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밧#유대인#아우슈비치
<죽은 유대인들을 즐겨 소비하는 세상의 뒤틀린 애착>이란 독특한 주제로 미국계 유대인 작가 데어라 혼은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유대인들에 관한 논쟁적 이야기를 전개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수록 반유대주의가 줄어든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무너 뜨리고, 홀로코스트를 인류의 ‘보편적’ 경험으로 마케팅하는 일을 통해, 그 공포를 폄하하는 방식들을 적어낸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 데어라 혼 지음
유대인은 “살아 있을 때는 혐오의 대상이 되다가 오직 죽어서 안전해져야만”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이 책은 ‘모두가 좋아하는 죽은 유대인’ 이 문제로 시작된다.
2018년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부터 이야기한다. 직원이 야물커(유대인 남자들이 쓰는 작고 동글납작한 모자)를 쓰려고 하자 저지당한 것이다. 고용주들은 야물커가 박물관의 “독립적 위치”를 방해할 수 있다며 야구 모자 속에 안 보이게 쓰라고 했다. 죽은 유대인 소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공간에서 유대인 정체성을 숨기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는 대목에서 <안네의 일기> 중 한 문장을 내놓는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는 내용의 이 문장이 무슨 문제일까. “이 말들은 살해된 소녀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용납하는 우리 문명의 타락에 대해 용서받은 기분이 들게 해준다.” ‘죄사함’ 즉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다. 안네는 “죽임을 당한 사실이 우리에게 무언가 교훈을 준다는 분명한 목적에 부합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저자는 “유대인은 도덕적이고 교육적인 목표를 위해 죽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안네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집단 학살에 관해 썼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다.
노벨평화상 수상 작가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이 아우슈비츠 수감의 고통을 쓴 <나이트>가 있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안네의 일기>가 이어졌더라면 비슷한 형태가 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책이다.하지만 이 책은 <안네의 일기>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저자는 “일본의 십 대 소녀들이 <안네의 일기>를 읽었듯 이 책을 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려면 위젤은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잘만 그라도프스키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 호송과 소각을 하도록 강요받은 ‘존더코만도(나치의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수용자들 중 일부를 차출하여 구성한 유대인 부대.)’의 일원이었다. 1944년 10월 7일 계획하고 하루밖에 지속되지 못한 존더코만도 봉기에서 살해됐다. 그가 “자유로운 세상의 시민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이디시어 쓴 기록이 사후 발견됐다. 한 여자가 그에게 “저, 아저씨, 죽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쉬운가요 어려운가요?” 하고 물었던 일 등을 기록했다. 저자가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들을 용기가 있기”를 바라며 인용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 타는 데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은 머리다. 두 개의 작고 푸른 불꽃이 양 눈구멍에서 깜박거린다. 이것들은 뇌와 함께 타는 두 눈이다. (…) 전체 과정은 이십 분쯤 지속된다.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이, 하나의 세계가, 재로 변했다. (…) 5000명의 사람이, 5000개의 세계가 불꽃에 먹혀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우슈비치 홀로코스트 박물관>
사람들은 이 기록도, 그라도프스키도 잘 알지 못한다.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저자는 집단 학살에 관한 <다가올 세계>를 쓴 뒤 받은 이메일을 소개한다. “저는 사람들이 웃고 즐기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쓰는 것이 인류에게 조금 더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독자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수년간 미국과 해외에서 수백만 부씩 팔린 홀로코스트 소설들은 한결같이 ‘희망을 주는’ 소설들이다. <사라의 열쇠>는 “로맨스가 벌어지는 아우슈비츠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불운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희생하는 비유대인 구조자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베스트셀러도 여럿이다.
저자는 “문학의 목적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의 과거와 관련해 가장 몸서리쳐지는 측면들에 관해 정직한 소설을 쓰는 일은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라고 되묻는다.
또한 홀로코스트가 사랑의 중요성을 납득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홀로코스트는 사랑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일은 전 세계 모든 사회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책임을 대변하는—이 세계에 ‘명령받음’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이래 언제나 그것을 대변해온—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저자는 ‘비유대인 구조자’ 즉 ‘정의로운 비유대인’이라 불린 이들 중 한 명인 미국인 배리언 프라이의 삶도 분석한다. 그는 한나 아렌트,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앙드레 브르통 같은 이들을 구조한 사람이다. 구조된 유명인들 대부분이 나중에 왜 프라이를 피하거나 무시했는지도 파고든다. 아렌트를 글이든, 만남이든 한 번도 프라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 이면에는 인도적인 이유, 인정 욕구, 유명인과 교류 등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당혹스럽고도 복잡미묘한 이 문제를 두고 저자는 프라이가 수백 명을 구했지만, 절멸 계획을 듣고도 그 자체를 막으려고 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건 구조자와 구조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다. “(이 관계에는) 본질적으로 수치스러운 무언가가-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일의 굴욕이-있고, 그 수치스러움은 구조자들을 향한 적대감으로 드러난다.” 구조자들에겐 인생의 최고의 시기이자 삶의 가장 의미가 컸던 시기지만, 구조된 이들에겐 최악이자 가장 의미 없는 시기였다. 저자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 홀로코스트라는 사실 속에도 깊은 수치스러움이 담겨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베네치아)의 상인> 내용과 후대 해석 문제도 들여다본다.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같은 해석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중 하나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에서 샤일록 같은 사람이 “숨 쉴 허락이라도 받으려면 몇 년마다 한 번씩 허가서를 갱신”해야 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베네치아 시 당국은 금고가 바닥나자 수익의 새로운 원천을 찾으려고 고리대금업자와 전당포 운영자 같은 몇몇 직업인들만 유대인들을 불러들였다. 이들이 살 게 된 지역이 바로 ‘게토’다. 이 게토의 문은 밤에 잠겼다.
1475년 베네치아에서 200킬로미터쯤 떨어진 트렌트에서는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불에 태워졌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된 역사도 거론한다.
이 책은 기존 홀로코스트 책에서 잘 다루지 않은 여러 문제와 쟁점을 분석한다. 저자는 “우리는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게 아니라 다만 시온주의에 반대할 뿐이다”를 두고 소련이 만든 “융통성 있는 가스라이팅 구호”라고 말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반엔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 같은 표지판이 걸릴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1930년대 뉴욕시에 개명 청원한 이들 중 65% 이상이 유대인처럼 들리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로젠버그’를 ‘로즈’로 바꿔 입사 지원서를 쓰면 채용되리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저자는 개명한 유대인을 두고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이 “이름을 바꾸는 바로 그 행위를 하는 동안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함으로써 모욕에 동참”한 점이라고 말한다
열두 편의 논픽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그토록 신경 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며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차별에 맞서 성공하려고, 때로는 그저 목숨을 부지하려 안간힘을 썼던 선조를 눈물로 추모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제목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유대인을 미워한다는 말임을 암시하며 강조하고 있다.
<월간샤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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