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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귀농·귀촌의 올바른 방향을 찾다 - (7) 서천의 귀농·귀촌인들의 사는 이야기 | ||||||||||||||||||
귀농·귀촌정책, 귀농인들 조언에 귀 기울여야 영농교육·일자리·원주민과의 갈등 문제 ‘지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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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사람은 성공하려면 서울로 가라’했지만 요즘은 물질적인 성공을 뒤로한 채 내 삶을 찾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농촌으로 귀향하는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다. 정부 또한 수도권의 인구 밀집을 해소하고 농촌인구의 증가를 위해 귀농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각 지자체들이 도시민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서천군, 귀농·귀촌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서천군이 올바른 귀농·귀촌 정책을 펴기에 앞서 현재 서천에서 살아가는 귀농·귀촌인들의 삶을 알아보고 이들이 진정 원하는 정책들은 무엇인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훈훈한 인심이 그리운 전병환(55) 김영자(55) 부부
“농촌은 도시보다 덜 각박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날 꺼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시초면 초현리에 거주하는 전병환(55) 김영자(55) 부부의 이야기다.
단상리가 고향이 된 박충식씨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됐지만 대대손손 내려온 손맛 때문인지 추석 물량이 제법 되는 모양이다. 박충식씨가 한산면 단상리에 귀농한지도 5년이 지났다. 경기도 용인에서 병원 사무장으로 일하던 그가 단상리에 내려온 계기는 우선 아내 유희복(50)씨의 고향이라는 것과 장모님이 대대손손 이어온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늘 원하던 농촌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5년 전 서천군에서 소곡주특화사업을 추진하면서 1남4녀 중 누가 가업을 이어 받을 것인지 장모님이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다들 서울에서 직장생활에 사업을 하니 아무도 내려오지 않으려 하기에 때마침 잘됐다 싶어서 귀농을 결심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귀농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앉은뱅이소곡주’ 공장을 운영하는 박씨는 소곡주 판매가 몰리는 추석과 설 이외에는 ‘서천군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생태목공 팀에서 부팀장으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처음 아내의 고향 단상리로 이사했을 때 박씨와 아내 유희복씨는 잘 적응한 것과 달리 자녀들이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다고 한다. 도시에서 친구들과 충분한 문화생활을 누리다 한산면 단상리의 시골마을로 생활환경이 변했으니 그 마음고생은 못자리에서 논으로 심겨지면 한동안 시름시름 앓는 어린 모 같았을 것이다. 박충식씨는 “아이들이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는데 2년이 지난 후부터 잘 적응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5년 전, 서천에 귀농했을 때 받았던 지원금은 빈집수리비 200만원과 자녀학자금의 일부를 지원 받은 것과 관련해 “군에서 돈을 받기위해 귀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아내의 고향이라서 마을주민들과의 갈등이 없다는 것과 현재의 직업, 그리고 한산소곡주와 한산모시의 고장인 한산에서 산다는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천은 교통과 자연환경이 좋아 귀농귀촌지로 매력적인 곳”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만 “군이 예비 귀농인들을 위한 사업과 교육프로그램 안내책자가 있었으면 좋겠고 젊은 귀농인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도 필요하다”며 “타 지자체와 차별화 된 사업을 진행한다면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서천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에서 청소년 지도 교사로 거듭난 이준희씨
‘다, 나, 까’로 끝나는 딱딱한 계급사회를 벗어나 민간인으로 살아가는 맛도 있겠지만 그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은 농촌에서의 새 삶을 꾸렸다는 것과 어렵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방과후 아카데미’ 교사로 제 2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희씨는 지난해 6월에 서천으로 귀촌한 새내기지만 누구보다 더 빨리 농촌생활에 적응했고 자신이 원하는 직업도 갖게 됐다. 그 밑바탕에는 30여년이 넘도록 몸담았던 군 생활과 매달 지급되는 연금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제대 전만 하더라도 서천이란 곳을 잘 알지 못하던 이씨가 서천을 알게 된 계기는 ‘충남 귀농·귀촌학교’를 통해서다. 처음 정읍을 선택했다가 서천에서 귀농·귀촌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일단 지원해 보기로 한 것이다. 늘 산속에 쌓인 양구군에서 살다 평야가 넓게 펼쳐지고 바다가 있는 서천에 오니 그에 눈에는 매력적인 곳으로 비쳤고 거기에 ‘충남귀농·귀촌학교’를 운영하는 정경환 대표의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씨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귀농귀촌지로 강원도를 택하지만 생각보다 공기가 맑지 않고 눈이 오면 큰 불편을 겪는 곳이 강원도”라며 “서천은 자연환경이 뛰어나 귀촌지로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정지영(53)씨와 시초면 신곡리에서 거주하는 이씨는 마을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행복한 귀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매개체는 교회다. 평소 기독교인이던 이들 부부가 귀촌 후 마을에 있는 교회를 찾았을 때 교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왔다”며 크게 반겼다고 한다. 이준희씨는 “제가 신곡리에 오기 전에는 62세가 막내였으니 지금은 제가 제일 어린 거죠. 군대였으면 할아버지 취급 받았을 텐데요. 지금은 주민들이 참 잘해주셔서 서천으로 귀촌하길 참 잘했어요”라며 지금의 행복을 웃음으로 표현했다. 이준희씨는 사회복지사 2급에 충효지도사, 아동청소년상담사 1급 자격증을 살려 현재 ‘서천군청소년문화센터’에서 ‘방과후아카데미’ 지도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서천에는 인재가 들어온 셈이다. 서천 귀농·귀촌 정책과 관련해 이준희씨는 “우선 서천은 산과 바다 강이 있고 넓은 평야가 있어 여건은 상당히 좋은데 홍보가 부족한 것과 초보 귀농인들을 위한 지원정책이 적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고 귀농인들을 위한 조언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서천에 내려와 농민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서천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며 보람된 일을 하고 싶고 아내와 함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충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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