가 쌓인다.
화산재가 한반도에 퍼지게 되면 한국은 극심한 피해를 입는다. 농작물 피해가 4조5189억원, 제주공항을 제외한 모든 공항이 최장 39시간 이상 폐쇄되면서 그 피해액이 611억원일 것으로 예측된다. 화산 폭발로 인한 지진 때문에 서울과 부산 등 한국 주요 대도시에 있는 10층 이상 건물 유리창과 외벽 등이 파괴되면서 입는 피해 등 직간접적 피해를 합하면 11조1895억원의 피해액이 예상된다고 윤 교수팀은 밝혔다. 반면 폭발지수가 4단계 이하일 경우, 북한 지역은 쑥대밭이 되지만 남한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으로 나타났다.
백두산 아래에 수상한 거동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화산 활동의 징조가 있다고 해도 짧은 시간 동안 증거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지표면과 가스, 지열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꿈틀대고 있는 백두산 화산의 몸부림을 어느 때보다 눈여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윤 교수는 말한다. 현재 정부는 윤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화산 분출량과 풍속 등의 정보를 알면 화산재의 경로와 도달 시간을 3차원으로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두산 땅속 깊은 곳의 마그마 활동은 한민족의 뜨거운 심장처럼 쉬지 않고 끓고 있다. 한민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백두산은 남과 북이 함께 연구하고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과학원은 1999년부터 백두산 곳곳에 지진파 탐지기를 설치해 꾸준히 지표면 탐사를 해왔다. 하지만 화산 활동을 예측하려면 마그마의 움직임이 있는 땅속의 지각구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특히 백두산의 경우 더욱 그렇다. 20억t의 천지 담수와 마그마의 물리화학적 연동이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중국과학원 지질물리연구소가 뭉쳤다. 2018년 공동으로 백두산 땅속을 파고들기로 한 것. 지하 7㎞ 깊이까지 시추공을 뚫고 마그마의 흐름을 꿰뚫어 볼 예정이다. 마그마는 지하 10㎞ 부근에 있지만, 7㎞가량 뚫고 들어가면 그 주변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탐사팀의 설명이다. 그곳에서 1300도가 넘는 액체 상태의 마그마를 직접 꺼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렇게 마그마가 있는 지하 수㎞ 깊이까지 뚫는 작업은 세계의 휴화산 가운데 백두산이 처음이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라는 얘기다. 앞으로 두 나라 연구진의 백두산 연구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먼저 2017년까지 비파괴 검사를 통해 시추 지점을 결정한다. 마그마에 접근하기 위한 ‘안전한 길찾기’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백두산 땅속 최대 12㎞ 부근(1만㎦ 이상의 지역)까지 3차원 입체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일본이 참여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백두산은 일본 열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각판이 부딪쳐 탄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세 나라가 공동으로 백두산을 탐사한다면 정확한 분화 예측은 물론이고 아시아 지역 안보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한·중·일의 연구가 반드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