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이동호<200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이곳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주로 일층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 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弔燈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일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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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담담한 시입니다. 극빈을 이야기하는데 무심하게 관조하는 태도가 보입니다. 가난과는 전혀 관계없는 시를 풀어나가지만 실은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는 거지요.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임대 아파트에 혹시 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12평, 13평 정도되는데요, 방 두 칸, 주방딸린 거실 한 칸,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도식이 대부분입니다. 집이 좁으니까 이것저것 복도에 내다 놓은 것도 제법 있으니 어수선한 골목 한 가집니다. 사실을 그대로 적어놓았습니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쉬운가요, 일을 하고 싶지만 신체적 능력이 안 되시는 분들이 모여 있으니 벗어남이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라는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마음을 울립니다. 이 곳을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표를 내는 일이라고 다음 연에 적었습니다. 사표를 낸다는 의미는 다들 아시겠지만 ‘가장 안 좋은 일’ 아닐까요?
이곳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주로 일층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임대아파트를 벗어난다는 것은 그러니까 죽음이거나 극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입니다. 결국 사표를 내는 일은 저세상으로 가는 일이군요. 서글픈 현실은 늘 죽음을 생각나게 하지요. ‘저승이 일층에 국한되어 있다’거나 ‘고층에 가까운 사람은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라는 표현들은 문학적 형상화가 된 거지요.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시인들이란 늘 깨닫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아요.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 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弔燈을 내걸었다.
임대 아파트의 슬픔을 제3자의 입장에서 무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춘문예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 같지만, 사실은 극빈에 처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가장 신춘문예다운 시가 아닐까요.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애써 담담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읽어야합니다. 그나마 요즘은 당시보다(2004년) 복지사도 늘었고, 복지사들도 열 일하고 있으니 한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조등을 내걸었다는 표현은 하늘에서 임대 아파트를 비추는 달을 의미하겠죠. 달은 흔히 풍요나 인생을 떠 올리게 하는데, 시인은 조등을 그렸군요.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일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달을 ‘조등’이라 표현하고 ‘아파트의 사람들’을 ‘조의금’에 비유합니다. 삶의 희망이 없는 이들은 조용합니다. 그런 조용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하나의 종파를 이루고 가족이 되는 거지요. ‘조용한 가족’이란 이 시대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식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