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40
유안진 시인
김 송 배
-주어에도 있지 않고 / 목적어에도 없다 // 행간에 떨어진 낟알 같은, 떨군 채 흘린 줄도 모르는, 알면서도 주워담고 싶지 않은, 그런 홀대를 누리는 자유로움으로, 어떤 틀에도 어떤 어휘에도 담기지 못하고. 어떤 문맥 어떤 꾸러미에도 꿰어지지 않는, 무존재로 존재하며 // 시간 안에 갇혀서도 / 시간 밖을 꿈꾸느라 / 바람이 현주소다 / 허공이 본적이다.-
2004년 10월, 창비시선 240으로 발간된『다보탑을 줍다』에 수록된 작품「주소가 없다」전문이다. 유안진 시인의 고고한 어조(語調)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좋아한다.
유안진 시인은 1980년대 초반에 심상해변시인학교와 심상사 주변에서 또는 목월시인 추모행사 때 자주 만났었다. 당시 목월 시인 제자들이었던 이 중, 허영자, 오세영, 신규호, 유승우, 이건청, 신달자 시인 등과 미망인 유익순 여사와 아들 박동규 교수와 함께 유안진 시인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심상』출신으로 직계제자는 아니지만, 목월 행사에 동참하면서 그와 친히 지낼 수 있었는데 그후 목월 직계제자들에게는 ‘목월회’가 있었으나 목월 시인 타계후에는 제자가 배출되지 않아서 모임 운영에 애로가 있었는지 심상출신 시인들과 함께 ‘목월문학포럼’으로 재편해서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4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 교육심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1967년에 『현대문학』에「달」「위로(慰勞)」등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문채(文彩)]와 [여류시]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대체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기독교적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 신(神)에의 갈구와 자신의 완성을 희구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국문예사전』(어문각 발행)에 게재하였다.
그 후 시집으로는 『달하』『절망시편』『물로 바람으로』『그리스도 옛애인』『달빛에 젖은 가락』『날개옷』『월령가 쑥대머리』『영원한 느낌표』『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누이』『범비 한 주머니』『다보탑을 줍다』『거짓말로 참말하기』『걸어서 에덴까지』와 시선집『빈 가슴을 채울 한 마디 말』등 다수, 그리고 중국어 번역시집『春雨一袋子』, 장편 민속소설집『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다시 우는 새』『땡삐 1,2,3,4』, 산문집『지란지교를 꿈꾸며』『축복을 웃도는 것』『딸아딸아, 연지딸아』『도리도리 짝짜꿍』등 많은 문학 저서를 발간하였다.
이러한 공적이 인정되어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화상, 이형기문학상, 유심문학상, 구상문학상과 올해에 한국시협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마산제일여중고, 대전호수돈여중고 교사와 서울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강사,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단국대,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다.
나는 하나은행에서 매년 실시하는 여성글마을잔치에서 박동규 교수의 추천으로 유안진 시인과 함께 심사를 몇 년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더욱 박교수와 셋이서 나눈 덕담이나 문학정담을 통한 다정다감한 그가 큰 누나처럼 여겨지기 해서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몇 년전에는 내가 주재하는 청송시인회 월례모임에 초청시인으로 모셔서 문학특강을 듣고 회원들이 감도한 바가 있다. 그는 ‘학문과 문학, 교수와 시인과 주부, 직장과 가정, 나는 왜 이렇게 무거운 분야를 지분거렸을까?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까? 능력은 커녕 체력조차 달리고, 건강은커년 옛적부터 골골해온 주제 꼴에 몇 가지 전공에 짓눌려야 하다니? 게다가 남들 하는 것 다 해보고 싶어서 결혼도 하고 애들까지 낳았으니, 생활이란 저절로 엉키고 뭉개는 지경이 될 수밖에’라는「잘못의 덕을 보며」(에세이집『향기여 사랑의 향기여』에 수록)를 인용해서 문학을 옹호하고 있었다.
지난 5월호 『심상』에는 ‘김송배 시 읽기 코너’를 만들어 유안진 시인의 시를 감상하기도 했다.
비빔밥 / 섞어찌개 / 잡탕 / 짬뽕 / 라뽁기......... / 국적 인종 종교 의식주 ......까지 뒤범벅에다 // 아날로그 디지털 디지로그라 하네마는 // 오래 전 꿀꿀이죽도 융합이고 통섭이었거늘-「온고지신(溫故知新)」전문-(『유심』 2012년 5,6월호)
공자가 말했다.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라고 논어(論語)에서 말했다. 옛 것과 새 것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예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지식이 없다면 오늘의 새롭고 다양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교훈이 담긴 고사(故事)이다.-중략- 이러한 진실의 일부가 ‘溫故知新’이란 표찰을 달고 유안진 시인의 시적 원류에 동참함으로써 작품으로 그 명제 속에 꿈틀대는 의미를 분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안진 시인의 일상적인 편견이 아니라, 가능한 이미지의 결합으로 ‘융합’과 ‘통섭’에 대한 결론으로 흡인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융합(融合)과 통섭通涉)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녹여서 하나로 합치거나 서로 사귀어서 내왕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삶에서 서로의 이해와 화해가 변해야 하는 진정한 희구와 갈망이 전제되고 있다. 이처럼 시어의 조합에서도 일상적인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단의 일부를 나열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교감이 더욱 실감나게 독자들과 동행하기 위한 시법이라고 판단되는데 ‘비빔밥 / 섞어찌개 / 잡탕 / 짬뽕 / 라뽁기....’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이미 익숙한 식사메뉴에서 상기하는 옛 것(溫故)이다.
어쩌면 사소한 이런 것들도 우리들의 미각(味覺)을 혼란시키거나 생활의 패턴을 다양하게 교란할 수도 있다는 데 유념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국적 인종 종교 의식주....’ 등에서도 ‘뒤범벅’이 된 현실이 어떻게 융합하고 통섭할 것인가 하는 지적 혜안(慧眼)에서 탐색된 고도의 주제의식을 엿보게 한다.
또한 현대의 사회적 현실로 등장하는 ‘아날로그 디지털 디지로그’ 등의 복잡다단한 생활 속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들과 어떤 방식으로 서로 융합하고 통섭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해법을 우리들의 상상력에 던져주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연약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군부대 막사 주변에서 겨우 얻어 요기를 채우던 ‘오래전 꿀꿀이죽도’ ‘온고’의 범주에 해당하고 이를 통한 ‘지신’을 생각하게 하는 값진 상상력과 비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시를 공자 앞에서 문자 쓰듯이 감상문을 써서 발표했다. 그의 반응은 아직 전해 듣지 못했으나 나는 그를 존경하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반응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난 국제 펜 경주대회에서 잠시 인사만 나누었으나 좀더 많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이 해도 막바지에 다달았어요.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