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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샵 (The Bookshop)
김영문 / 정치외교학과
서론
우연히 영화 채널 Cine F에서 ‘북샵(The Bookshop)’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 3분가량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 의미가 있는 작품 같아 영화가 끝나는 대로 바로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영화 '북샵'을 찾아보았다. 먼저 영화 ‘The Bookshop’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포스터의 돋보이는 디자인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포스터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책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한 권의 책을 들고 서 있는 주인공 플로렌스의 모습이 중심에 있다.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은 책방이 낡고 오래된 공간임을 암시하였다. 포스터에 새겨진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아름답고 용기 있는 도전!'이라는 문구, 책에 대한 열정과 책방을 지키려는 한 여인의 도전과 이 꿈을 파괴하려는 무리의 방해 공작을 예고하는 이 포스터는 그 자체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나아가서 “사랑과 문학에 대한 위대하고 매혹적인 찬사!”와 같은 해외 매체의 긍정적인 평가를 활용하여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성적인 분위기를 부각하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책방이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소설의 줄거리를 만들어 낸 원작자는 누구이며, 감독은 이 줄거리를 소화하기 위해 어떤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어떤 무대 환경을 선택하였으며, 나아가서 관중의 귀를 사로잡고 줄거리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골랐는지, 한 개인의 꿈과 그 꿈을 파괴하려는 세력 사이에 발생하는 도전과 응전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더불어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감독은 어떤 영상 기법을 동원하였는지도 궁금하였다.
줄거리
영화는 "그녀가 말했다. 책을 읽을 때면 그 안에 살게 된다고. 표지가 지붕과 벽이 되는 집처럼.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 이야기가 생생한 꿈처럼 살아 숨 쉬는 순간이었다."라는 자막을 통해 플로렌스의 책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면서 시작된다. 플로렌스는 전쟁미망인이다. 남편은 2차대전에 참전하여 싸우다 1943년에 전사하였다. 두 사람은 런던의 큰 서점에서 함께 시집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을 하며, 가끔 W.B. 예이츠와 T.S. 엘리엇의 시를 서로 읽어주면서 미래를 약속했다.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도 플로렌스는 지난 16년을 책을 통해 고인이 된 남편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산책을 즐겼다. 이처럼 그녀는 혼자이지만 책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았다.
플로렌스는 1959년 영국의 작은 바닷가 마을 하드버러를 찾아간다. 이곳은 플로렌스가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특별한 장소였다.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하드버러에 오래된 집을 사서 그녀는 책을 통해 얻은 희망을 이웃과 나누고자 책방을 오픈한다. 그녀는 이 책방 개업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회상한다. 이후 책방은 영리하지만, 책을 싫어하는 동네 어린 소녀 크리스틴의 도움을 받으며 잘 운영되었으며, 마을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플로렌스는 처음에는 크리스틴의 언니를 채용하고자 하였지만, 여의찮아 크리스틴을 채용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플로렌스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라.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몇 장만이라도 넘겨봐"라고 크리스틴에게 부탁할 정도로 어머니와 딸, 친구 같은 다정한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평화롭고 희망이 가득한 플로렌스의 책방은 오래가지 못하고 작은 마을의 단순하지 않은 인간관계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에도 유력자와 폐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무리가 존재하며, 이들은 책방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특히 이들 가운데 가맛 장군의 아내이자 마을의 세도가인 바이올렛은 플로렌스의 '올드 하우스 책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플로렌스를 파티에 초대해 올드 하우스를 책방보다 문화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다른 곳에 책방을 열도록 권유한다.
