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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기행 / 축제는 행동하는 지역주의, 하나로 뭉치는 힘의 과시
평온한 도시일수록 축제 많고 다양해
<축제> 하면 그 두 글자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렙니다. 열광적인 행동이 있고 뜨거운 피가 뭉쳐있기 때문입니다. 축제는 비일상적이며 집단적이어서 평소 우리를 억누르는 공식적 규범이나 계층질서, 엄숙함 등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시간을 즐기게 한다는 데에도 매력이 있습니다. 서민이 귀족과 더불어 행복과 소란(?)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날인 것입니다. 정해진 짧은 기간이지만 신분이 낮고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일수록 축제는 낙원의 경험과 같은 흥분을 안겨줍니다.
평온한 도시에서는 1년 내내 축제가 계속됩니다. 또 오래된 도시일수록 그 내용이 다양합니다. 축제에는 춤과 음악과 행동이 따르는 만큼 자칫 과열되면 광란의 도가니가 될 듯한 우려도 있음직하지만, 오래되고 평온한 도시의 축제는 지나치는 선을 넘는 일이 없습니다. 저절로 싹튼 질서가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축제로서 시민(지역민) 단결을 도모하고 문화 예술의 발전과 선진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베니스에는 12월 26일이 되면 사순절의 첫날까지 계속되는 가장 역사가 깊고 유명한 <베네치아 카니발>을 시작합니다. 이 축제에는 민속오락, 황소사냥, 곡예사의 묘기, 폭죽 따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장과 거리의 작은 골목은 가장 무도회로 넘치게 됩니다. 화려하고 낭만적인 행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황소와 돼지를 잔인하게 죽이는 프로그램도 들어있습니다. 유혈 낭자한 의식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합니다.
베니스 축제는 이미 오래전에 지역행사의 틀을 벗어났습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이 축제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축제는 평화롭게 잔인해지거나, 규칙을 어기는 것이 허락되는 순수한 휴식입니다. 개인주의 인식을 고양시키고 위장한 몸에 익명성을 허락하고 영혼을 해방시킵니다. 카니발(Carnival)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까지 40일 동안 금식, 금욕, 정진하는 사순절을 앞두고 실컷 먹고 즐겨보자는 데서 출발한 축제로 매년 2월이면 기독교문화권에서 화려하게 - 또는 잔인하게 - 열려왔습니다.
세계적인 축제 하면,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이 먼저 떠올려야 맞는 건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색채와 현란한 삼바리듬이 폭발적으로 난무하는 리우의 카니발 역시 근원은 사순절 전의 축제입니다. 삼바(Samba)의 뜻 자체가 집단적인 춤, 또는 음악과 리듬입니다.
삼바의 리듬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노예들에게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원무(圓舞:Batuque)의 형태였던 것이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차츰(19세기말) 도회지 풍으로 변하였고, 이윽고 1917년 악보를 갖춘 삼바 곡 “전화로”가 히트하면서 리우사람들의 삼바사랑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그것은 가요적 성격을 띠면서도 야성미가 물씬 풍기고, 무대에 걸 맞는 쇼 타입의 형식을 지니고 있어서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열광했고 삼바의 새로운 히트 곡을 계속 원했습니다. 이에 리우 시는 카니발 퍼레이드에 삼바 콘테스트를 접목시키면서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춤의 카니발 문화를 창출해 내었고 카니발 족(族)이라는 신세대를 배출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리우축제는 매년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있어 문제가 되었습니다. 1994년에는 219명이 광란의 카니발 와중에서 숨졌는데, 경찰발표에 의하면 그 전 해에 비해 40% 증가한 숫자라고 했습니다.
