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비주얼시대 / 백봉기
최근 서울 어느 TV뉴스전문채널에서 DMB로 비주얼 라디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공중파방송에서는 이미 인터넷을 통하여 스튜디오에서 방송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비주얼 라디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비주얼(Visual)은 시각적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이는 라디오를 하겠다는 것이다. 라디오는 듣는 것이고 텔레비전은 보는 메커니즘이지만 이제는 듣는 라디오에서 보는 라디오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보는 라디오일까?
지금은 영상시대다. 어떤 정보를 전달하거나 인지할 때 가장 빠르고 쉽게 도달하는 것이 영상매체 즉 눈으로 직접 보게 하는 것이다. 보통 어떤 사물을 오감으로 인식할 때 시각은 70%를 좌우하고 청각은 20% 나머지 10%는 촉각이나 미각 후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이왕이면 보기도 좋고 먹음직스럽게 만들면 먼저 손이 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비주얼머천다이징(VisualMerchandising)이라는 말이다. 상품의 진열이나 장식을 연구하여 소비자에게 시각적으로 어필하면 판매고가 올라간다는 판촉행위의 하나다. 요즘에는 학문으로 자리 잡아 미술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경제학에서도 많은 논문이 나오고 있다. 어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비주얼머천다이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곳도 있다.
이것은 가게를 시각적으로 새롭게 디자인함으로써 손님을 끌어 모아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름용 캐주얼셔츠를 접은 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펼쳐서 젊은 감각에 맞는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꽂아 두면 상품의 우수성이 시각적으로 부각되어 더 잘 팔린다는 것이다. 생선가게에서도 등이 보이게 하는 생선과 배가 보이게 하는 생선을 구별하여 진열하고, 깔판의 색깔은 파랑색, 고기는 수직으로 놓는 것 보다는 계단식으로 옆이나 대각선으로 진열하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좀 더 발전한다면 그 가게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것 즉 간판의 모양이나 가게주인이 입고 있는 독특한 옷, 기억하기 좋은 조형물을 설치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 의 하나라는 것이다.
세계 음식의 보고라고 하는 서울 이태원에는 전통 일본식라멘(라면)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라멘 81번옥’ 이라는 분식점이 있다. 그 집이 유명한 것은 '점보라면' 때문이다. 보통 라면보다 양이 많은 '점보라면'을 20분 안에 국물까지 다 먹으면 라면 값 20,000원을 받지 않는다는 간판으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벽에는 '점보라면'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름과 빈 그릇을 들고 찍은 사진을 붙여놓아 마치 명예의 전당과 같은 벽보를 만들어 손님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 중에는 아주 마른 여성들도 있는데 빨리 먹기와 체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비주얼머천다이징에 성공한 가게 중의 하나다.
사람에게도 비주얼시대가 왔다. 자기 이미지 찾기에 상당한 돈과 관심을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자들도 피부를 관리하러 미장원을 다닌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명함이다. 명함에 사진을 넣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의 경력과 자격증, 네모가 아닌 한지로 만든 명함에 구호까지 써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홍보하고 특색 있게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미적 감각이 없어서 옷을 사고 나면 금방 후회를 한다. 그래서 옷을 살 때는 언제나 집사람과 같이 간다. 그럴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다 입는 점퍼와 티셔츠를 입어도 잘 어울리지 않고 난방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바지에 아무거나 걸쳐도 품위가 있고 멋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사람은 깨끗한 구두와 잘 다듬어진 머리, 청바지에 잘 어울리는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차림새뿐만 아니라 세련돼 보이는 걸음걸이와 언행 등에서 색다른 품위를 느낄 수 있다. 멋을 부린다는 것은 사치가 아니다. 멋이란 자신을 정확하게 연출하는 내적 작용이다. 개성에 맞게 자신을 꾸미고 디자인하면 시각적으로 달라지고 이미지가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결코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겼다고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멋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은은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사원을 채용할 때 면접을 중요시하고 실제적로 80%는 면접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것은 일에 대한 능력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가진 매력 즉 멋과 품격이 그 회사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적합한가를 찾는 것이려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