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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이길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실천방안
--시집 『지워진 흔적 남겨진 여백』
이승하(시인ㆍ중앙대 교수)
김송배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을 내고자 준비 중이다. 1983년에 등단했으니 등단한 지 37년이 되었다. 3년에 한 권씩의 시집을 내 온 셈이다. 이번 시집은 산수(傘壽)를 몇 년 앞두고서 인생을 총결산하려는 의미가 크다. 시집을 읽으면서 해설자가 느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시편이 쌓였기에 묶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정점을 한 번 찍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이 느껴진다. 제일 앞머리에 놓인 시부터 찬찬히 읽어보자.
나는 본래 바람이었다
정처 없이 불어 다니는 무숙자(無宿者)
언제나 별빛 한 줄기에도
흔들리며 눈물짓는 허수아비였지
나는 사랑을 모르고
그냥 내달리는 논펄에서
어눌한 한 줄기 가난의 생명줄만
겨우 영위하던 방랑자의 후예
―「바람의 편린」 전반부
일종의 자화상으로 읽히는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을 ‘바람’과 ‘무숙자’라 칭하고 “가난의 생명줄만/ 겨우 영위하던 방랑자의 후예”라고 설명한다. 바람은 정해진 거처가 없는 나그네이다. 또한 이름도 없다. 태풍은 이름이 있지만 시인은 대체로 세속적인 명성이나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존재이다. 게다가 직업군 중에서 제일 가난한 이가 시인이라고 한다. 원고료 안 주는 문예지도 많으므로 시를 써서 돈을 버는 이는 대한민국에 10명도 되지 않는다. 뒤에 논의하겠지만 김송배 시인은 경남 합천의 한 농사꾼 집안의 둘째아들이다.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고, 성인이 된 이후 시를 쓰면서 적수공권의 삶을 영위해 왔다.
누구나 밝은 태양을 기원하지만
후줄근한 몰골에서 풍기는 절망의 눈빛은
지금도 하염없이 밀려다니는 바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자화상은
언제쯤 어디에서 안착(安着)할 수 있을까
착목(着目)하는 사물마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내뿜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쩔 수 없는 바람이다.
―「바람의 편린」 후반부
바람이기에 나는 어디에도 안착할 수 없는 존재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시집을 통독하면 김송배 시인은 정처 없이 떠도는 무숙자의 기질을 갖고 있지만 사람(문우와 제자들일 게다)이 너무 좋아 오늘도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주의자의 성향을 또한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바세계는 어떤 곳인가.
현실은 나에게 굴종(屈從)을 강요한다
현실은 언제나 매우 가혹하다
정서의 환기도 먹통이며
생물적 의식주도 냉정하게 거부한 채
무섭게 얽어매려는 유혹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은
긍정도 아닌,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행보
쾌감과 도취의 감도에서 탈출할 수가 없다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인간사 어지럽다
―「초연(超然)을 향하여」 부분
화자의 현실인식은 아주 부정적이다. 특히, 정서의 환기가 먹통인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 속에서 화자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행보”를 하고 있다. “이해득실의 타산은 강물에 띄워버리고/ 토굴 속 어둠과 좌선으로 참선을 해야 하나” 하는 구절에 요즈음의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 김송배 시인은 조계사 불교대학을 수료한 재가불자이다. 그래서인지 무중력일 때 ‘초연’은 홀연히 나타난다고 하면서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해탈할 때의 광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붓다는 여러 날 첨선을 하고 있다가 새벽하늘의 별(금성)을 보고 전광석화처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초연, 즉 초월을 지향하는 시인의 세계관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영혼과 함께 영원히 안주할/ 허술한 토굴 하나를 지금까지 파고 있었다”(「영혼의 토굴」)고 고백하거나, “바람으로 구름으로/ 자비를 풀어 영혼을 감싸 안아/ 저 명민한 지혜의 나래를 펼치”(「묵음시첩 3-불탑」)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해탈의 순간을 꿈꾼다. 고향 합천에는 해인사라는 고찰이 있는데 시인의 고향이 합천인 것도 이러한 종교적 성찰의 세계로 유도한 원인(遠因)이 된 것이 아닐까.
