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8토 등산회 안동·청송·의성·군위 지역 문화유적 탐방
주요 노정: 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 출발(8:30)→대구부산고속도로 진입→경부고속도로 진입→대구포항고속도로 진입→북영천 IC진출→노귀재 터널→만휴정 원림→묵계서원→묵계리 보백당 종택→책바위휴게소 중식(다슬기탕 기타)→청송심씨 송소고택→길안→의성읍→조문국사적지 및 고분박물관→조문국역사박물관→화본역一갑티재→영천시→대공원역 도착 해산
NAVI-만휴정→묵계서원→책바위쉼터/중식(054-822-1228)→송소고택→조문국사적지(경덕왕릉,주차장)→화본역
1. 만휴정원림(晩休亭園林)(대공원역에서97km, 1시간 50분):(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국가명승 제82호)-만휴정은 조선조 성종, 연산군 대에 걸쳐 대사간, 대사성, 대사헌 등 3사의 요직과 홍문관 부제학 등을 역임, 청백리로 후세에 추앙을 받고 있는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선생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흔히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없다’고들 하지만 안동의 만휴정만큼은 예외다. 빼어난 풍경에 곱게 숨어 있는 만휴정은 물도 좋고, 정자도 좋다. 안동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 계명산 반대편 자락 마을인 하리에서 길안천으로 합류하는 묵계의 물길을 따라 걸어 오르면 10분도 채 안 돼서 수묵화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법한 그윽한 비경이 펼쳐진다. 바로 만휴정 원림이다. 정자 앞에 다가서면 너럭바위를 타고 비단처럼 흘러내려 온 곡간수가 담겨 흐르고 있고, 그 물길 위에는 통나무를 포개서 만든 제법 긴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정자의 쪽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다른 곳의 정자들은 대개 ‘문화재’라는 이유로 문을 꼭꼭 닫고 있지만, 만휴정의 문과 대청마루는 다른 안동의 정자들처럼 늘 열려 있다. 인적 드문 계곡의 만휴정에서는 누구든 잠깐이나마 정자를 통째로 소유한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만휴정의 서쪽 방 앞에는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풀어보자면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 있다면 맑고 깨끗함이다’라는 뜻이다.
2. 묵계서원(黙溪書院)(만휴정에서1km,6분)-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묵계서원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17)과 응계(凝溪) 옥고(玉沽,1382-1436) 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1687년(숙종 13)에 창건되었다. 김계행은 청음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5대조부인 한성부판관을 역임한 김계권(金係權,?-1458)의 동생으로 성종때 도승지 대사성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판서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호는 보백당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응계(凝溪) 선생은 세종때 청백리로 사간원정언 예조정랑 사헌부장령등을 지냈다. 고종 6년(1869)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1994년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다. 또한 서원 옆에 보백당 신도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3. 신안동김씨 묵계종택-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묵계종택은 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침과 사랑채인 보백당,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의 팔작지붕 집으로, 보존 상태가 좋다. 보백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우물마루를 깐 4칸 대청과 2칸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이며, 대청의 왼쪽 측면과 뒷벽에는 판벽에 문얼굴을 내어 미세기 창을 달았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집으로, 앞쪽에는 삼문이 있고 낮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4. 청송심씨 송소고택(松韶古宅)(묵계서원에서 20km, 32분)-주요민속문화재 250호.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청리. 조선 후기의 대저택이다.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양반, 송소 심호택이 지은 99칸 집이다. 안채, 별당채,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사당, 대문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이 있어 공간이 잘 구분되어 있다. 이 집이 지어진 1880년 당시 법도에는 궁궐을 제외한 사가는 99칸 이하로 제한했기 때문에 송소고택은 사가 중 가장 최대 규모로 지어졌다. 또한 각 건물이 장대하고 격식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상류층이 살던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조선 5백년을 통해 정승, 왕비, 부마를 즐비하게 배출한 양반가문이면서 9대에 걸쳐 만석의 부를 누린 부잣집 송소고택은 상류층주택답게 공간구성에서 각각의 독립된 영역을 잘 나누고 있다. 그래서 마당과 담이 유난히 많은데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만나는 헛담이다. 짧고 귀엽기까지 한 이 헛담은 전체를 경계지어 나누지 않으면서도 사랑채에 앉은 남정네들이 안채에서 움직이는 여인네들을 한눈에 볼 수 없도록 남녀의 공간을 구분 짓고 있다. 내외의 법도가 엄격하던 시절의 상징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인네들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 송소고택은 정감 넘치는 꽃담장이 많은데 그 중 안채와 바깥채사이의 담에는 동그랗게 뚫린 구멍이 있다. 이 구멍들은 안쪽에서만 밖을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안주인이 방문객들을 파악하여 적절한 대접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창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양반고택의 소소한 일상을 짐작케 한다.
5. 조문국(召文國) 사적지(史蹟地) 및 역사박물관(송소고택에서 53km, 1시간 20분)-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의성 조문국(召文國)은 경주 사로국, 김천 감문국, 영천 골벌국, 상주 사벌국, 경산 압독국, 청도 이서국, 울릉 우산국처럼 삼국시대 이전에 경상도 지역에 존재하였던 국가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이(卷二)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조에 보면, ‘벌휴이사금 2년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로서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벌휴이사금은 신라 9대왕으로 동왕 2년은 서기 185년에 해당된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일대가 조문국 도읍지로 지금까지 규모가 매우 큰 100여기 등 모두 260여기의 고분군(古墳群)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몇 세기에 걸친 족적(足蹟)이라 짐작되므로 삼한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부족국가일거라 추정하고 있다.
6. 중앙성 간이역 화본역(花本驛)(조문국사적지에서 23km, 33분)-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위치한 네티즌들이 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