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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를 통해 주신 말씀
마가복음 11:12-14
오늘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통해 주신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마가복음의 내용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주무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셨습니다.
그날 아침에 예수님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셔서 무척 시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가는 길가에 커다란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아주 큰 나무였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기대하고 무화과나무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때는 4월경으로 아직 무화과가 맺히는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때는 무화과가 열리기 전에 상품 가치가 없는 파게라는 작은 열매가 맺히는 때라고 합니다.
이 파게는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에 주인들이 따서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4월에 달리는 이 파게는 아무나 따서 먹어도 절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주인이 이 파게를 따주지 않으면 6월부터 10월 맺게 되는 맛있고 상품 가치가 있는 테에나라고 하는 무화가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서 찾았던 열매는 누구나 먹어도 되는 파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에는 그 파게의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파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무화과의 때가 와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파게의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는 그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날 저녁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베다니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예수님이 저주하셨던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부터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죽어 있는 나무를 보고 아침의 일이 생각이 나서 ‘.....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 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에서 첫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을 믿으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좀 엉뚱해 보이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선생님이 아침에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산도 바다에 던져지게 될 것’이고, 또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는 삶을 살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됩니까?
베드로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적절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1:22절의 헬라어 원문을 찾아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예수스 아포크리노 아우토스 레고 데오스 피스티스 에코’ 여기 사용된 ‘에코’라는 단어는 ‘소유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데오스 피스티스 에코’라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라.’라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말 성경에서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번역한 이 말씀은 오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가지신 그 믿음을 가지라.’라고 하셨는데, 성경 번역자들이 이 말씀을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잘못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라는 말씀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이 가지신 그 믿음을 가지라.’라는 말씀은 ‘전지전능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믿음을 너희도 가지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이해입니다.
마가복음 11:22절의 말씀을 이렇게 정리한 후 다시 읽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베드로가 아침에 ‘예수님이 저주하신 그 나무가 말라 죽어 있습니다.’라고 할 때, 예수님은 그래 너희도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너희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믿음을 가지고 ‘감람산이나 예루살렘 성전의 산을 향하여 바다에 던져지라.’라고 명령하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믿음을 가지되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신 말씀은 죄의 용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 죄가 어떻게 용서된다고 알고 있습니까?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죽어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가 용서된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죄 용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우리가 늘 암송하는 주기도문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우리는 늘 암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이 말씀의 요점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죄 용서에 대한 믿음을 ‘너희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런 다음에 주신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이 주시는 죄의 용서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너희는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 죄도 용서해 주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의 용서에 관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까?
야고보서의 말씀을 보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는 사람은 그 가지고 있다고 하는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죄의 용서에 적용시켜 보면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는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면, 이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죄 용서에 대한 믿음은 사실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죄는 늘 회개하며 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죄는 늘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이런 삶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두 번째 살펴볼 것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포도나무나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로 상징 되어 왔습니다. 호세아서 9:10절입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과 같이 하였거늘........,” 요엘서 1:6-7절입니다.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포도나무, 내 무화과나무라고 하시고 또 이방 나라들이 침략해 와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습을 포도나무를 해하고 무화과나무를 해하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렇게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때였습니까?
다니엘서 9:2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70 이레의 기한을 정해두셨다고 합니다. 이 70이레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해 가는 시기였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그때는 이 70 이레 중에 69 이레가 거의 끝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정해두신 69 이레는 끝이 나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해 가시는 시대는 끝이 나게 되고, 이방인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이방 교회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역사해 오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방교회를 통해 역사해 가시는 시대로 시대가 바뀌는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제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를 구원해 오시던 시대가 끝이 나고, 이제는 이방인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해 가시는 이방인의 때 즉 신약 교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때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유대인들의 때는 지나가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이방인의 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던 그 말씀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당시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던 그 나무가 저주를 받아 죽었던 것처럼, 당시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게 될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 것이,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오히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유대인만 편애하시고 이방인이라고 차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도 사랑하시지만 이방인들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때에는 유대인을 구원해 주시고, 이방인의 때에는 우리 같은 이방인들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면, 유대인들이 버려지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이방교회 시대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림의 때가 오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가 되면 초림 때와는 반대로 이제 이방인들의 배교가 있게 되고, 유대인들이 다시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재림이 아주 가까이 이른 시대입니다.