영겁의 지혜 신비의 메아리는
가야산 영봉 서운(瑞雲)으로 감돌고
해인사 팔만대장경 은은한 독경 소리
홍류동 계곡 무지개로 어리어
오늘도 합천호반에서 영롱한데
아, 함벽루에 풍류를 새긴 시인 묵객들
고고한 선비의 흔적들만 유장한가
용주골 산중 황계폭포 안개 물보라
온유한 합천 사람 영혼으로 비상한다
―「합천」 부분
이 시에서 불교와 유교는 반목하지 않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은은한 독경 소리”는 시인의 인식의 지평을 영겁의 세계로 넓혀주었다. 합천의 수려한 풍광은 현실 치세에 나선 선비들을 키워내는 데 일조하였다. 게다가 그 선비들은 풍류를 알고 시ㆍ서ㆍ화를 알았다. “백 리 벚꽃 길 따라 황강물로 흘러보라/ 열일곱 골골마다 흥겨운 풍년가”에 이르면 마을 자체가 한 권의 시집인 합천이다. 고향마을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 봄이 오면 해설자도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것이다.
시인의 근황 몇 편에서 시를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별 하나 줍는 것처럼/ 별시 한 편 건지기도 어렵다”(「근황 1」)고 하거나 “건져 올리지 못할 심원(心願) 가득한/ 시혼의 절규가 용틀임 친다”(「근황 2」)고 하면서 자신의 근황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좋은 시에 대한 열망을 피력한 것이 이채롭다. “서두를 일이 없다/ 천천히 만사(萬事)를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연습이 필요한 때”(「근황 5」)라고 다짐하기도 하지만 요즈음 들어 고독감을 부쩍 느끼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하다는 거, 우수에 젖는다는 거 그래서 괴로워하다가 어쩔 수 없어서 남은 시간을 스스로 버리는 거 누구도 누구네도 이 무서운 병, 옹두리를 치유하지 못한다 ―「근황 3」 부분
나이가 ‘산수’에 다가간다는 것은 친구들이 하나둘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향의 친척과 지인, 문단의 동료, 문단 선ㆍ후배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도 그들의 대열을 따라 아주 멀고 알 수 없는 세계로 가게 됨을 불현듯이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인은 고독감을 떨쳐버리려고 시를 쓴다. 어디론가 바삐 떠나가는 시간만 탓하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시인은 고향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을 한다. 연작시 「흔적」 7편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제서야 가난에 찌들었던 옛 시절
눈물 마르지 않던 아픔의 흔적을
조심스러이 얘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뒷동산에 올라 별들에게만
뜨겁게 뜨겁게 흐느끼던 유년들이
아아, 희수(喜壽)가 넘고서야
그때의 슬픔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흔적 5」 부분
“가난에 찌들었던 옛 시절”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먼저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 한 많은 삶으로 한 생을 다스리셨습니다”라는 구절에 나와 있듯이 아버지가 좀 일찍 세상을 버린 데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편에 걸쳐 전개된다.
일제 막바지 히로시마 원자탄을 피해
미리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맨손으로 초가삼간을 손수 지어셨다
흙벽을 바르고 창호지로 문을 발랐다
흙담을 쌓고 싸리울타리도 둘렀다
우리들의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안채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보릿고개에 훑어온 청보리 알맹이와
뒷산에서 뜯어온 풋나물로 밥을 지어
마루에서 온 식구가 끼니를 때웠다
―「흔적 1」 부분
일본에서 귀국한 아버지가 일군 땅, 즉 변변한 전답이 고향에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삶이 먹고 사는 문제가 전부였던 시절”(「흔적 2」)에 “아버지의 헛간에는/ 자질구레한 살림 기구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늘려 있었다”(「흔적 3」). 농사꾼 아버지에게는 큰 즐거움이 있었으니 읍내 장에 갔다 들이켜고 오는 탁배기 한 사발이었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시인도 애주가이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술기운이 오른 아버지가 등장하는 시를 보자.
