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태백준령을 넘어 소백산맥의 어두운 굴을
몇 번이나 뚫고 달려온 기차는
갑티재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듯
기적소리를 허공에 뿌리며 신녕역으로 들어섰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녘을 흔드는 그 공명음은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육중한 레일 소리와 함께
역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을 알리는 힘찬 기적을 뿌리며,
한들을 지나 가뭇없이 멀어져 갔다.
그 기적소리는 약 5리 길이나 멀리 떨어진
우리 뒨실까지 흔들었다.
특히, 비가 온 뒤의 그 공명음은
청명한 날씨만큼 더욱 깊고 선명했다.
유년시절의 나는 그 기적소리가 울릴 때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는
가슴 설레임이 있었다.
청년기로 접어든 스무 살 되던
'78.2월, 찬바람 일던 날
그 기적소리에
몸을 실고 첫 상경 길에 올랐다.
밤새 뜬 눈으로 흔들리던 열차는
이튼 날 이른 새벽 청량리역에 나를 부렸다.
기지 바지와 운동화, 잠바를 걸친 앳된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렇듯 기차는 척박했던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실고 기적소리 울리며
철길 따라 흘러왔고, 흘러갔다.
오늘도 끊임없이 숨 가쁜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 시대,
그 욕망의 바퀴에 내몰린 신녕역은
이제 녹슨 폐역廢驛이 되었다.
속도가 예술이고 환락이 된 이 시대가
때론 서운하고 쓸쓸함은 나만의 감정일까.
어린 나를 설레게 했던
그 기적소리는 오늘도 아련한 그리움을 실고
폐역을 지나,
내 생의 간이역들을 지나간다.
석등 정용표.
카페 게시글
단상(斷想)
폐역의 기적소리 (신녕역)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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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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