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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가 평소에 보아왔던 산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마물들이
득실거리며 피와 살육을 즐기는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 다시 산을 돌아다니며 혈광을 빛내는 맹수들을 찾아나서려던 백호
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바람 같은 속도로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
갔다.
절벽을 마치 평지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서 정상에 도착한 백호는 주위
를 둘러보며 의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젖더니 다시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갔다.
백호가 멈춘 곳은 주위의 자연 배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그
마한 초가집이 있는 곳이었다.
역시 그곳에도 백호가 찾는 것이 없었던지 그 큰 머리를 휘두르며
산 밑으로 달려나가려던 백호는 갑자기 느껴지는 섬칫한 기운에 주위
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과연 얼마 후에 백호의 주위로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마물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좀 전에 백호가 상대했던 혈광을 내뿜는 늑대 같이 이성을 상실한 맹
수들이 아닌 말 그대로 마물이었다.
몸통에 비해 팔이 무척길고 그런 팔이 무려 8개나 달린 검은 색을
띄는 마물들이 백호 주위를 포위하며 꿈에서 볼까 두려운 섬칫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호는 마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지독하게 강한 살기를 느끼고는
몸을 바닥에 바짝 밀착시킨 후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마물들을 노려봤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지만 이런 느낌의 생물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백호는 사악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마물들을 노려보다가 마침
내 몸을 날려 뾰족한 발톱을 세운 상태에서 그 커다란 앞발로 마물들
을 후려쳤다.
너무나 신속하고 정확한 백호의 공격에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던
마물 한 마리가 비명소리도 제대로 못 지르고 소멸해 버렸다. 생각보
다 강력한 백호의 힘에 놀란 마물들은 웃음을 그치고 백호를 씹어
죽일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맹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차린 마물들이 백호를 원형으로 둘러싼 채 한꺼번에 8개의 팔을 휘두
르며 백호를 공격해 오자 천지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백호는 전력
을 다하여 한쪽을 향해 정면돌파해 나갔다.
다행히 마물들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온 몸에 생채기 투성
이가 되어 허연 이빨을 들어내며 으르렁 거리는 백호의 모습은 위태
롭기 그지없었다.
마물들에게 당한 상처는 평범한 상처가 아니라 마치 영혼이 썩어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기에 백호는 몸을 비틀거리며 다시 마물
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마물들이 공격해 온다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백호는 문득 강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백호를 키워준 강운의 사부의 얼굴이 떠오르자
백호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백호가 도망갈 수 있는 틈은 전혀 보이지 않
았고 결국 희망이 없다는 것만 다시 확인한 백호는 지독한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언제고 마물들이 공격을 다시 한다면 영혼이 갈가리 찢겨지는 고통을
당할 것이라 생각한 백호는 눈을 감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펑! 파파팍!
그렇게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던 백호의 귀에 북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의 인물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기쁜 마음에 눈을 부릅떴다.
과연 그곳에는 강운이 어느새 도착했는지 소멸해 가고 있는 마물들을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물들이 모두 소멸해 버리자 강운은 몸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할
정도로 다친 백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백호야! 괜찮아? “
[운아! 왜 이제야 온 거야? 빨리 온다고 나하고 약속했잖아? ]
덩치에 걸맞지 않게 투정을 부리며 백호가 강운의 곁으로 다가 가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잠깐만. 내가 곧 치료해 줄게. “
강운은 백호의 그 커다란 머리에 손을 갖다 대고는 기운을 불러 일으
키자 백호의 몸 주위로 파란 막이 형성되며 백호의 상처를 치유시켜
나갔다.
얼마 후 겉으로 보기에는 백호의 상처가 모두 치료 되었지만 강운은
손을 떼지 않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금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는 하얀 막이 백호의 몸에 둘러싸였고 곧 이어 하얀막이 백호
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하얀막이 백호의 몸으로 흡수되자 백호의 모공을 통해서 검은색의
안개가 흘러나왔고 강운은 재빨리 검은 안개를 소멸시켜버렸다.
