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천동에서 진행된 생명굿은
사이코드라마를 우리말과 우리 정서에 맞게 풀어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주인공을 알님, 디렉터를 지기로, 또 집단원과 관객을 터무리라고 부르며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또한 최헌진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인 지기들과 함께 한 달에 두 번,
격주 주말마다 꾸준히 생명굿을 진행해 오셨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아픔과 삶의 이야기를 공동체가 함께 나누고 보살피고자 한 생명굿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실제 생명굿이 열렸던 현장 사진>
이제 최헌진 선생님은 작고하셨지만
희곡 새벽놀을 통해서
한 사람의 아픔을 함께 품고 보살피는 생명굿의 정신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
또한 이 희곡에서는
알님과 지기 사이에 오가는 교류가 중점적으로 펼쳐지며
관객 (터무리) 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새벽놀
알님 : 듣고 싶은 음악이 있는데, 가능할까요 ?
지기 : 말씀해 보세요
알님 : 그냥 슬픈 음악이면 돼요.
예컨데 대통령이 죽으면 온종일 방송에서 틀어주는 레퀴엠이라던가 ...
지기 : (조명실을 향해 큰소리로) 할 수 있겠어요 ?
준비되면 들려주세요.
알님 : 번거롭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지기 : 하고 싶은 건 뭐든 하셔도 됩니다.
알님 : 무엇이든, 그럼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가도 돼요 ?
금방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내가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요.
지기 : ...... (고개를 끄덕이며 알님을 바라본다)
알님 : 왜 그런식으로 날 쳐다보는 거죠 ?
내가 뭐 잘못했나요 ?
지기 : 아니예요.
알님 : 하긴 알만 해요.
나도 내 자신을 이해 못할 때가 많으니까.
사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들려온다.
알님이 음악을 들으며 바닥에 앉는다.
지기도 그녀 곁에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알님이 지기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면서 말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잠시 후, 알님이 바닥에 눕는다.
시간이 흐른다.
지기가 알님을 내려다보고 말을 하려다가 멈춘다.
알님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알님 : (눈을 감은 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일꺼야.
(눈을 뜨고 지기를 보면서) 그렇지 않나요 ?
지기 : 천수를 다한 복된 죽음을 이야기 한다면 ...
알님 : 아뇨, 그런 생리적 현상 말고요,
삶의 어느 순간, 스스로 선택한 죽음 말이예요.
(사이) 지기님이라고 하셨죠 ?
지기님은 스스로의 죽음을 꿈 :: 꿔 본 적이 있으세요 ?
지기 : 자살 말인가요 ?
알님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약간 신경질적으로)
아뇨, 어떤 이유에서건 마지막 궁지에 몰려 하는 수 없이 선택하는 그런 것 말고요.
인간이 스스로 이 세상,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권이 아닌가요 ?
안 그래요 ?
지기님도 그 정도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 것 아니예요 ?
지기 : 없는데요.
알님 : 네 ?
없다구요 ?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서성이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
(사이) 저 음악 좀 끄면 안돼요 ?
(음악이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지기에게 큰 소리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구요 ?
정말이예요 ?
지기 : 네
알님 : 어떻게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
아니 어떻게 ... (우측 큰 북에 서서 북채를 들어 불규칙하게 북을 두드리며)
와우 ...... 와 ...... 어떻게 ......
지기 : (꽹과리를 집어들고 북소리에 맞추어 몇 번 두드리면서)
그럴 수 있지요,
내 말은,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은 자주 생각해 보았지만
제 자신이 스스로 죽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알님 : 글쎄, 내 말이 그 말 이라니까요.
왜냐하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 속에는 나도 죽는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지만,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것은
그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서로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지기 : ...... ?
알님 : 그렇지 않나요 ?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밥 먹고 잠자는 것처럼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
자살을 꿈 꾼다는 것은 각 개인마다 아주 특별한 일일테니까요.
(사이) 그 말은 이 시대가 가르치고 명령한대로 길들여져서 살아가는 삶과 이 시대 가치를 거슬러서,
자기만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적 삶과의 차이 만큼이나 서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지기 : 좋아요, 인정해요.
(사이) 그럼, 이제 제가 정식으로 질문을 해도 좋나요 ?
알님 : (북채를 놓고 지기에게 다가와서)
제가 한 말이 불쾌하지는 않았나요 ?
지기 : 아뇨, 전혀요.
(사이) 그러니까 알님께선 이 곳에 오게 된 동기가 ......
알님 : (컵에다 물을 따라 마시고 나서) 왜 왔냐 이 말이죠 ?
지기 : 맞습니다.
알님 : (잠시 서성이다가 지기에게 다가가서)
그 부채 좀 빌려 주실래요 ?
지기 : (부채를 준다)
알님 : (부채를 펴서 활활 부치며)
그렇죠, 이 곳에 왔으니,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말해야 되는 거죠.
(사이)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말했다가는 미친년, 그렇죠.
횡설수설하는 이상한 년으로 보일테니까요
(사이, 지기를 쳐다보며) 지금도 내가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
(사이)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거예요 ?
지기 : 전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알님 : 난 누가 날 지켜보면 아무 것도 못해요.
생각이 엉키고 ......
지기 : 그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를 보고 하지 말고
저기 북을 치면서 혼자서 노래하는 형식으로 해보면 어때요 ?
알님 : 노래를 하라구요 ?
지기 : 정식 노래가 아니고,
그냥 즉흥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되,
약간의 음률을 섞어서 혼자 중얼거리듯 표현하는 거지요.
북 장단에 신경을 쓰다 보면 곁에 누가 있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게 되구요.
위 대화에서는
알은 죽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삶의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고
지기는 답을 하기보다는 듣고 있습니다.
최선생님은 위 여성의 말을 들으시면서
혼잣말로 이렇게 말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아이고... 이 사람은 죽을라고 허는 사람이 아니구먼."
"살고 싶은디, 어째 살아야 헐지 몰라서 저런 소릴 허는 거제...
"가슴 속에 상여 하나를 끌고 댕기는 갑다."
" 죽음 이야기를 허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자기 마음을 못 알아준 이야기를 허고 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