여름이면 앞마당 감나무 밑 평상에서
숙제를 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툭툭 풋감 떨어지는 소리에
복실강아지가 컹컹컹 짖었다
밤에는 바랭이풀 캐다가 모깃불을 피웠다
읍내 장에 갔던 아버지가 탁배기 한 사발에
어험, 어험, 갈지자걸음으로
밤늦게 마당에 들어선다
손에 들린 것은 간 배인 갈치 몇 토막이다
하루 종일 장터에서 헤매다가 돌아와서도
논배미 물꼬 걱정이 앞선다
―「흔적 5」 부분
김송배 소년이 마당 평상에서 숙제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 시간의 무시무시한 힘이여. 남가일몽(南柯一夢)처럼 덧없는 우리 인생이여. 그래서 시를 쓰고 있는 것이려니. 그래서 시인이 되어 “이승을 떠난 부모형제의 애절한 노래가/ 조금씩 지워져 가는 세상에서/ 지난날 헐벗었던 궤적들이 그립습니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려니. 가족의 이산도 가난 때문이었다. 지금 젊은 세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궁핍의 정도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절대빈곤이라는 것. ‘입에 풀칠한다’는 말의 뜻을 동네 편의점마다 컵라면이 쌓여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가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청보리 훑어 죽 한 사발 올려놓고
한숨짓는 어머니와
농주(農酒) 한 대접으로 시름 달래던
무뚝뚝한 아버지
고향집과 농토 팔아서 도시로 떠난
초라한 뒷모습의 형님
그리고 돈 벌어 잘살겠다고,
못 배운 한으로 보따리 싼 동생은
이미 이 세상 밖 먼 길 떠나버렸다
―「흔적 6」 부분
세월이 흘러 부모형제 다 세상 떠나고 “이제 덩그러니 나 홀로 남아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보니 회억에 사로잡히곤 한다. 게다가 그 초가삼간마저 불이 나서 “도민증에 붙여진 아버지 사진이/ 반쯤 타다가 물에 젖은 채/ 마당 한구석에 쓰레기로 버려졌”(「흔적 7」)으니 아버지를 여읜 슬픔이 배가된다. 다행히 환히 웃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은 남아 있나 보다. “하마터면/ 오늘도 별로 반짝이는 부모님 존안(尊顔)을/ 잊을 뻔한 불효로 눈물 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집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시간이 파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리라. 삶이란 지우는 것이면서 동시에 남기는 것이다. ‘남김’의 표상은 바로 시집이다. 기억은 토막토막 끊어지거나 지우개가 연필로 쓴 것을 지우듯이 지워질지라도 시는 남는다. 시집 『지워진 흔적 남겨진 흔적』은 남는다.
제2부의 시는 ‘黙吟詩帖’이라는 제목으로 묶여졌다. 아마도 스님들이 동안거와 하안거를 하면서 오랫동안 묵언 참선에 드는 것처럼 시인도 나름대로 시 쓰기를 묵언 수행의 일환으로 생각하고서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닐까. 불가에서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하여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할 말이 달리 없다고 했지만 시인은 시로써밖에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가 없다.
계절 따라 형형색색의 자태 뽐내어도
묵시(默示)로 오늘도 좌선(坐禪)하는 기품(氣稟)
아아, 그의 깊은 속내는 끝내 알 수 없는가.
―「묵음시첩 1」 부분
청산을 노래한 첫 번째 시다. 청산은 아무 말 없이 좌선하는 기품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삭이지 못한 어떤 혈류가/ 무겁게 용틀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사실 산은 멀리서 보면 고요한 것 같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식물은 식물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곤충은 곤충대로 적자생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중이다. 청산은 수천 년을 묵상으로 앉아서 시인에게 말을 건넨다. 그중 하나가 고사목이다. “천년 세월 풍상에서 해탈하여/ 그 흔적마저 지워져 가는 영혼/ 아직 삭지 못한 한을 풀어내는 영혼”(「묵음시첩 2」)을 가진 고사목도 시인에게는 묵음으로 가르침을 주는 고승이나 마찬가지다. 불탑을 화자로 삼은 시에서도 시인은 존재의 의미와 생의 구경(究竟)을 탐색하고 있다. 이 시에서 불탑은 너희들(사람)에게 왜 이렇게밖에 못 사느냐고 꾸짖는다.
너희들의 가엾은 서원(誓願)의 호소를
내 너무 잘 알고 있느니
오오, 백여덟 바퀴의 간절한 그 무엇이
바람으로 구름으로
자비를 풀어 영혼을 감싸 안아
저 명민한 지혜의 나래를 펼치노니
돌아가거라, 다 속세로 돌아간 자리
나는 다시 무아(無我)로 남아
영원을 너와 함께 머물 것이로니.