플로렌스는 이러한 바이올렛의 문화센터에 대한 구상과 책방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 실망하여 파티 도중에 떠난다. 이 마을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던 가맛 장군의 부인 바이올렛은 이 오래된 집이 7년 이상 빈집으로 남아있는 동안 문화센터로 만들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런던에서 온 지적이고 우아하며 선량한 전쟁미망인이 작고 외진 바닷가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을 매입하여 책방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 작은 책방이 마을 공동체에 새로운 관심과 희망을 제시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자, 바이올렛은 시기와 질투를 느꼈는지 모른다. 이후 바이올렛은 올드 하우스에 문화센터를 세우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자신의 재력과 인맥을 동원하여 플로렌스를 쫓아내려고 집요한 방해 공작을 벌인다. 하지만, 플로렌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책방을 운영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마을에 부유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은둔자로 알려진 노신사 브런디쉬가 등장한다. 바이올렛이 책방을 문 닫도록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은둔 생활을 벗어던지고 바이올렛을 찾아가, 이 외진 어촌에는 문화센터보다 책방이 더 필요하므로 그녀에게 계획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더 이상 플로렌스를 위협하거나 괴롭히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브런디쉬는 바이올렛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브런디쉬는 플로렌스가 읽은 책의 복잡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산책하던 중 잃어버린 스카프를 자기 외투 주머니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브런디쉬는 ‘올드 하우스 책방’에 가장 많은 책을 주문하는 고객이었다. 그는 플로렌스가 추천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읽고, 그 작가에게 매료되어 그의 신간 '민들레 와인'을 주문하고 기다리다, 그 책을 받아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플로렌스는 브런디쉬가 주문한 '민들레 와인'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자, 그 책을 안고 그의 죽음을 한없이 슬퍼한다.
브런디쉬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렛은 책방을 폐쇄하고 플로렌스를 쫓아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바이올렛은 마을의 결정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하여 왔으며, 이로 인해 책방은 끝내 문을 닫고 플로렌스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녀는 조카를 통해 공용수용법이라는 새로운 법적 장치를 마련하여 시에서 오래되고 보존 가치 있는 건물을 강제로 매입할 수 있게 했다. 나아가서 바이올렛은 고스필드 경에게 데븐의 생선가게를 매입하게 하여 플로렌스의 북샵과 경쟁할 새 책방을 열도록 유도했다. 또한 United Banks 직원 케블을 통해 플로렌스가 빌린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도록 자금압박을 가하는 한편 변호사 숀튼을 통해 책방이 좁은 골목에 교통 혼잡을 일으킨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플로렌스를 괴롭혔다. 심지어 교육청의 장학사까지 동원하여 크리스틴이 더 이상 올드 하우스 책방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동네 건달이자 책방에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마일로 노스와 회벽공이자 크리스틴의 아버지인 기핑씨를 이용하여 책방 지하실에 부분적으로 물이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축 관련 공무원은 플로렌스에게 보상금 없는 퇴거명령을 내린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플로렌스는 직원 노스에게 왜 자기를 배신했는지를 물어보지만 이미 그녀의 표정은 지쳐 있었다. 비록 브런디쉬가 '인간의 가장 훌륭한 미덕은 용기 있는 사람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버티라'라고 말했지만, 플로렌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오랜 꿈이자 소망이었던 책방을 닫기로 한다. 은행 대출 정산을 마치고 돌아온 플로렌스는 책꽂이의 책들을 어루만지다가 마룻바닥에 엎드려 이 작은 책방과 조용히 이별한다.