지금은 2,000년 이상 계속되어 오던 이방인의 때 즉 교회 시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교회 시대 끝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인 재앙의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 재앙의 심판이 끝나게 되면,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방인의 때도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
인 재앙의 시대가 끝이 난 후에는 7년 동안 나팔 재앙의 심판이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데, 이 7년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남겨 두신 마지막 한 이레가 될 것입니다. 이때에는 초림 때와는 정반대로 이방인들의 배교가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를 운영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류 역사를 운영해 나가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33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끝이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종말 장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마태복음 24:32절 말씀을 보면 다시 이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우리 말 성경에서는 이 32절 말씀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문을 보면 헬라어 από(아포)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번역하고 있지 않으나, 이 단어를 번역하고 있는 N.I.V 성경이나 킹 제임스 버전 성경에서는 ‘이제 그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지목하고 있는 그 무화과나무는 어떤 무화과나무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 무화과나무는 바로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저주하심으로 뿌리째 말라 죽었던 그 무화과나무를 말합니다.
그러면 그 말라 죽었던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 말라 죽었던 그 무화과나무가 다시 가지를 내고 잎을 내면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전에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나라가 없어져 버렸는데, 이제 그 이스라엘이 다시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죄의 값을 지고,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약 2,000년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던 유대인들이 1948년 5월 14일에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다시 건국을 선포하고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를 세움으로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죽었던 무화과나무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대로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 주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말씀을 믿는 신앙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신앙입니다. 이 말씀 중심의 신앙 위에 견고히 서서 믿음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예언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목도한 그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그 세대 사람들이 다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이방인의 때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때가 끝이 나면 유대인들이 다시 구원을 받게 되는 그 남아 있는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한 이레 동안 아주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때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7년의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하며, 평화조약에서 약속하고 있는 평화를 보증하게 될 것입니다. 또 이때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제3성전이 세워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시대처럼 성전에서 각종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평화조약을 맺은 그 7년의 중간쯤에 우리가 유브라데 전쟁이라고도 부르고,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도 부르는 핵전쟁이 일어나서 인류 1/3이 죽게 될 것입니다. 인류 1/3이 죽게 되는 그 전쟁의 규모가 여러분들은 상상이나 되십니까?
이 참혹한 유브라데 전쟁 후에 적 그리스도는 그 본색을 드러내어서,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강압적인 통치를 하며, 자기를 경배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곳곳에 짐승의 우상을 세워놓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할 것입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짐승의 나라 백성이라는 표시로 666이라는 짐승 표를 받게도 할 것입니다. 이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매매를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때 이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이미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예비 처로 피신한 때입니다. 성경은 이때까지도 미처 예비 처로 피신하지 않은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짐승을 경배하고 3년 반 동안 더 살다가 지옥 가든지, 짐승을 경배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고 죽어서 천국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은 꼭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 중에 누군가가 이때까지 예비 처에 가지 못하고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오늘 들은 이 말씀이 생명으로 인도해 주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살기 어려운 시대이든지, 이 시대가 조그만 더 오래 지속되면 육체로 구원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이 한 사람도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육체로 구원을 받아 휴거 되어 올라갈 성도들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환난의 시대를 3년 반으로 감해주셨다고 합니다.
이 3년 반이 지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인류 역사는 끝이 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종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종말 시대를 알려주고 있는 ‘징조들’입니다.
금년은 이스라엘이 독립한지도 벌써 76년이 되는 해입니다.