―「묵음시첩 3」 부분
이 시는 시집의 모든 시편 중에서도 최고 절창이 아닌가 하는데, 불탑을 관찰이나 관조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화자를 불탑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절에 가서 절도 하고 탑도 돌고 시주도 하는데 의인화된 불탑은 사람들이 좀 딱하다. 빌어서 구할 수도 있지만 사람 가운데서 추구해야 이룩할 수 있음을 불탑은, 아니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즉, 비원(悲願)보다 중요한 것이 실천임을 말해주고 싶어서 쓴 시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바위에 빗대어 이렇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나는 항상 울먹울먹 눈물 머금은 채
하늘 우러러 살겠습니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무심코 내 몸을 손으로 만지거나
흙발로 툭툭 차면서 외면하더라도
나는 인내를 내세우며
용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더러는 비바람 내리치고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쳐
내 육중한 육신을 가눌 수 없어도
나는 영혼을 위한 무상(無想)의 세계
그를 닮은 구름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묵음시첩 7」 전문
바위를 본받아, 바위처럼 살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으므로 일종의 자경록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이다. 슬픔일랑 안으로 삭이고, 인내하며 용서하며, 무념무상의 경지로 살고 싶은 것이 시인의 소망이다. 바위만이 배움의 대상이 아니다. 삼라만상이 다 시인의 스승이다. 들길(4), 섣달 그믐달(5), 빈집(6), 보름달(8), 깃발(9), 장승(10), 폐선(11), 솟대(12), 서낭당(13), 허수아비(14), 가로등(15), 오솔길(16), 나목(17), 헌 구두(18), 헌책방(19), 폐묘(20), 용문사 은행나무(21), 블랙홀(22), 지우개(23), 이정표(24), 그림자(25), 자물쇠(26), 은하수(27) 중에서 은하수가 제일 크고 지우개가 제일 작다. 다 언급할 수는 없고 시인의 체취가 느껴지는 자기고백적인 시를 몇 편 읽어보도록 하자.
아아, 솔직히 나는 고단한 한 생을 살아왔다
이제 그 생존현장에서 아쉽게 은퇴하고
갯벌에 버려져 영면(永眠)에 들어간다
그때 나와 동행해서 대해(大海)를 누비던
그 선장도 안도의 한숨을 들이쉬면서
어느 양지바른 산비탈에 편히 누워
만선의 몽중(夢中)에서 휴식을 취하겠지.
―「묵음시첩 11」 전문
폐선의 운명은 고요히 녹슬거나 해체되는 것이다. 폐선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한 생을 반추하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실은 시인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성찰이 독자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병(病)과 사(死)에 대한 사색은 허무주의에 늪에 잠기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솟대가 된 화자는 “나도 이젠 말라빠진 맨몸으로/ 영원히 비상할 수 있는 새가 되었”다고 좋아하기도 한다. 가로등이 되어서는 “그대는 취한 채 긴 잠에 빠지지만/ 나는 불면의 외로움을 인내하면서/ 밤새도록 이 자리를 굳게 지킬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즉, 실상은 묵음이 아닌 것이다. 사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것들의 발언을 시인은 듣는다. 삼라만상 온갖 사물을 의인화시켜 실은 세상을 향해 발언하는 시가 묵음시첩의 시다. 헌 구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18번 시의 경우, 헌 구두는 시적 화자 자체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존재의 의미
살아가는 순리가 모두 그런 것이라네
한 생을 헌신적 봉사로 마무리하지만
아아, 그 세월의 여적(餘滴)에는
영욕(榮辱)의 바람소리만 들릴 뿐
그러나 폐품으로 길거리에 내던지지 마라
오늘도 숨죽인 채 헐거운 영육만 매만지는.
―「묵음시첩 18」 부분
누군가의 발을 보호하면서, 그의 이동을 도와주면서 낡아간 구두는 요즘 “비좁고 깜깜한 신발장에 갇혀/ 나들이 길에 선택되지 못한”다. 구두는 말한다. “뒤축이 문드러진 나의 골신(骨身)은/ 당신의 운명처럼 어디론가/ 천천히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실은 시인이 헌 구두에 감정이입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화자는 구두이자 시인 자신이다. 이렇게 말한다. “폐품으로 길거리에 내던지지 마라”고. 한 생을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는데 단지 낡았다는(늙었다는) 이유로 폐품 취급하지 말라는 항의의 목소리가 이 시의 주제라고 본다.
하얀 백지에 무심코 써나간 인생론
여기쯤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워야지
일생동안 쓰고 지우고 또 다시 써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해서
나는 항상 새로 써나갈 넓은 대지를
새로 마련해 두겠네
보다 선명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당신
에잇! 또 잘못 그렸어
돌아보면 허접스러운 삶의 연속이었거늘
아아, 한 생이 끝날 때까지
몽당연필과 지우개가 동행하는 언젠가
나의 육신이 다 문드러지는 날
만신창이로 너덜거리는 당신의 몰골도
한 점 구름으로 영원히 떠날 것이네.