끝내 가맛 부인과 주변 무리의 방해 공작으로 플로렌스의 꿈은 깨어지고, ‘올드 하우스 책방’마저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플로렌스의 책에 대한 열정과 자기 집과 책방을 지키려는 노력은 잠시 빛을 발했지만, 그녀의 노력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플로렌스의 가슴속 깊이 간직한 것, 즉 책을 통해 찾은 삶의 희망, 책을 읽는 즐거움, 이웃과 그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한 소망, 그리고 악한 무리에 맞서 올드 하우스 책방을 지키려는 그녀의 의미 있는 도전과 용기는 아무도 뺏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적 가치들은 플로렌스가 말할 수 없이 캄캄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발하고 있음을 마지막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로렌스가 하드버러 부두에서 작은 배를 타고 떠날 즈음, 크리스틴은 책방에서 사용하다 집으로 가져간 등유 난로를 들고 텅 빈 책방에 들어간다. 플로렌스가 크리스틴에게 읽기를 권했던 그 책을 들고나오면서, 크리스틴은 바이올렛의 문화센터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올드 하우스에 불을 지른다. 그녀는 플로렌스로부터 배운 대로 등유 난로에 양쪽으로 기름을 넣어 불을 질렀다. 이후 항구로 달려가 크리스틴은 배를 타고 떠나는 플로렌스를 배웅한다. 플로렌스는 배 위에서 화염에 휩싸인 책방을 바라보면서 크리스틴이 불을 지른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녀는 크리스틴이 껴안고 있는 ‘A High Wind in Jamaica’라는 책을 보고 조용히 미소 짓는다. 이후 성장한 크리스틴은 플로렌스의 책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이어받아 큰 서점을 운영하게 되고, 영화는 플로렌스가 남긴 명언 “그 누구도 책방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라는 자막과 함께 마무리된다.
아름다운 영화의 탄생 : 원작·감독·배우
첫째, 이 영화는 페넬로페 피츠제럴드(1916. 12. 17.~2000. 2. 28)가 1978년에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피츠제럴드는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 최고의 작가 50인 중 한 명으로, 그녀는 작품 ‘앞바다를 향하여 (Offshore)’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을 돌보며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쉰 살이 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20년 동안 열두 편의 소설을 썼다. 그녀는 여든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영국에서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았다. 피츠제럴드의 생애와 작품은 그녀가 겪은 개인적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이룬 문학적 성취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앞서 줄거리에서 살펴본 대로 소설 ‘북샵’은 1959년 영국 서퍽주의 작은 어촌 마을 하드버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는 플로렌스 그린이라는 한 전쟁미망인이 이 어촌 마을에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을 매입하여 책방을 열며 삶의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 어촌 마을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하는 가맛 장군의 부인 바이올렛은 이미 오래된 빈집에 들어선 책방을 문 닫게 한 뒤 그 자리를 문화센터로 활용하고자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방해 공작을 한다. 이에 맞서 플로렌스는 이 책방을 지키고자 용기 있는 도전을 한다. 이처럼 소설은 한 개인의 꿈과 작은 마을의 구성원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긴장 관계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면서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둘째, 스페인 출신 이사벨 코이젯트(1960.4.9~)는 영화 "The Bookshop"(2017)의 감독으로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각색하여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탁월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책과 책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주인공들이 지닌 감정의 깊이를 세심한 영상 기법과 마음을 울리는 고풍스러운 재즈 OST를 동원하여, 푸른 하늘 아래 파도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해안을 따라 난 아름다운 산책길, 고풍스러운 책방과 어촌 마을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감독의 타고난 미적 감각과 열정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결과, 이 영화는 제32회 스페인 아카데미 시상식인 고야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코이젯트 감독은 영화 "The Bookshop"이라는 주제에 맞게 각 장면의 색채나 명암 또는 색조를 무겁고 어둡게 처리하여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과 같은 느낌을 준다. 아울러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자막과 함께 카메라가 작가의 의도가 담긴 엄선된 책들을 향해 이동하면서 관객을 자연스럽게 "The Bookshop"의 세계로 안내할 뿐 아니라 고전적인 재즈 선율을 배경으로 하여 카메라를 느린 수평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책과 관객이 혼연일체가 될 수 있도록 연결한다.