종교적 의례의 성격이 강한 축제들
나라에는 국교가 있지만 종교에는 국적이 없습니다. 종교는 세계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행사에서 비롯된 축제는 국제적 성격을 띠는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 시대 전까지만 해도 축제는 각 마을이나 민족이 전통과 관습에 따라 정례적으로 가져온 의례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단의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나아가 부가적인 이익까지를 안겨주다 보니 국가의 정책이 관여하면서 보다 범위가 넓은, 종합적인 행사로 발전 확대되었고 나아가 격식화 상업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축제의 근본 취지가 단결심을 고취시키고 의식을 높이는데 있다는 점만큼은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40일 전,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해 성토요일에 끝납니다. 약 4세기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예수가 세례를 받은 뒤 40일 동안 황야에서 금식을 하고 사탄의 유혹을 받으며 보낸 기간을 기념해 생긴 관습입니다. 금식의 규칙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방정교회는 하루에 해가 진 다음에 한 끼 식사만 허용하며, 육식은 물론 생선과 달걀도 40일 내내 금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에서는 그 규칙이 점차 느슨해졌습니다.요즘은 사순절 기간 동안 특정한 음식, 즉 좋아하는 음식을 피하고 작게나마 개인적 희생을 치르도록 하는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사순절의 주된 정신은 참된 자아를 추구하고 영적인 준비를 갖춘 뒤에 부활절을 맞아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려는 데 있습니다. 사순절에는 엄격한 단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순절 이전의 화요일은 대대적으로 잔치를 벌이는 날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뉴올리언스 같은 지방에서는 마르디 그라(Mardi Gras), 즉 '기름진 화요일'에 잔치를 벌인다.그런데 사순절이라는 말은 사실 성서에는 없습니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Lent'는 '봄날'이라는 뜻의 영어 고어인 '렌크텐(lencten)'에서 나왔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그 기간을 테사라코스테(Tessarakoste)라는 그리스어, 혹은 쿠아드라게시마(Quadragesima)라는 라틴어로 불렀는데, 둘 다 '40번째'라는 뜻입니다.
사순절 외에도 유럽 각국에는 그리스도교와 국가성립에 관련된 축제일이 줄을 잇습니다. 국왕이나 여왕의 탄신일도 나라에 따라서는 큰 축제가 됩니다. 국가적 기념일이란 ▲새해맞이 기념일 ▲건국(독립)기념일 ▲혁명(전승)기념일 ▲국왕이나 여왕 탄신 또는 즉위기념일 ▲헌법기념일 ▲노동절 ▲청년절 ▲국민의 날 등으로 그 행사도 지역적으로 치룹니다. 반면 국제적인 축제일은 ▲예수의 공현축일(1월6일) ▲부활절(춘분 후 첫 보름달 다음 일요일) ▲그리스도 승천절(부활절 40일 후의 일요일) ▲성령강림절(승천절 다음 일요일) ▲성 요한절(6월 24일) ▲성모마리아 탄신일(9월 8일) ▲만성절(11월1일) ▲추수감사절(11월 제4목요일) ▲크리스마스(12월25일) 등 종교의 행사일들이다.
물론 같은 그리스도교라도 가톨릭이냐 동방정교(러시아정교)냐 프로테스탄트냐에 따라 무게를 두는 쪽이 다릅니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충실한 동방정교는 가톨릭에 비해서 의(義)보다는 사랑, 탄생보다 부활, 죄 보다는 구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가톨릭 신학이 사변적이고 신에 대해서 지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교에서는 신앙체험을 중히 여깁니다. 이에 비해 성경을 중심으로 만인 사제 설을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트는 탄생이나 부활보다 감사 쪽입니다. 미국이 추수감사절에 보다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유럽의 축제 패턴은 그들이 거느렸던 식민지 사회에 그대로 심어져 라틴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동양의 일부국가에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부 섬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필리핀 최대의 시눌록 축제(Sinulog Festival)는, 필리핀을 처음 발견한 F.마젤란이 그 섬의 추장에게 아기예수(산토니뇨)를 선물한 것을 “아기예수 탄생일”로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이 축제는 철저하게 거리에서만 이루어지며 출연자와 관객이 따로 없이 한데 어울린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관객들도 모두 얼굴에 울긋불긋 칠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합니다. 형식은 서양식이지만 내용은 다분히 동양적인 것이 흥미를 갖게 합니다.
인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힌두교와 관련된 축제가 많습니다. 힌두의 신앙에 신이 많은 만큼 여기에서도 일 년 내내 축제가 계속됩니다. 신을 숭배하는 의례에는 염주를 사용하고 만트라(神歌)를 부릅니다. 개인의 일생을 통해 실행해야 하는 삼스카라(통과의례) 만도 약 40가지에 이르는데, 그중 탄생 제, 남자가 정식으로 힌두사회의 일원이 되는 입문 식, 결혼식, 장례식 등은 매우 중요하여 개인의 통과의례이면서도 마을 축제의 성격을 지닙니다.
이슬람에서는 헤지라 력(음력)에 의한 라마단 월(제9월)의 단식이나 두알히자 월(제12월)의 메카순례가 최대 행사이며, 공식적인 축제로는 순례 월의 희생제와 단식이 끝난 직후의 제사가 있습니다. 이 밖에 예언자 마호메트와 성자들의 성탄제가 있습니다.