―「묵음시첩 23」 부분
지우개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쓰다 보면 연필은 몽당연필이 되고 지우개는 문드러진다. 지우개가 말한다. “만신창이로 너덜거리는 당신의 몰골도/ 한 점 구름으로 영원히 떠날 것”이라고. 하지만 시인은 그날이 오기까지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고 또 연필로 쓰는 것이 운명이기에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지우개가 “당신을 위해서/ 나는 항상 새로 써나갈 넓은 대지를/ 새로 마련해 두겠”다는 말이 재미있다. 넓은 대지는 백지다. 그렇다, 40년 가까이 시를 썼기에 시인은 저승에 가서도 할 일이 시 쓰는 것뿐이다.
다른 시편도 대체로 부제로 붙인 사물의 목소리로 전개되지만 실제 내용은 시인 자신이 이 세상에 하고픈 발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3부 「인사동 산책」 연작시 11편과 「피맛골의 밤」 4편, 「자정 장법」 3편은 시인의 생활상 이모저모가 다뤄지고 있는 시편이다. 인사동과 피맛골에서 문우들과 지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시가 되었다. ‘귀천’에 가서 목순옥 여사도 귀천했다는 말을 듣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순풍에 돛을 달고’에 가면 김윤희 여사가 반겨주었는데 가게도 문을 닫고 김 여사도 연락이 두절된다. 파고다빌딩 근처에 있는 『문학공간』에 가면 언제나 최광호 주간과 최완욱 편집장이 반겨준다. 변영아ㆍ이봄비ㆍ임춘원ㆍ정병조ㆍ정득복ㆍ장윤우 등 예술가가 그의 벗이다. “건강과 낭만을 토하는 노장(老將)들”과 어울려 김송배 시인은 술잔을 기울이고 얘기를 나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종로 뒷길로 가면 좁다란 골목길이 나오는데 피맛골이다. 그 정겨운 곳이 도시 재개발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곳의 대폿집 ‘소문난집’의 주인은 서영순 여사였다. 그곳에서 만난 김요섭ㆍ신동한ㆍ윤병로ㆍ구인환ㆍ정공채 씨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오인문ㆍ이창년ㆍ장윤우ㆍ정순영ㆍ한귀남ㆍ신세훈ㆍ이수화ㆍ장윤우 씨 등은 지금도 여전히 현역이지만 유재용ㆍ안장환ㆍ김병총은 이제 그만 볼 수 없게 된 문우다. 그 술집 벽을 가득 메운 낙서 중에는 김송배 시인이 써놓은 “기다림은 아름다운 약속이다”도 있었지만 이제는 추억 속의 문구다.
「자정 장법」은 소크라테스ㆍ플라톤ㆍ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시로 풀어본 것이다. 제4부의 시 9편은 극시라고 해야 할지, 시의 극화를 꾀한 실험적인 시편이다. 현실풍자시 계열의 작품이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사색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정치풍자도 있다.
관습적으로 손바닥을 치다가
손등을 치고 다시
발등을 두들기다가 또 발바닥을……
종아리도 주무르면서
팔다리를 휘휘 내저어 본다
혈류(血流)야, 수축된 혈관에게 귀띔한다
노년(老年)에 어쩔 수 없는 일상인가
아니 아니, 나에게도 청춘은 있었던 걸-
―할아버지, 지금 뭐 하세요?
―「여보세요, 지금 뭐하세요?」 전문
노년이 되다 보니 몸이 기름 안 친 기계처럼 뻑뻑해진다. 이래저래 사지를 움직여 보는데 젊은이가 묻는다. “할아버지, 지금 뭐 하세요?” 참 민망한 순간이다. 「친구야, 니 시방 뭐하노?」에서는 화자가 팔을 다쳐 고생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유머와 위트를 동원해 재미를 느끼게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고독감과의 싸움이다.
제5부의 시편은 대체로 기념시와 추모시다. 의전용 시라서 다 쉽고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다 못한 시인들이 독도를 찾아가서 시낭송 행사를 가졌는데 그때의 여행이 「독도, 상륙하다」와 「독도 품에 안기다」를 탄생케 하였다. 박희진 시인과 정공채 시인의 죽음을 애도한 시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제 정리를 해본다. 시인은 나이 산수(算數가 아니라 傘壽다)를 앞두고 밀려드는 고독감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싸우려면 무기가 필요한 법, 그가 선택한 무기로 고향에서 보낸 유년기에 대한 추억 더듬기가 있었다. 또 하나의 무기는 삼라만상의 온갖 것들을 의인화하여, 그것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생의 의미를 탐색해보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무기는 인사동과 피맛골에서의 추억을 더듬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배면에 깔려 있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물론 허무감에 사로잡힐 때도 종종 있다) 불교적 인식이었다. 불교의 사생관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김송배의 시세계가 그럴 것이다. 제12시집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를 향해 가는 도정에 세워진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