나아가서 영화에서 책과 인물 간의 상호 연관성을 연출하기 위해, 책이 등장할 때는 표지와 제목을 클로즈업하여 마치 등장인물의 얼굴과 이름처럼 강조한다. 한 예로 소설 ‘롤리타’의 경우, 그 책의 출간 소식을 알리는 대화 장면과 함께 크리스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책과 인물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이 영화 "The Bookshop"에서 플로렌스와 브런디쉬 사이의 연민의 정을 표현하는 감독의 촬영 기법은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코이젯트 감독은 이 장면을 바닷가 산책로에서 플로렌스가 브런디쉬의 손을 잡음으로써 존경과 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으며, 브런디쉬는 플로렌스의 손에 조용히 입을 맞추는 단순한 행동만으로 감정의 깊이를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영화 속에서 플로렌스 얼굴 뒷모습을 브런디쉬 얼굴과 살짝 겹치게 촬영 함으로써 두 사람이 마치 키스하는 것처럼 더 친밀하게 시각화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두 사람의 절제된 감정을 섬세하게 연출함으로써 그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플로렌스와 브런디쉬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브런디쉬의 죽음으로 비극적인 끝을 맺지만, 이 영상 기법은 영화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감독은 영화 "The Bookshop"의 촬영지로 1950~60년대 영국의 작은 어촌 마을인 하드버러를 택하였다. 이 바닷가 마을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답고, 맑고 푸른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하며, 특히 우거진 풀숲과 바위 사이로 난 해변 산책길은 캐릭터들의 감정과 이야기의 내용에 더욱 폭과 깊이를 더해 주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이 영화의 중심 무대인 올드 하우스를 낡고 고풍스러운 책방으로 꾸며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한편 관객에게 아늑함과 편안함을 주고, 주인공 플로렌스의 사랑과 추억, 인격이 담겨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모습은 눈여겨 볼만하다. 'The Old House Bookshop'이라는 간판과 책방 내부의 책 선정과 배열은 플로렌스의 책에 대한 열정과 책방을 지키려는 그녀의 조용한 신념과 용기가 묻어나는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관객들에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다 잔잔한 바다 물살과 회색 바람이 일렁이는 어촌 마을, 그 어귀에서 끼리끼리 모여 가십을 나누기도 하며, 때로는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고, 때로는 복잡하면서도 애환이 서린 인간관계를 반영하는 고풍스러운 영국적 분위기는 이 영화 속에 잔잔한 시냇물처럼 흘러내리는 1959년 당시의 복고적인 풍미를 전하는 재즈풍의 OST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감독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정서에 어울리는 음악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셋째, 이사벨 코이젯트 감독은 영화 "The Bookshop"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로 에밀리 모티머, 빌 나이, 패트리시아 클락슨이라는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영국 출신의 배우이자 각본가인 에밀리 모티머(1971.12.1.~)는 옥스퍼드 대학교 링컨 칼리지를 졸업하고 연극을 통해 연기 경력을 시작하여 그간 29편의 영화와 3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하여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영화 "The Bookshop"에서 에밀리 모티머는 영국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공 플로렌스 그린 역을 맡았다. 플로렌스는 어촌에서 책방을 열지만, 이를 방해하는 무리를 두고 책방을 지키고자 외로운 투쟁을 한다. 그 과정에서 책을 사랑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며 정리하기 위해 해변을 산책하는 브런디쉬라는 노신사를 만나 자기도 모르게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러나 플로렌스를 도와주던 브런디쉬가 불의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자, 플로렌스는 브런디쉬가 주문한 책을 안고 오열한다. 외에도 책방을 닫고 떠나는 장면에서 불을 지른 어린 크리스틴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 플로렌스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냄으로써, 마치 고전이 된 한 권의 책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골든글로브 수상자이자 영국 출신의 배우인 빌 나이(1949.12.12.~)는 지금까지 37편의 영화와 1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영화 "The Bookshop"에서 빌 나이는 플로렌스를 돕는 노신사 브런디쉬 역을 맡았다. 브런디쉬는 플로렌스의 책방에서 책을 주문하며, 책을 읽고, 산책하면서, 이 작은 어촌 마을에 어떤 책이 어울릴지 플로렌스에게 조언한다. 또한, 책방과 문화센터가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이올렛과 같은 무리에게 분노를 드러내며, 그녀의 계획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빌 나이의 연기는 그가 맡은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그는 브런디쉬 역을 통해 인간이 나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순수하며 고귀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품위 있고 절제된 연기는 관객들에게 조용한 감동을 준다.