생명보험사에서 생명보험 가입자를 중심으로 조사한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수명은 86.7세, 여성의 평균수명은 90.7세로 조사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평균수명이고 이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100세가 넘었는데도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세대를 100세로 보아도 예수님의 재림의 때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재림이 임박한 시대라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면 이런저런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들대로 ‘종말의 징조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가 종말이 임박한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박한 종말을 알려주는 첫 번째 징조는 미혹입니다.
마태복음 24:4-6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흰 말로 상징되는 미혹의 역사가 종말 시대의 첫 징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이 미혹의 시대는 아주 긴 시간 동안 계속되기 때문에, 미혹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종말이 임박했다고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미혹의 역사가 있을지라도 ‘아직 끝은 아니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미혹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재림하신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약 4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자기가 성령이라고 하고 보혜사라고 하는 사람도 여럿이 있고, 예수님이 인류 구속 사역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자기가 다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온 메시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여럿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알려 주셨다고 하며 그 날을 예언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이 계속 있어 왔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144,000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계속 있어 왔습니다. 이런 미혹의 역사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임박한 종말을 알려주는 두 번째 징조는 전쟁, 기근 전염병의 창궐입니다.
마태복음 24:7-8절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는 말씀은 전쟁에 대한 말씀입니다.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은 기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는 누가복음 21장이나 요한계시록 6장의 말씀을 보면 온역 즉 전염병의 창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다.”라고 합니다.
전쟁, 기근, 전염병의 확산이 종말 시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중요한 징조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까지 계속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전쟁이 어떻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인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습니까? 나토의 동진 전략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자국의 안위를 위해 일으킨 전쟁입니다. 이 전쟁이 더 확산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에는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나라들 사이의 국가 간의 전쟁으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또 지금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유대민족과 아랍민족 사이에서 일어난 민족 간의 전쟁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하고 있지만, 이 전쟁이 발전하면 결국에는 이스라엘과 그 배후에서 지원하는 나라들과 아랍과 그 배후에는 지원하는 나라들 사이의 전쟁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쟁은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이 전쟁이 발전해 나간 모습이 요한계시록 6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붉은 말의 전쟁입니다.
이 붉은 말로 상징되는 이 전쟁과 이 전쟁으로 인한 발생한 기근으로, 전염병의 확산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인류의 1/4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6:8절입니다. ‘....... 그들이 땅 1/4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여기서 부터는 제 개인적인 견해가 조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붉은 말 전쟁으로 혼란해진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는데 10개국의 서방 선진국들입니다. 이 10나라들은 붉은 말 전쟁이 가져다주는 참혹한 결과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10나라 힘을 합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한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얻게 된 그 강력한 힘으로 전쟁이 없는 시대, 평화의 시대를 이루어 가려고 할 것입니다.
이 10개국을 등에 업고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적 그리스도입니다.
적 그리스도는 중동 평화 회담을 주선하고,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평화조약을 맺게 하면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약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맺어진 7년 평화조약은 한 이레의 절반쯤에 무효화 되고, 또 다시 요한계시록 9장에 나오는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전쟁을 우리는 유브라데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쟁은 인류가 핵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 제3차 세계대전이 될 것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류 1/3이 죽게 된다고 합니다.
유브라데 전쟁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하여 적그리스도가 10개국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를 등에 업고 일어나,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 모든 국가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세계 단일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이때부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후 3년 반 즉 환난의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전쟁이 더 남아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하늘 군대와 이를 대적하는 마귀와 악한 영들과 적 그리스도와 그의 군대가 싸우게 되는 영계와 육계가 함께 어우러져서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신 예수님이 마귀와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심으로 이 세상 역사는 끝이 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후 3년 반인 1,260 일이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1,290일까지 즉 30일 동안은 하나님께서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귀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고 세상의 신으로 역사하고 있었던 죄악 된 세상을 불태우시게 됩니다.