“휴.. 지독한 놈들한테 당했구나. 백호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
야? 그리고 사부는 어디있는거야? “
강운이 치료해 준 덕분에 몸이 원 상태로 회복된 백호는 몸을 벌떡
일으켜서 강운의 볼을 핥아줬다.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저 검붉은 구름이 산을 둘러싼 후에 친구들이
모두 마물로 변해버렸어. 하지만 방금 전에 있던 마물들은 처음 보는
것들이야. 그리고 그 영감탱이는 이 중요한 순간에 어디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
강운은 백호의 말을 듣고는 산을 뒤덮고 있는 검붉은 구름을 바라보
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가.. 혹시 잘못된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없어. 분명 나 몰래
이상한 짓을 벌린 게 틀림없을 거야. 우선은 저 구름부터 없애야겠다. ‘
강운은 그의 사부가 걸어두었던 모든 금제를 풀어버리고 모든 기운을
개방해 버렸다.
강운을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형성되어 검붉은 구름을 향해
치솟아 올라갔고 회오리에 빨려들어간 구름들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소멸해 가던 검붉은 구름들이 회오리에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저항을 하기 시작하자 강운은 더욱 기운을 끌어올려
검붉은 구름들을 소멸시켜 나갔고 백호는 강운을 바라보며 불안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모든 구름을 소멸시켜 버릴줄 알았던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려서야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검붉은 구름을
소멸시켜 버릴 수 있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에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별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밝은 빛을 뿜어내는
달이 하늘 높이 떠올라 있었다.
“휴.. 이거 생각보다 힘 드네.. 백호야 오래 기다렸지? “
강운은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별이 반짝이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운은 거의 반나절 동안이나 먹구름을 소멸시키기 위해 힘을 쏟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지쳐보이는 모습이었다.
사부의 안위가 걱정되어 근심 가득한 눈빛으로 밤 하늘을 쳐다보던
강운의 눈에 검붉은 먹구름의 중심 핵이 있던 자리로부터 하얀 광채
를 발하는 구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끔씩 밤하늘을 보다보면 별빛이나 달빛에 빛이 반사되어 구름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듯 하얀 광채를 뿜어내는 구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구름에서 느껴지는 기운 또한 심상치 않았기에 강운은 또
한번 언제라도 기운을 일으킬 수 있게 준비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았
다.
강운의 걱정과는 다르게 하얀 구름은 반경 십장 정도의 크기까지
생성된 후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저건?… 또 뭐야? 귀찮은데 그냥 소멸시켜 버릴까? 하지만 저런 구
름 소멸시키려면 상당히 힘들단 말이야.. 이럴 때 사부라도 있었으면
좋잖아.. 꼭 필요할 때는 어디가 있는 거야.. 무사해야 할 텐데.. ‘
한참이 지났는데도 구름에서 별다른 반응이 느껴지지 않자 강운은
고개를 돌려 백호를 바라봤다.
“백호야.. 저 구름도 이상한 기운을 품어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사악
한 기운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 집에 들어가 있자. “
강운은 백호에게 말은 건넨 후 초가집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곧 발걸음
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운아.. 저 구름에서 사람이 나오는데? ]
“뭐? “
강운은 백호의 말을 듣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 보았
는데 과연 백호의 말대로 하얀 구름에서 일견 보기에 강운의 사부와
매우 흡사한 복장을 한 노인 한명이 강운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내려
오고 있었다.
강운은 자신에게 다가 오고 있는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백호를 자신의 뒤로 물리고 노인을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얼마 후 노인이 강운의 삼장 앞에 사뿐히 착지한 후 강운을 대견스럽
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봐요? 할아버지는 누구야? “
노인은 강운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본 후에 공손히 허리를 굽혀
강운에게 인사를 했다.
“소신.. 태자마마를 뵈옵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강운을 향해 격정어린 목소리로 말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멀뚱하니 바라보던 강운이 백호에게 고개를 돌려
뭔가를 물어봤다.
“백호야? 태자마마가 뭐하는 거야? 저 할아버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
백호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운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었다.
[내가 영감탱이한테 들은 바로는 인간 세상의 왕의 아들놈한테 붙이
는 말이라고 들었는데.. 왜 운이 너한테 그런 말을 한 건지는 나도
모르겠네. ]
“할아버지! 나는 태자마마 같은거 아니니까 딴데 가서 알아봐요. “
대충 백호로부터 말뜻을 전해들은 강운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자 허리
를 굽히고 있던 노인이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