미국 출신의 여배우인 패트리시아 클락슨(1959.12.29.~)은 지금까지 25편의 영화와 2편의 드라마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로 골든글로브 여우 조연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영화 "The Bookshop"에서 작은 어촌 마을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며 플로렌스를 쫓아내려고 하는 악녀 바이올렛 가맛 역을 맡아, 복잡한 캐릭터의 개성과 내면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몇 가지 함의
영화 "The Bookshop"은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첫째, 이 영화에 등장하는 플로렌스와 바이올렛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둘째, 동영상이 가까이 있고, 책이 멀리 있는 오늘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책에 대한 의미이다.
첫 번째 함의는 영화의 극적인 반전을 통해 답을 얻어낼 수 있다. 플로렌스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올드 하우스 책방'을 경영하였지만, 책방을 문 닫게 하려는 바이올렛의 모략으로 플로렌스는 끝내 책방을 닫고 하드버러를 떠나야만 했다. 표면적으로 바이올렛의 음모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플로렌스는 배를 타고 떠나는 순간 '올드 하우스 책방'이 화마에 휩싸이는 것을 목격한다. 바이올렛의 문화센터라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면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은 플로렌스가 진정한 승리자임을 가감 없이 알려주고 있다.
플로렌스의 꿈과 그녀의 도전 : 플로렌스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후 하드버러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책방을 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책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고, 이 어촌 마을 사람들과 삶의 희망을 공유하려는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올렛의 음모 : 바이올렛 가맛은 플로렌스의 책방을 문화센터로 바꾸고자 하며, 이를 위해 조카, 변호사, 은행가, 교육청,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플로렌스의 책방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세웠으며, 이 음모는 성공하였다.
책방의 종말과 반전 : 플로렌스는 모든 압박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책방을 닫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바이올렛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무너진다. 어린 소녀 크리스틴이 플로렌스를 배웅하기 전에 책방에 불을 질러 바이올렛의 문화센터 계획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플로렌스의 극적인 승리와 크리스틴의 성장 : 플로렌스가 배를 타고 떠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책방이 불타는 것을 목격한다. 크리스틴의 행동은 바이올렛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플로렌스의 도전과 용기에 대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아울러 영화는 플로렌스의 물리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이 성장하여 큰 서점을 경영함으로써 그녀가 뿌린 씨앗이 발아하여 열매를 맺었음을 보여주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 누구도 책방에선 외롭지 않다’라는 플로렌스가 남긴 말이 자막으로 등장하면서 플로렌스가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여 얻은 진정한 승리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함의는 이 영화를 통해 책만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영화는 자막으로 “책을 읽을 땐 그 안에 살게 된다”, “누구도 서점에서는 외롭지 않다”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고독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단어이다.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이 지나면 고독이 찾아온다. 이 고독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수단을 찾아 나서지만, 이 많은 수단 가운데 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책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그 속에는 벽과 천장이 있는 집이 있고, 갖가지 사람이 살고 있으며, 신과 인간이 공존하고,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영화 ‘북샵’에서 말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책 읽는 시간을 부질없는 시간으로 간주하고, 책으로 인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활자로 된 책보다는 만화와 동영상을 선호하고 질보다 양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택하더라도 대부분 순간의 즐거움이나 심심풀이 땅콩 수준의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 예로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관찰하면 대부분이 대화가 없고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 화투나 카드놀이나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간혹 소수가 신문을 보는 정도다. 그러나 성경이나 불경이나 고전을 보는 이들은 정말 가물에 콩 나듯 하다.