이 30일이 지난 이후에 1,335일까지 즉 45일 동안은, 하나님이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시게 됩니다. 이렇게 창조하신 그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세워지는 나라가 바로 메시야 왕국 즉 천년왕국입니다.
이 천년왕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은 이 천년왕국의 왕으로 들어가셔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시게 됩니다. 둘째는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순교자들이 들어갑니다. 이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서 예수님처럼 부활 체를 입고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자기에게 맡겨진 지역을 다스리는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셋째는 후 3년 반 환난의 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 처에 가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성도들입니다. 이 성도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 하여서 육신을 가진 채로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어 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자녀를 낳으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왜 이 세 부류의 사람들만 하나님이 주신 천년왕국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온 모든 사람들은 그 살아가는 삶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 믿음에 따르는 어떤 보상을 받으며 살았습니까?
이삭을 보십시오. 야곱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산 모든 사람들에게 그 믿음에 따르는 보상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믿음에 따르는 보상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은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을 세상에서 받지 못하고 고난 당하는 삶만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으로 오사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고난 받으시고 희생하셨지만 그 믿음으로 산 삶에 대한 보상을 세상에서 받으며 사신 일이 없으십니다. 순교자들을 보세요. 순교자들도 그 가지고 살았던 믿음에 대한 보상을 그 삶 속에 받았습니까? 보상은 커녕 매 맞고, 고난당하고, 순교 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휴거한 성도들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그 믿음의 삶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보상은 고사하고 후 3년 반 환난 중에 살아남기 위하여 남다른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살아온 그 삶에 대한 보상을 이 세상에서 주지 못하시고 특별히 천년왕국에서 주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없어도 무방한 나라인 천년왕국을 예비하시고 예수님과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은 천년왕국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릅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죽어서 그 영혼이 낙원에 가 있다가, 백 보좌 심판을 앞두고 영체를 입고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얼마나 간단합니까? 보통 사람들은 다 이 과정을 거쳐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과정 사이에 특별히 천년왕국을 넣어두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평생 동안 믿음으로 고난 당하는 삶만 살고, 이 세상 속에서는 그 믿음으로 산 삶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산 예수님과 순교자들과 휴거하게 될 성도들에게, 그 믿음으로 산 삶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시는 장소로 예비하신 곳이 바로 천년왕국입니다. 이 사람들은 천년왕국에서 천년 동안 살면서 세상에서 누려보지 못한 믿음의 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7년대 환난 즉 전 3년 반인 1260일이 지나고, 후 3년 반인 1260일이 지나게 될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순교자들을 부활시키시고, 다음에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남은 성도들을 휴거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활한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려 올려놓은 후에, 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을 불태우시는 심판을 행하심으로 성도들은 하늘 즉 그 불타는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타고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불타는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1,260일에서 시작하여 1,290일까지 즉 30일 동안 심판을 받아 불타는 세상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1,335일까지 즉 45일 동안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지켜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천년왕국을 세우시면, 성도들은 그 나라에 들어가서 천 년 동안 믿음으로 산 삶의 보상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단번에 죄악 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으시며, 또 단번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그곳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30일 동안 순교자들과 휴거 한 성도들이 불로 심판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고, 왜 또 45일 동안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천년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 어디에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단번에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이 30일 동안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시고, 이후 45일 동안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모두 목도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과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은 종말 시대에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욕먹고, 비난받고, 고발당하고, 무시당하고, 매 맞고, 심지어 거짓으로 재판 당하고, 잘못된 판결을 내려서 형벌당하고, 심지어 재산을 다 빼앗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각종 악행 들을 당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아픔과 그 억울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아픔이 얼마나 크고 아팠으면 요한계시록 6장에서 순교자들이 자신들이 당한 억울함을 ‘하나님이 신원해 주시기를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조금 기다리라 동무 종들이 순교하고 나면 함께 신원해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기억을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년왕국에서의 삶이 행복하기만 한 삶이 되겠습니까? 성경은 천년왕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이전에 아픔들이 이전의 나쁜 기억들이 전혀 기억되지 않는 삶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하게 됩니까?