불교의 의례 범주는 크게 세시풍속 의례, 소재(消災) 신앙의례, 사자(死者) 신앙의례, 영혼천도(靈魂薦度) 의례 및 기타 불공 신앙의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시풍속 의례는 석가의 출생 출가 성도 열반 등의 불교 4대 명절과 세시풍속에 따른 불교 신앙의례가 포함됩니다. 소재신앙 의례는 각종 재앙을 소멸하기 위한 의례이고, 사자 신앙의례는 민속불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사십구재(四十九齋) 수륙재(水陸齋) 예수재(豫修齋)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 밖에 정기 의례로는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이 있고 비정기적 신앙의례로는 방생재(放生齋)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후나 환경 조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축제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북극권의 하지축제(夏至祝祭) 또는 백야축제(白夜祝祭)입니다. 스웨덴에서는 하지에 가까운 토요일이 년중 가장 큰 축제일입니다. 금요일의 전야제에서는 풀꽃과 자작나무 가지를 장식한 화환을 광장 중앙에 세워놓고 화관을 쓴 아이들이나 민속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그 주위를 돌면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 가지를 한 손에 쥐고 사우나로 몸을 깨끗이 한 후 저녁이 되면 코코(횃불축제)에 참가합니다.
같은 의미의 축제가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백야제로 벌어진다. “북쪽의 베니스” “유럽을 향해 열린 창”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는 백야인 여름에는 북국의 오아시스가 됩니다. 유람선마다 관광객들로 가득해지며 곳곳에서 때 없이 폭죽이 터집니다. 외국인뿐이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예약 없이는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가 됩니다. 축제기간 중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북 러시아 등지에서 하지에 대한 애착이 유별스러운 것은 이 날을 기점으로 해가 짧아지고 종내는 암흑의 밤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지는 “태양이 충만할 때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받는 날입니다. 하지축제를 마치면 실제로 약 1개월에 걸친 여름휴가와 함께 민족대이동이 시작됩니다. 이들이 빠져나간 텅 빈 도시는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서양과 다른 동양의 축제
동양의 축제는 서양과는 다소 그 뿌리나 내용을 달리합니다. 지방자치의 이른 정착과 더불어 지방 민속이 잘 육성된 일본의 경우도 1년 내내 축제가 계속되는 나라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뚜렷한 내용도 없고, 심지어 주문을 외우되 그 주문의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흥겨워하며 한 덩어리로 뭉치는 힘은 일본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삼대 마츠리(祝祭)라고 하는 교토의 기온 마츠리, 나가사끼 군치, 아오모리 네부타 마쯔리가 모두 그렇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돌림병의 퇴치라든가 잠 귀신(睡魔)을 쫓는 행사라고 하지만 내용은 특유의 일본정신을 가꾸고 다듬는데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축제는 동양에서도 그 의미가 독특한 것이 많습니다. 설날(정월초하루)이나 사월초파일의 연등행사, 12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국경일 등은 위의 범주에서 이해되는 날들이지만 정월대보름 축제나 5월 단오제, 8월 한가위 등 세시풍속적인 축제는 우리만의 독특함을 자랑하는 것들입니다.
정월대보름을 명절로 삼는 것은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농경문화권에서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을 소중히 여긴 까닭입니다. 우리말의 “설”은 정월초하루부터 정월대보름까지의 15일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정월대보름은 설날부터 시작되는 휴가를 마감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설이 시작되는 날이 설날이요, 설을 마무리하는 날이 대보름인 것이다.
음력 5월, 강릉에서 벌어지는 단오제도 언제부터인지 모를 옛날부터 전해져온 민중의 축제입니다. 예로부터 이날이 되면 풍년을 빌며, 남자들은 씨름으로 여자들은 그네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어왔습니다.
한가위는 설과 더불어 우리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입 니다. 음력 8월 15일. 봄에 씨 뿌리고 여름 내 가꾼 곡식과 과일이 익어 이제금 수확이 시작되니, 첫 수확한 곡식과 과일을 천지신명과 어른(祖上)께 먼저 올려 감사의 뜻을 표하는 날입니다. 최소한 2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축제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라는 말이 있듯이, 1년중 가장 넉넉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축제가 온통 한 덩어리가 되어 단결심을 극대화하는 것에 비해 우리의 축제는 사뭇 조용한 편이며, 개인주의 또는 가족주의적 성격이 짙어 신명나게 어울리는 시간이 적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임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축제는 거리 퍼레이드를 겸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됨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