물론 독자가 어떤 책을 선택하는 가는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혹자는 성경과 불경 등 종교적인 책을, 혹자는 오랫동안 인간이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의 평가를 거친 고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간은 좋은 책을 통해 지식을 보태기도 하지만, 이보다 아름다움과 추함, 옳음과 그름을 구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색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신은 더 풍요로워지는 것을 영화 ‘북샵’과 역사적 인물로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책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먼저 플로렌스는 책을 통해 전쟁에서 죽은 남편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산책하는 동안에 실타래처럼 얽힌 책의 내용과 의미를 정리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며, 책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고, 그 희망을 이웃과 공유하려는 아름다운 꿈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노신사 브런디쉬는 이혼하고 큰 저택에서 혼자 지내면서 플로렌스처럼 책과 산책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결국 영화에서 이 두 사람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소통하고 연민의 정을 키우게 된다.
아울러 책을 싫어하던 어린 소녀 크리스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플로렌스가 자신에게 인생의 새로운 시작은 바로 책 한 권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권고를 받아들여 플로렌스가 추천한 착한 해적에 관한 소설 ‘A High Wind in Jamaica’를 꼭 껴안고 나온다. 어린 소녀의 손에 들린 그 책을 보며 마지막 미소 짓는 플로렌스의 모습을 크리스틴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나아가서 플로렌스의 불의에 도전하는 용기와 책에 관한 열정은 선물로 준 중국제 칠기 쟁반과 함께 이 어린 소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 나중에 크리스틴은 큰 서점을 경영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책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실증한 예는 차고 넘친다. 저속하고 천박한 책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과 탐욕을 자극하여 방탕과 타락으로 얼룩진 세속의 노예로 만들기도 하지만, 좋은 책은 타락한 인간이 잘못을 뉘우치고 인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아 후일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능하고, 역경으로 실망과 좌절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하며, 감정의 격랑으로 혼란을 겪는 인간에게 호수처럼 깊고 조용한 마음의 평정과 진정한 안식을 얻게 하는 역할을 한다. 타락과 방황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후일 좋은 책을 만나 그는 교회 역사에서 사도 바울 다음으로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성인이 되었다. 바로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 고독을 잊고 즐거움을 찾고자 호색과 타락의 길로 방황하였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내면의 황폐함과 고독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는 일찍이 한 여인과 동거하여 18세에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까지 낳는 등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2권의 책이 이런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나는 키케로(Cicero)의 ‘호르텐시우스’이다. 이 책은 19세의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진리 탐구의 문을 열도록 자극하였다. 다른 하나는 성경책이다. 한때 어거스틴이 방황하는 가운데 소리 내어 울부짖었다: “하나님, 왜 지금 나의 더러움을 벗어 버릴 수가 없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이때 어디선가 ‘Tolle lege’(들고 읽어라)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서 자신이 들고 있던 성경을 폈을 때 로마서 13장 13~14절이 나왔다. 그 구절은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에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했다. 그는 이 구절을 읽고 회심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정립한 이후,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놓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성인이 되었다.
결론
필자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플로렌스의 책에 대한 사랑, 브런디쉬에 대한 플라토닉한 연민의 정, 책방을 지키려는 용기 있는 도전, 최후의 승리자에게 안겨주는 월계수와 같은 마지막 반전 장면, 그리고 책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힘을 되새겨보게 하는 여운이 긴 영화였다. 이렇게 깊은 떨림을 주는 영화를 만든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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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옥고 감사드립니다. 책이 주 생활품으로 살아온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읽으면서 교수님은 영화에 대하여 혹은 영화평론에 대하여 '복수전공' 내지는 '부전공'을 하셨나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한 영화를 자세히 소개해 주심 뿐만 아니라 제작과장, 또 함축된 의미에 대해 짚어주셔서, 이 영화를 놓고 대화를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