우리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세상에서 나쁜 일을 당하지 않고 살게 됩니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그 모든 아픔들을 우리들도 다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믿음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당하지 않아도 될 애매한 고난까지 당하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와 세상 사람들의 다른 점은 세상 사람들은 그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고 다짐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릅니다. 우리에게 사기치고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우리는 세월이 조금만 흘러가면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사실은 알고는 있고 기억하고 있지만 내게 위해를 끼친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은 없어진지 이미 오래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지나온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운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마음을 치유해 주셨듯이 우리들의 마음도 치유해 주시고 회복케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장차 하나님께서 순교자들과 휴거한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30일 동안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를 아프게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고 빠짐없이 심판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아픈 기억들을 다 치유해 주셔서 조금의 미운 마음도 없이 우리들이 천년 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를 위해 30일 동안 우리 앞에서 죄악된 세상을 불태우시는 심판을 하십니다.
또 단번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45일 동안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대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고 난 후에 불태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 나가시는 그 45일 동안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어떻게 창조되고 조성되는지를 똑똑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한 억울함 들을, 하나님이 30일 동안 세세하게 밝혀내어 심판해 주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때로는 나도 모르고 당하였던 아픔들까지 하나님이 낱낱이 추적하고 들추어내셔서 심판해 주시고 있는 그 모습을 우리가 직접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전지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나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의 죄를 다 들추어내어 심판해 주시는 것을 인하여 감격하고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나쁜 기억들이 다 해소되고 더 이상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고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 심판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그 현장에 집적 참여하여서 보게 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파노라마처럼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가 나를 위해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감격하면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런 은혜를 계획하고 그런 은혜를 내게 베풀어 주고 계신 하나님을 은혜가 너무나도 황송하여서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감사하고 경배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그 왕국을 여러분들에게 주실 때 우리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왕국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은혜로 인해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세토록 경배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천년왕국을 삶의 터전으로 주실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어떤 상을 받는 것 보다 더 감사와 감격이 크지 않겠습니까?
인류의 시조 아담은 이미 창조되어 있는 세상을 받아서 누리며 살았습니다.
아담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 세상 속에 하나님의 어떤 은혜가 담겨 있는지 하나 둘 깨달아 갔습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에 들어가 살게 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 나가시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직접 보고, 그 창조 속에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담아 주시는지를 직접 보고 깨닫고 감격하면서 45 동안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또 그렇게 창조하신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은 천년왕국을 세우고, 그 왕국을 자신들에게 은혜로 주실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큰 감격이 일어나고 얼마나 큰 감동이 밀려왔겠습니까? 이미 창조된 에덴동산을 받았던 아담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으로 그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들은 세상의 나쁜 기억들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들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만을 기억하며 천년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천년왕국이 종말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왕국입니다.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 천년왕국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 시대의 극한 고난을 이기게 해 주고, 종말 시대에도 성도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끝으로 이 천년왕국은 예수님과 순교자들과 휴거 하여 올라간 성도들만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이 천년왕국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이런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노아도, 다윗도, 베드로와 바울도 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오직 종말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순교한 성도들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육체로 살아남아 휴거 하게 될 성도들만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종말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순교하거나 믿음으로 살아남아서, 하나님이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이 모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아주 가까이 이른 때, 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한 시대입니다.
저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또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이런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지, 살 수 없는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것은, 아직 젊은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목도 하게 된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고 살아남아서 휴거 하는 성도들로 예수님을 만나시거나, 아니면 종말 시대의 환난 날에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순교자로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왜요. 이 두 부류의 성도들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천년왕국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가족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 위에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세우고 살아서, 여러분이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시는 천년왕국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되시고, 또 하나님께서도 이 특별한 복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 모두에게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